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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 

돈의문박물관마을 옆에 경희궁이 있고, 그 옆에 서울역사박물관이 있다. 광화문으로 향해 가던 중, 박물관에 급 가고 싶어졌다. 지금은 임시휴관이지만, 그때는 부분개관이라서 관람이 가능했다. 상설전시는 볼 수 없어서, 기획전시만 관람했다.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전 서울의 전차와 서울은 소설의 주인공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있는 커다란 돌덩어리는 종루 추춧돌이라고 한다. 종루는 태종 13년 종로 네거리에 세워졌다가, 세종 22년에 개조, 고종 32년 이후 보신각이라고 불리게 되었단다. 이 유물은 지하철 공사 도중 발견 된 11점으로, 조선 전기의 유물로 추정된다고 안내문에 나와 있다.

 

2층 상설전시는 관람불가

예전같으면 아무때나 들어가도 되는 박물관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절차가 복잡하다. 우선은 인터넷으로 사전예약을 해야 관람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시간대별로 인원을 조정해야 되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나.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12시부터 1시까지는 사전예약없이 관람이 가능했다. 발열체크(새로운 기계가 나왔는지 귀나 이마가 아니라 손목에다 했다.)에 이름과 연락처을 남긴 후 입장을 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 한번이라도 와봤다면, 박물관 입구에 있는 모형 전차를 본 적이 있을 거다. 그렇다. 그 전차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전차를 타본 적은 없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많이 접했다. 

 

1899년 돈의문에서 흥인지문까지 전차가 개통되었고, 종로에 놓인 궤도를 따라 전차가 처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986년 마지막 전차가 운행을 마칠 때까지, 전차는 한성과 경성과 서울의 요긴한 교통수단이었다고 한다. 

 

전차는 고종의 근대화에 대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한다. 고종은 1880년대부터 해외에 시찰단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대한제국 선포 후 본격적으로 서양의 최신 문물을 수용했다. 전차도 그중 하나였다. 

 

대한제국기전차
전차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

입구에 있던 직원이 40분 안에 충분히 다 관람할 수 있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볼거리(글)가 너무나 많다. 하나하나 자세히 보다가는, 서울은 소설의 주인공이다를 놓칠 거 같아. 자잘한 글은 생략하고 큰 글씨 위주로 관람을 시작했다.

 

황실용, 일반용, 화물용 등 용도별로 전차가 달라

개항 이후 도성에 외국인의 거주가 허용되어, 많은 외국인들이 한성에 정착을 했다고 한다. 콜브란과 보스트위크는 한성전기회사의 전차 설비 마련 및 운영을 청부받아 1896년경 한국에 들어왔다. 보스트위크는 고종의 자금을 맡는 은행을 설립하기도 하는 등 고종의 근대화 사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그의 활동은 부인 엠마 보스트위크에 의해 남겨졌는데, 2000여 장에 이르는 자료와 사진들은 잊혀진 초기 전차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1925년 전선동 전차정류장

대한제국 시기에 4개였던 전차 노선은 한일병합 후 크게 늘어나기 시작해, 일제강점기 말인 1943년에는 지선을 포함한 노선이 16개에 달했다고 한다. 노선이 널리 뻗어나갈수록 서울의 경관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났는데, 궤도의 부설로 도성의 성문과 성벽이 훼손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전차 안에서 흔히보는 풍경이 아닙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많이 비슷한 거 같다. 그나저나 지금과 달리 그당시 전차 인에서 화장을 한다는 건, 엄청난 강심장이 아니면 힘들었을텐데 대단하십니다요.

 

서울의 마지막 전차 노선도
태평동을 지나는 전차와 사람들

1968년 11월 29일 밤, 마지막 전차가 동대문 차고에 들어갔다. 8시 12분 동대문에 도착한 마지막 전차 303호 차장은 "동대문 종점입니다. 안녕히들 가십시오."라고 목 메인 소리로 남아있는 승객 46명에게 안내를 마친 후, 운전사와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다. 70년간 운행했던 전차는 이렇게 운행을 종료했다.

