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돈의문박물관마을

금세 다시 가려고 했는데, 어느새 반년이 훌쩍 지났다. 늦어도 올 초에 가려고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잠정휴관이 됐다. 기다리고 기다리니 부분개관 소식이 들려온다. 다시 임시 휴관이 됐지만, 운 좋게 돈의문박물관마을을 다녀왔다. 

 

5월 6일 마을전시관에 한해 부분개관을 했으나, 5월 29일 코로나19 확진환자 급증으로 임시 휴관이 됐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6월 14일까지라는데, 확정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연장이 될 수도 있단다. 임시휴관이 정해지기 하루 전날,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찾았다. 그나저나 도시재생을 통해 박물관마을이 되기 전, 뉴타운으로 지정되어 마을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근린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바로 옆에 경희궁이 있는데 공원이 또 필요했을까 싶지만, 공원이 아니라 옛새문안마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박물관마을이라서 좋다. 단순히 박물관마을로 그치지 않고,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마을이라서 더 좋다.

 

독립운동가의 집이 아니라 박에스더의 집

작년에 갔던 곳이지만, 그때는 독립운동가의 집 지금은 박에스더의 집이다. 아마도 코로나19로 인해 전시관을 변경한 듯 싶다. 박에스더는 최초로 서양식 의학을 공부한 여성 의사다. 그녀는 미국 유학 후, 당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던 부녀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의료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무상으로 진료를 해주고,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당나귀를 타고 직접 찾아갔다. 24살에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가 되었지만, 10년간 매년 3,000~5,000명의 환자들 돌보며 과로로 인한 폐결핵과 영양실조로 34세 짧은 생을 마쳤다.

 

박에스더는 보구여관에서 진료를 담당했던 의사들 중 유일한 조선인 의사였다. 서양인 의사들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기에, 한국 여성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에스더와 같은 한국인 여의사였다. 한국인 의사가 여러명만 있었더라도, 그녀의 삶은 34세로 끝나지 않았을 거다.

 

그녀가 기거하던 방의 모습이 아닐련지

보구여관은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구원해 주는 여성의 병원, 또는 여성 환자의 집이란 뜻으로 왕실에서 격려의 의미로 하사한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전용 병원이자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부속병원의 전신으로 정규간호교육이 처음 이루어진 곳이다.

 

조선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1932년 12월)

폐결핵으로 인한 박에스더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셔우드 홀은 폐결핵 치료 모금을 위한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어 박에스더를 기렸다. 국민학교 시절 겨울이며 꼭 샀던 크리스마스 씰, 폐결핵 치료 모금을 위해서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박에스더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남편 박여선

박여선은 에스더의 학비와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셔우드 가의 농장에서 홀로 일했다고 한다. 그런데 과로와 딸을 잃은 충격으로 인해 그는 폐결핵을 앓게 되고, 에스더의 졸업을 한 달여 앞둔 1900년 4월 생을 마감한다. 에스더는 미국에서 딸과 남편을 잃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전문의사 학위를 받았다. 

 

요즈음 보기 힘든 골목길 풍경
생활사전시관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우리가 살던 그 시절의 모습을 재현한 공간이다. 덫은 이해하겠는데, 굳이 어떤 덫인지 꼭 보여줘야 했을까 싶다. 가까이 다가가서 부엌을 보려고 했는데 갈 수가 없다. 모형인데도 싫은 건 싫다.

 

자개장은 필수

지금과는 많이 다른 그때 그시절, 누가 살고 있는 거처럼 하나하나 다 생생하다. 여기서 살며시 미소를 짓는 분이 많을 거 같다. 그나저나 자개장에 이불 그리고 재봉틀에 테레비까지 좀 살던 집이었나 보다.

 

새문안극장
한국 영화의 역사와 실제 영화필름 전시
다방 아니고 극장 대기실

생활사전시관처럼 새문안극장도 1960~80년대 영화관을 재해석한 공간이다. 

 

매표소는 1층 / 매점은 2층

2층 상영관에서는 그 시절 추억의 영화를 볼 수 있다. 매달 25일에 영화가 바뀐다는 데, 5월에는 로맨스빠빠, 날아라 슈퍼보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맨발의 청춘, 떠돌이 까치 등이 상영 중이다. 사진 속 영화는 장마인데, 1979년 개봉작으로 이대근, 황정순, 김신재, 선우용여가 주연 배우로 나온다. 장마는 소설과 윤흥길이 1973년에 발표한 중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유현목 감독 작품이다. 

 

돈의문콤퓨타게임장과 새문안만화방

오락실 입구에 추억 소환 아케이드 게임 베스트 5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다. 팩맨, 갤러그, 너구리, 버블보블, 테트리스라는데, 팩맨을 제외하고는 다 아는 게임이다. 그런데 지독한 겜알못이라서 3판 이상을 넘어가 본 적이 없다. 고로 내 기억 속 오락실은 친오빠를 찾으로 다니던 곳이다. 참, 오락실이니 그저 구경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진짜로 게임이 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사실적인 그림

2층은 만화방이다. 한때 순정만화에 흠뻑 빠져서 오락실보다는 엄청 자주 갔다. 요즈음 웹툰이 대세지만, 자고로 만화책은 종이를 한장한장 넘기면서 보는게 찐맛이다.

 

서대문사진관
근대 사교장 모습

근대 사교장과 1980년대 결혼식장 콘셉트로 조성된 공간이다. 다른 곳에도 상주하는 직원이 있지만, 여기는 진짜 전문사진사가 있다. 고로 응답하라 1980컨셉으로 인생사진을 남길 수 있다. 흑백 폴라로이드도 한다고 하던데, 임시 휴관이 끝나면 관람도 하고 사진도 찍고(무료 아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면 좋을 거 같다. 

 

삼거리이용원
곤로를 찾아라~

1960~70년대 아버지들이 자주 찾았던 이발소를 재현한 공간이다. 너무나 생생하고 사실적이라 이발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그저 관람만 가능하다. 

 

추억의 공중전화

돈의문박물관 마을전시관마다 안내하는 직원이 있는데, 보는 순간 흠칫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복장이 유별나기 때문이다. 박에스더의 집은 그당시 간호사 복장한 직원이, 삼거리이용원은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이발사(직원)가 그리고 돈의문구락부에는 클럽을 꽤나 자주 드나들었던 모던보이(직원)가 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부모 세대는 추억을 되새겨서 좋고, 요즘 세대는 추억을 만들어서 좋다. 부분개관으로 인해 교육, 체험, 투어프로그램을 할 수 없지만, 마을전시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다.

 

 

 

돈의문박물관마을 볼거리 가득한 마을

돈의문박물관마을 2017년에 처음 갔을때는 뭔가 어색했는데, 2019년에 다시 가니 그때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박물관마을은 맞는데, 그때는 그저 마을이었다면, 지금은 볼거리 가득한 마을로 변했

onion02.tistory.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