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까? 좋겠지! "조정래의 황금종이"
"세계 범죄의 90퍼센트 이상이 돈 때문에 발생하고, 살인 또한 90퍼센트 이상이 돈 때문에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재판도 마찬가지 비율인 거지요. 돈에 얽히고설킨 재판을 계속하다 보면 돈이 살아 있는 괴물로도 보이고 인간을 맘대로 지배하는 절대자로도 보이고 묘한 생각에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본문 중에서)
우리는 돈이 얼마나 있어야 만족을 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지 않을까 싶다. 돈이란 가질 수만 있다면 한도 없이 계속 갖고 싶은 거니깐.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다수가 아니라 소수일 거라는데 50원을 건다.
조정래 작가의 황금종이를 읽고, 돈에 웃는 사람보다는 우는 사람이 더 많은 건 어찌보면 당연지사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돈은 모두가 공평하게 똑같이 가질 수 없는 황금종이이니깐. 그런데 돈이 없어서 우는 사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돈이 있는데도 우는 사람도 있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영화 해바라기의 명대사)
"민변은 처음 51명이 발족시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그런데 30년을 넘기며 그 수가 1천2백여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현실을 모르는 철없고 정신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들이 서로서로를 받쳐주고 가려주는 둔덕이 되고 울타리가 되는 것을 느끼며 이태하는 나날을 버티어갈 수 있는 보람과 의미와 함을 얻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돈보다는 다른 걸 선택한 분들)
조정래 작가의 황금종이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이지만, 따로 또 같이처럼 연결되어 있다. 변호사 이태하라는 인물이 주인공인 듯하나, 돈에 우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히어로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멘토 한지섭 선배라는 인물도 있다. 이태하는 검사를 그만두고 돈 못 버는 변호사로, 한지섭은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시골 농부가 된 인물이다. 두 사람을 보면 누군가가 떠오른다. 한지섭은 대통령, 이태하는 국무총리가 되면 좋겠다고 나오는데, 이때 필요한 건 연임제다. 그래야 나라를 나라답게 바꿀 수 있을 테니깐.
"생존을 지탱해 나아가는 데 돈은 소중한 것이지만 너무 욕심부려 그것의 노예는 되지 말자 하고 사는 거지."
"돈처럼 좋은 게 없지만, 돈처럼 나쁜 것도 없어. 아이구. 그 원수 놈의 돈!" (본문 중에서)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100억과 로또 그리고 살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00억은 재벌에게 성추행을 당한 변호사가 있다. 수치스러운 일이니 조용히 넘어갔으면 하는데 기자로부터 손 편지가 도착했다. 당한 건 당신이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당신의 오너는 재벌로부터 100억을 챙겼다. 그건 당신 돈이니 당신이 받아야 한다. 이태하 변호사를 소개해 줄 테니 어서 가서 만나보라. 기자의 손 편지 내용이다.
그녀는 어떻게 했을까? 100억보다는 자신을 속인 로펌대표를 원망하고 사직서를 내고 이변을 찾아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통장에 100억이 들어왔음을 확인하게 된다. 법정으로 가면 로펌 이미지만 손상이 되기에 로펌대표가 꼬리를 내리고 100억을 도로 토해냈다.
그녀는 고마움의 표현으로 이변과 기자에게 각각 25억씩을 주겠다고 하지만, 이태하는 그 돈은 받으면 자신또한 로펌대표가 된다면서 거절한다. '이 바보야~ 그걸 받았어야지!'라고 속으로 엄청 외쳤다는 거, 안 비밀이다. 그렇다면 100억을 그녀 혼자 다 먹었을까? 스포가 될 수 있으니, 결말은 직접 확인하세요.
만약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100억이 생겼으니 재벌의 못쓸 행동과 로펌대표를 용서해 줄 수 있을까? 돈의 노예가 된다면 용서에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지 않았을까 싶다. 통쾌한 복수극 같은데 씁쓸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로또는 어찌어찌하다 1억 5천만원이 생긴 한 남자의 이야기다. 만약 당신에게 그런 돈이 생겼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도 로또 구입에 올인하겠다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이 남자는 1억 5천으로 32억은 벌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로또에 올인하지만, 끝내 웃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다. 뜻하지 않게 생긴 돈은 뜬구름과 같은 것일까? 도박 중독은 들어봤지만, 로또 중독은 처음이다.
살인은 말 그대로 살인이다. 사귀던 남친과 헤어지고 돈 많은 남친을 만난 딸이 있다. 성격차이로 헤어지자고 했지만, 아버지 사업 실패로 집안이 망한 남자에게 그녀는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고로 그녀와 헤어질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비싼 외제차를 사줄 만큼 대단한 남자를 다시 만났고, 그녀의 어머니도 지금 만나는 남자와 결혼하길 바라고 있다.
그런데 전남친이 걸림돌이 되니,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그녀석을 만나 따끔하게 혼을 내달라고 부탁한다. 아버지는 전남친을 만나 스토킹을 하지 말라고 강하게 말했고, 일은 잘 마무리된 듯했다. 하지만 전남친은 그녀를 포기할 수 없어 몰래 따라다니다 그녀에게 새남친이 생긴 것을 알게 되고, 울분에 데이트폭력으로 그녀를 죽게 만든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면 얼마나 좋을까? 딸은 죽고, 아버지는 충격으로 쓰러져 결국 죽게 된다. 그리고 부잣집에 결혼하는 딸에게 막내동생의 노후까지 책임지게 만들 생각이던 엄마는 보험설계사 일을 하게 되고, 썰렁한 장례식장을 보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소설인데 소설 같지 않아서 읽는 내내 먹먹했다.
"인간은 영원히 돈에 지배당하는 돈의 노예일 뿐인 것이었다. 인간의 본능들 중에서 탐욕을 도려낼 수 없고, 인간의 생활에서 돈을 없앨 수 없으니깐." (본문 중에서)
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지금이라면 그런 자신이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데, 100억이라는 돈이 나에게도 온다면... 그 순간 노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돈, 있으면 좋고, 더 있으면 더 좋고, 더더더 있으면 더더더 좋으니깐. 그래서 참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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