해방이후 서울의 인구는 100만 명을 넘었고, 확장하는 도시에 발맞추어 궤도를 놓는 것보다는 버스를 통해 전차가 가지 않는 곳을 잇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이때부터 버스를 중심으로 한 교통시스템으로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전차와 지하철은 비슷한 듯 다르다. 고로 전차를 타보고 싶다. 부산에 트램(전차)이 생긴다는데, 기다렸다가 꼭 타봐야겠다.

 

아까보다 글이 더 많은 건, 안 비밀

서울은 소설의 주인공이다는 해방에서부터 4·19까지 소설로 만나는 서울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다. 총 5개의 섹션으로 되어 있다. 감각과 분단의 아픔, 혼란이 가득했던 해방기의 서울 / 한국전쟁 당시 점령과 수복이 반복되었던 서울의 모습과 사람들의 삶 / 전후 재건 복구된 서울의 모습과 사람들의 삶 / 군중의 함성으로 가득 찬 4·19혁명 전후의 서울 /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4·19와 5·16을 겪은 이후의 서울. 역시나 시간 부족으로 관심있는 작품으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

 

박완서의 목마른 계절

하진이라는 인물의 눈으로 한국전쟁의 발발부터 적치 3개월과 9·28 서울 수복, 1·4 후퇴 등 1950년 6월부터 1951년 5월까지 서울의 모습을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의 큰 수확이라면, 무조건 꼭 읽어야 하는 책을 많이 만났다는 거다. 영상으로 소설을 살짝 만났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고 싶다.

 

박완서의 나목, 그녀의 첫 작품
정비석의 자유부인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EBS를 통해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나름 야한 장면이 나오면 사람은 카메라 밖으로 사라지고, 카메라는 그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생뚱맞은 곳을 찍고 있다. 소설은 1954년, 영화는 1956년 나왔으니 엄청난 화제작이었을 거 같다. 

 

자유부인은 성실한 국문과 대학교수인 장태연, 평범한 주부였다가 서울 시내 번화가의 양품점 파리양행에 취직하게 된 그의 아내 오선영을 둘러싼 이야기로, 당대 사회성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로 인해 전후 풍속문제가 사회문화적 의제로 집약되어 공론화되었으며, 작가와 지식인 계층 그리고 일반 대중들 간의 대 논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소설은 7만부나 팔려 베스트셀러의 원조가 됐고, 영화는 13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1950년대 자유부인 신드롬이라는 커다란 사회적 반항을 낳은 작품이다.

 

4·19혁명 전후의 서울
오상원의 무명기가 연재되었던 사상계 1961년 8·9·11월호
박태순의 무너진 극장이 실린 월간중앙 1968년 8월호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가했다가 사망한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되고 제2차 마산항쟁이 일어난다. 오상원의 무명기는 그로 인해 촉발된 1960년 4월 18일 고려대학생 시위 당시 학생들이 을지로4가 천일백화점 앞에서 정치깡패들에게 피습되었던 사건을 기자가 밀착 취재하는 형태로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박태순의 무너진 극장은 혁명의 무질서함이 절정을 이루었던 4월 25일 밤, 평화극장의 파괴현장을 극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는 서울 토박이와 실향민, 지방에서 상경한 무수한 사람들이 뒤얽혀 살았던 1960년대 초·중반의 서울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린 작품이다.

 

모든 작품을 다 볼 자신은 없지만, 박완서 작가의 작품만은 꼭 읽어보고 싶다. 나목을 시작으로 목마른 계절 그리고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 등등등.

 

박물관 관람에 있어 시간 촉박은 독이다. 사전예약을 하고, 천천히 봤다면 더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안내 책자를 버리지 않고 보관할 생각이다. 특히 서울은 소설의 주인공이다는 읽고 싶은 책을 소개하고 있으니 더더욱 쟁여둬야겠다. 서울역사박물관, 언젠가 상설전시도 보고 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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