"우리는 업사이클링 민족" 짚풀생활사박물관 (feat. 우리가 몰랐던 89번의 손길)
짚은 벼의 낟알을 떨어내고 남은 줄기, 풀은 줄기가 연하고 물기가 많아 목질을 이루지 않는 식물을 말한다. 그리고 업사이클링(upcycling)은 기존에 버려지던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더해 전혀 다른 제품을 다시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버리면 쓰레기, 모으면 자원이라고 했는데, 우리 선조들은 여기에 공예를 더해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짚과 풀로 만든 공예품을 만나러 짚품생활사박물관을 찾았다.
짚풀생활사박물관은 우리 조상들의 문화 유산인 짚풀 문화를 보존하고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며,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를 전달하기 위해 1993년에 설립했다고 안내책자에 나와있다. 국공립은 아니고 비영리 박물관이라서 입장료(성인 5,000원)가 있다.
한옥으로 되어 있는 한옥관은 짚풀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오른쪽 사진 속 제품을 직접 만들 수 있다. 해보고 싶었는데, 주로 주말에 한다고 해서 사진만 찍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현대식 건물 지하 1층과 1층은 상설전시실, 2층은 기획전시실이다.
짚과 풀은 무슨무슨 시대로 구분을 할 수 없지만, 인류 기원부터 인간과 함께 한 가장 오래되고 보편화된 재료로 의식주 생활에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산업과 정책에 따라 우리 곁에서 급격히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친환경이 대세이니, 다시 짚풀시대로 돌아가면 어떨까 싶다.
제1전시실은 짚과 풀로 만든 전통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짚풀관련 유물이 너무 많고 기획전까지 두번으로 나눌까 하다가, 반복되는 것들이 꽤 있어 한번으로 끝내려고 한다. 사진이 많은 관계로 글은 짧게 할 생각이다.
왼쪽은 삿자리(갈대로 엮은 자리)와 왕골자리, 벽면은 방석과 깔방석(실외용 방석), 오른쪽 테이블은 동고리와 죽피바구니(죽피는 죽순껍질), 대나무함이다.
왼쪽은 거적이나 섬을 짜는 데 사용하던 섬틀이며, 오른쪽은 짚, 왕골, 부들로 사람들이 깔고 앉는 자리를 만들 때 사용하던 자리틀이다. 섬틀에 비해 전체길이가 길며, 촘촘하게 짜기 위해 고드렛돌도 많이 달렸다.
닭둥우리는 암탉이 달걀을 품어 주는 둥지이다. 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처마 밑이나 서까래 밑에 매달아 두었다. 어리는 병아리와 어미 닭을 함께 가두는 우리의 일종으로 보통 저녁에 가두어 두었다가 아침에 풀어 놓는다.
달걀망태는 암탉이 달걀을 낳으면 여기에 모아 두었다가 요리를 하거나 시장에 내다 팔았다. 달걀꾸러미는 칸칸이 나뉘도록 볏짚으로 묶어 달걀을 꺼내 쓰기 편하게 했다.
기다란 바가지, 너는 어디에 쓰는 물건이니? 설명문을 볼 때까지 전혀 몰랐다. 너의 정체는 똥바가지로 거름통에 퍼담거나 밭에 뿌릴 때 사용했다. 뒤에 보이는 항아리는 장군으로 밭에 거름을 주기 위해 오줌을 담아 옮겼던 용기이다. 구멍에 오줌을 부어 넣은 다음 볏짚으로 막아서 지게로 져 날랐다. 그 옆에 있는 나무통은 거름통이며, 맷돌과 맷방석(갈려진 곡식이 흩어지지 않도록)이다.
삿갓과 도롱이는 농사 때 입던 조상들의 우비 차림으로 삿갓은 갈대나 대나무를 엮어 만든 모자이다. 짚이나 띠를 엮어 허리나 어깨에 두를 수 있도록 만든 도롱이는 앞이 트여 있고 소배가 없어 엎드려 일하기에 편리했다.
농부의 사계를 담은 공간으로 봄에는 농사를 시작하고, 여름에는 농작물을 기른다. 가을에는 농작물을 거두고, 겨울에는 겨우살이를 준비한다. 가래, 광주리, 도시락, 호미, 낫, 짚신틀 등 계절과 관련된 농사 장비가 전시되어 있다.
미투리는 삼으로 곱게 삼은 고급 신이다. 집 안의 어른이 돌아가시면 상주는 상복을 입고 총과 앞갱기에 흰 한지를 감은 엎진신(2번)을 신었다. 머리카락을 섞어 만든 짚신(3번)은 병이 낫기를 소원하며 부인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짚신을 삼았으나 결국 남편은 죽었고 애통한 마음에 무덤에 함께 묻어줬다고 한다. 고운신은 처녀나 새색시가 멋을 내거나 혼인할 때 신었다.
쌀 미(米)는 벼가 이삭을 틔우고 수확하기까지 88번 농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뜻을 담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5,000년 역사를 함께 해 온 벼는 우리 민족의 주식이자 삶의 원천이다.
기획전 '우리가 몰랐던 89번의 손길'은 생명의 근본을 지키는 수단으로서 한반도 최초의 재배볍씨인 가와지볍씨와 우리 땅에서만 자라는 세계 유일의 자원인 토종벼를 만난다.
5,000여 년동안 한반도에서는 토양과 기후에 맞춰 토착화된 1,451종의 토종벼가 자랐다. 일제강점기때 수탈을 목적으로 비료를 이용해 생산량을 증대시킬 수 있는 일본 품종이 보급됐고, 1970년대 식량증산을 위해 통일벼로 획일화되면서 토종벼는 이 땅에서 자취를 감췄다.
지역별 토종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황해도 조동지 중생종 메벼, 서울 백석 만생종 메벼, 경기도 가위찰 조생종, 함경도 올벼 조생종 메벼, 평안도 북흑초 극만생종 메벼, 강원도 녹두도 만생종 메며, 충청도 버들벼 중생종 메벼, 경상도 족제비찰 극만생종 찰벼, 전라도 졸장벼 극만생종 메벼 그리고 제주도 메산디 중만생종 메벼.
우리 토종벼는 4가지 특징이 있다. 키가 대체로 크고, 벼의 까락이 있으며, 품종마다 고유한 특징(버들벼는 이삭이 활처럼 휘어서 늘어진다)에 지역성(메산디는 제주도 지역에서 주로 밭에 심던 벼)도 있다.
짚을 꼬고 엮고 삼는 역사는 벼농사가 시작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볏짚에 가하는 일련의 행위는 별로 힘 안들이고도, 또 별 재능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내려왔다. 그 옛날 농군치고 멍석이나 멱서리, 맷방석 같은 것을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누구나 아무 곳에서 만들 수 있었기에 짚 제품에는 장인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입장료가 있어 입이 삐죽 나왔지만, 넘쳐나는 볼거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포스팅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거, 안 비밀이다.
짚풀생활사박물관
-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 휴관일: 일요일, 월요일, 1월 1일, 설날 / 추석연휴
- 관람료: 성인 5,000원, 아동~청소년 4,000원
- 짚풀체험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운영 / 방학기간은 평일, 주말 모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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