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숲길 화랑대역사관
6km 전구간 중 2km정도 걸었다. 라라브레드에서 잠시 휴식을 갖고 다시 기찻길로 나왔다. 걷기 시작할 때는 이런저런 잡생각이 많았는데, 걷다보니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걷고 또 걷고, 철길따라 숲길을 느끼며 절대 뛰지 않고 천천히 느리게 걷는다.
기차가 지나던 길은 사람이 꽃이 그리고 나비가 좋아하는 길로 변했다. 기찻길의 흔적을 없앴다면, 경춘선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추억이 됐을 거다. 하지만 도시재생을 통해 경춘선은 숲길로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추억이 됐다. 기차를 탔던 추억에, 기찻길을 걷는 추억을 더하다.
기찻길에도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즉, 굳이 빵집을 갈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저 빵이,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고 자리합리화를 하며 쉬지 않고 지나간다.
공유 도깨비가 나타나기 전, 도깨비는 절대 꽃미남이자 훈남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생뚱맞게 도깨비 벽화는 뭐지 했는데, 공릉동 도깨비시장이 있어서 그랬나 보다. 전통시장 구경하는거 참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기찻길이 먼저다. 아쉽지만 직진 본능을 유지했다.
2개의 레인으로 기찻길 느낌을 살린 것보다는 진짜 기찻길이 더 좋다. 직선일 거 같은데 걸어보니 중간중간 곡선으로 이루어진 길이 나온다. 부드럽게 이어진 곡선을 따라 그저 걷고 또 걷는다. 항동철길이나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은 구간이 짧아서 살짝 아쉬웠는데, 여기는 더할나위 없다.
솔직히 그닥 지루하지 않았는데, 혹시나 사람들이 지루함을 느낄까봐, 중간중간 볼거리를 많이 만들어놨다. 잠시 멈춰서, 혹은 스쳐지나가듯 그렇게 작품을 감상하면 된다.
역시 자연이 만든 작품이 최고다. 드디어 능소화의 계절이 온 것인가. 진한 녹색 덩굴 사이사이 다홍빛 능소화가 아름답게 폈다. 양산없이 강한 햇살은 부담스럽지만, 그 햇살로 인해 꽃과 잎은 더 푸르러지고 화려해졌다.
월계역 부근에서 시작해, 공릉역을 지나 화랑대역 부근까지 왔다. 당분간은 기찻길이 보고 싶지 않을만큼, 원없이 걷고 있다. 6km에서 중간쯤 왔을까? 가야할 길이 더 남아 있음에 즐거움반, 짜증반이 날듯 말듯하다. 흐렸던 하늘은 파란 하늘로 변해가건만, 여름 한낮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래서 꽃이 중요하다. 기찻길이 따분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알록달록 어여쁜 꽃님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능소화는 개화를 시작했는데, 수국은 아직인가 보다. 걷는내내 수국을 꽤 만났는데, 꽃보다는 초록잎만 무성하기 때문이다.
다른 철길 건널목은 그저 멈춤 표시가 있는 기둥만 있었다. 하지만 화랑대 역사관으로 가는 길, 철길 건널목에는 추억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건널목에서 기차가 올때 들리던 그 종소리를 여기서는 들을 수 있다. 추억은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도 크게 작용을 하는 거 같다. 그저 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정말 기차가 오는 듯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작년에 왔을때는 없던 노원불빛정원이 생겼다. 이름답게 낮이 아니라 밤에 와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정원이다. 고로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 저녁에 또 와야겠다.
지금은 폐역이 된 화랑대에 도착을 했다. 평행을 이루던 기찻길은 여러 갈래가 됐다. 늘 그랬듯 평행을 이루기도 하고,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기도 한다.
원래는 경춘선의 태릉역이었다고 한다. 이곳으로 육군사관학교가 이전해 온 후, 화랑대역이 됐다. 성동역에서 춘천역까지 연결되었던 경춘선 노선 중에서 화랑대역은 서울에 위치한 마지막 간이역이다.
화랑대역은 일제강점기에 건립되어 현존하는 간이역으로서, 건립 당시의 원형은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어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경춘선은 경춘철도주식회사에서 건립한 사설 철도였다고 한다. 조선총독부가 강원도청을 철도가 이미 설치되어 있는 철원으로 이전하려하자, 이에 반발한 춘천의 부자들이 사재를 털어 서울에서 춘천까지 연결하는 철도를 만들었다. 견물은 대합실, 역무실 그리고 숙직실로 구성되어 있다. 비대칭형 박공 지붕이 특징이라는데, 독특해 보이긴 하다.
대합실과 역무실은 작은 유리창을 통해 연결된다. 00역이라고 말하고 돈을 낸다. 잠시 후 몇시 몇분 기차라고 하면서 조그만한 기차표를 준다. 21세기 디지털 문명의 혜택을 온전히 받고 있지만, 나의 감성은 여전히 아날로그를 좋아한다.
경춘선숲길은 화랑대역사관이 끝이 아니라,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담터마을이 진짜 끝이다. 지금까지 4km 정도 걸었는데, 앞으로 2km를 더 걸어야 한다. 갈까? 말까?
줌을 당겨서 마지막 사진을 남기고, 뒤를 돌았다. 남은 구간이 궁금하긴 하지만, 지쳤기 때문이다. 담터마을로 가는 길에 태릉과 강릉을 지나가던데, 선선한 가을쯤 담터마을에서 시작해 화랑대역사관까지 남은 구간을 마무리 져야겠다. 불빛정원도 그때 같이 보는 걸로. 가을이 오기 전까지 기찻길의 낭만은 개뿔이다. 왜냐하면 6월의 어느날, 기찻길을 정말 원없이 걸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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