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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상사

5월의 첫날, 완연한 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길상사로 향했다. 일부러 부처님 오신날 다음날에 갔는데 눈치싸움 대실패다. 연휴이니 사람이 많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마스크는 벗을 수 없었지만, 다양한 봄꽃을 즐기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석파정에 이어 고즈넉한 길상사를 기대했는데 대실패

주차장에 차가 많더니 역시나 사람이 은근 아니 꽤 많다. 길상사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경내 출입이 안된다. 실내가 아니라 실외이니, 사람이 별로 없을 경우에는 마스크를 벗으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답답해도 벗을 수가 없다. 완연한 봄답게 날씨는 어찌나 따사로운지 마스크 대신 겉옷을 벗고 다녔다.

 

극락전

길상사의 봄은 색감이 참 화려하다. 어제에 비해 미세먼지가 많아 푸른하늘은 기대할 수 없구나 했는데, 색색의 연등이 하늘을 가려주고 있다. 법당 안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실내는 피하는게 좋을 거 같아 멀찍이 서서 합장만 했다.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계신 석가모니. "코로나19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세요."

 

관리를 안한 듯 싶지만, 봄이 아니라 가을이 오면 여기는 꽃무릇이 가득 핀다. 기다림을 아는 자이기에, 지금의 모습도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극락전에서 지장전으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커다란 보호수 한그루가 있다. 느티나무로 수령은 약 265년이 됐다고 한다. 지장전 앞에는 조그만한 연못이 하나 있다. 지금이 아니라 더운 여름날에 오면 연꽃을 볼 수 있다. 고로 길상사는 계절마다 한번씩은 꼭 와야한다. 

 

길상사는 법당보다는 스님들이 수행을 하는 공간이 더 많은 곳이다. 다른 사찰도 당연하 그래야 하지만, 길상사는 특히 조용히 걸으며 경내를 둘러봐야 한다. 여기 오는 분들은 다덜 알고 있는지, 사람이 많은데도 엄청 조용하다.

 

그분을 만나러 가는 길

길상사의 원래 모습은 제3공화국 시절 3대 요정 중 하나였던 대원각이다. 이곳 주인 김영한은 노년에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 받아 당시 천억원이 넘는 7천여평의 절터와 전각 모두를 보시했다. 대원각이 길상사가 되던 날, 그녀는 법정스님에게 염주 하나와 길상화라는 법명만을 받았다고 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길상사에는 그녀를 위한 공덕비가 있다. 그때는 힘 좀 있는 사람들만 들락거렸지만, 지금은 누구나 올 수 있는 열린공간이다.

 

해발 몇 천미터쯤 되는 깊은 산속에 있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
스님이 수행하는 공간
보라색 매발톱꽃
으아리꽃같은데??

살짝 덥긴 하지만 햇살이 좋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좋고,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에 서서 멍때리고 있는 중이다. 아무 생각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는데, 건조했던 안구가 촉촉해지고 지긋지긋한 비염이 사라지는 거 같다. 힐링은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지금 이순간 힐링중이다.

 

그저 푸릇푸릇 싱그러운 녹색잎이 가득이지만, 가을이 오면 불긋불긋 꽃무릇 군락지가 된다. 법정스님을 만나러 진영각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곧 눈치싸움 실패의 현장을 만나게 됩니다~

진영각은 법정스님의 유물과 유품을 보관한 곳이다. 개인적으로 법당 내부는 사진을 찍지 않기에 눈으로만 봤다. 한켠에 서서 타이밍을 기다렸지만, 나가고 들어오고 내내 북적북적이다. 사람이 많아도 기다리면 한산한 순간이 왔는데, 이번에는 대실패다.

 

너의 이름은 모란!

누가 모란에게 향기가 없다고 했는가? 라일락과는 다른 모란만의 진한 향기에 완전히 취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모란을 꽃 중의 제일이라고 해, 꽃의 왕 또는 꽃의 신으로 또 부귀를 뜻하는 식물로서 부귀화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모란을 목단이라고 한다던데, 화투에 나오는 그 목단과 이 목단은 같은 목단이다. 모란 개회시기가 5~6월이라는데, 화투 목단은 6월을 뜻한다.

 

법정스님의 유골이 모셔진 곳

진영각 구석에 있는 오래되고 허름한 나무의자 하나. 혹시 법정스님이 앉으셨던 나무의지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상상해 본다.

 

양갈래 길. 진영각에 올때 오른쪽 길을 선택했으니, 이번에는 왼쪽 길이다. 왜냐하면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금남화가 왼쪽 길 조그만한 화단에 피어 있기 때문이다.

 

그저 스님이 수행하는 공간이라 무심결에 지나칠 수 있지만, 작은 화단에 피어 있는 꽃을 유심히 바라봐야 한다. 길상사 봄의 하이라이트가 저기에 있으니깐.

 

너의 이름은 금낭화

길상사의 가을이 꽃무릇이라면, 길상사의 봄은 금낭화다. 요 작고 여린 꽃을 보기 위해 봄이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는다. 다른 봄꽃을 여기저기 장소를 가리지 않고 꽃을 피우는데, 금낭화는 유독 여기에서만 만날 수 있다.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한다. 

 

모란 꽃향기에 취해~
샤이 모란

제목 봄바람, 지은이 까칠양파. 꽃잎은 봄바람에 따라 춤을 추고 / 꽃향기는 봄바람을 타고 나에게로 온다.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물만 먹고 가는 깊은 산속 옹달샘이 있는 곳 아님 주의. 여기는 서울시 성북동이다.

 

깊은 산속은 아니지만, 지대가 높아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등산하는 거처럼 힘듦은 일절 없지만, 산 정상에 온 듯 공기 하나는 쾌적하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 새삼스레 나무의 고마움을 깨닫는다.

 

지금과 달리, 여름에 오면 주황빛깔 능소화를 만날 수 있다. 연등물결도 좋지만, 능소화 물결이 훨씬 더 좋다.

 

길상사 범종

오색빛깔 연등과 달리, 하얀 연등 물결이다. 왼편에는 불교와 천주교의 만남인 길상사 관음보살상이 있다. 

 

길상7층보탑

길상사는 6번이나 갔던 곳이라 개인적으로 너무 익숙하다. 원래는 다른 곳을 가려고 했지만, 시국이 시국일때는 아는 곳을 가야한다. 눈치싸움은 실패했지만, 구관이 명관이라고 봄나들이는 대성공이다. 조정래 작가는 소설 한강에서 '3월이 오는 봄이고, 5월이 가는 봄이라면, 4월은 머무는 봄이었다'라고 했다. 오고 머무는 봄은 제대로 즐기지 못했으니, 가는 봄만은 제대로 즐겨봐야겠다. 2020년의 봄은 다시 오지 않을테니깐.

 

 

 

길상사 꽃무릇 화려함 뒤의 고즈넉함

성북동 길상사 길상사의 가을은 꽃무릇이다. 단풍은 그 다음이다. 일년을 기다린만큼 개화시기를 놓칠까봐 검색에 검색을 하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놓쳤다. 꽃무릇 개회시기는 추석즈음인데 9월의 마지막 전날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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