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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조와 박쥐 | 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작년 9월 1일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 이후 책에서 멀어졌다. 밀리의 서재와 같은 전자책으로 한달에 1~2권은 읽으려고 노력했는데, 7개월동안 책과 거리두기를 했다. 이유는 캔디 크러쉬 사가 때문이다. 한번 빠지면 중독 아닌 중독이 되어 버리는 성격이라, 마지막 판을 깨기 위해 하등 쓸데없지만 엄청난 노력을 했다.

 

게임을 시작했을 무렵에 검색을 하니, 마지막 판이 8000 즈음이라고 나왔다. 퍼즐 게임을 좋아하기도 하고 어렵지 않을 듯 싶어 도전을 시작했다. 1000을 넘기고 5000을 넘기고 7000까지 왔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문득 여전히 8000 언저리가 마지막 게임일까? 이때 검색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12,000인가? 이만큼 왔는데, 마지막 판은 또 저만큼 달아났기 때문이다.

 

진작에 그만둬야 했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7000에서 멈췄다. 삭제를 누를 때 손가락이 덜덜 떨렸지만, 과감하게 터치를 했다. 그리고 바로 밀리의 서재를 다시 깔았다. KT 회원에게 주는 장기쿠폰이 있는데 리스트에 밀리의 서재 한달 무료권이 있다. 총 5장이니 5개월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7개월만에 책과의 거리두기를 끝냈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다시 시작한 독서이니, 좋아하는 작가로 포문을 열었다. 책 리뷰를 살펴보니,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리뷰를 16회나 했다. 추리, 탐정, 스릴러, 미스터리를 좋아하다 보니 당연한 결과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은 좋아하는 장르에, 책을 읽기 시작하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중간에 멈출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다른 작품과 달리 늦어도 3일이면 마지막 페이지를 터치하게 된다. 

 

백조와 박쥐는 그의 데뷔 35주년을 맞아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33년의 시간 차를 두고 일어난 두개의 살인 사건과 이에 얽힌 인물들이 저마다 진실을 좇아가는 이야기다. 왜 백조와 박쥐일까? 백조는 주로 낮에 생활을 하고, 박쥐는 밤에 생활을 한다. 이는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아니 만나서는 안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백조는 피해자의 딸, 박쥐는 가해자의 아들이 아닐까 싶다.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범인을 잡는 스토리 라인이라면, 대체로 마지막에 이사람이 범인이요라고 밝힌다. 하지만 백조와 박쥐는 초반에, "내가 범인이요"라고 자수를 한다. 이런 전개는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는 무지 당황을 했다. 범인이 누구인지 작가가 알려주기 전에 미리 찾아내야 하는데, 벌써 밝히다니 히가시노 게이고가 매너를 상실했구나 했다.

 

그런데 작가의 큰 그림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범인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백조와 박쥐는 숨겨진 진실에 집중을 해야한다. 진실인데 진실 아닌 가짜같은 진실에 피해자의 딸과 가해자의 아들은 그 너머에 있는 진짜 진실을 파헤친다. 아버지를 죽인 작자는 적이 되고, 그 작자의 자식은 죄인처럼 지내야 한다. 누가 봐도 이게 당연한데, 이들은 한 팀이 된다.

 

[구라키는 시라이시를 칼로 찔러 살해한 장소가 기요스바시 근처 스미다가와테라스라고 스스로 진술했다. 범행 현장에 관해서도 한 번도 보도된 적이 없어서 그건 범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 비밀의 폭로가 재판에서는 물증에 필적할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이다.](본문 중에서)

 

비밀의 폭로를 했으니 범인이라 단정지을 수 있다. 게다가 자수까지 했으니깐. 그런데 범인이 자수를 할때 진술한 내용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여기에 범인과 피해자의 아들과 딸은 아버지의 성향상 그런 말,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이나 검찰을 자수까지 했는데 긁어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고, 피해자를 담당하는 변호사는 양형을 줄이는데 집중을 한다.

 

["나도 그쪽 아버지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요." (중간생략) 가해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 서로 입장이 전혀 다른데도 추구하는 것은 똑같다. 라는 느낌이 든 것이다. 물론 이런 감각을 그녀가 안다면 크게 분노할 게 틀림없지만...] (본문 중에서)

 

이런 류의 소설을 자주 꾸준히 읽다 보면, 작가가 범인을 밝히기 전에 대충 윤곽이 그려진다. 이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면 역시나 그 사람이 범인이 된다. 성공율이 100%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잘 맞혔다. 그런데 백조와 박쥐는 '이 사람이 범인이요'라고 했는데 불구하고 그의 존재(이름)가 밝혀지기 전까지 짐작조차 못했다. 등장하는 인물을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범인처럼 느껴지는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단순하게 범인만 찾지 말고, 백조와 박쥐는 적이 아니라 함께 하늘을 나는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진짜 범인의 존재를 꽁꽁 숨겨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범인을 위해 가해자는 거짓된 자수를 하고, 피해자는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엄청난 행동을 한다. 왜, 왜, 왜? 1984년 자신들이 했던 행동에 대한 뉘우침이기 때문이다.


범인은 역시 마지막에 밝혀져야 재밌는데, 거짓 범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초반에 알려주는 건 살짝 김이 샌다. 하지만,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은 그때부터가 아닐까 싶다. '자~ 범인을 알려줬는데, 진짜 범인일까? 궁금하면 끝까지 읽어봐~' 이런 의도였다면 성공했다고 전해주고 싶다. 

 

백조와 박쥐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어긋나는 진술이 나타나면서 범인의 아들은 끝까지 진실을 밝히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피해자의 딸은 진실이 뒤집혀질 수 있을 거라는 두려움은 없었을까?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만약 나였더라면, 진실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다 해도, 끝까지 간다. 왜냐하면 불행한 진실일지라도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이 됐든,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특징 중 하나가 결말이 썩 개운하지 않다는 거다. 이번에도 어디부터 잘못됐을까? 사슬을 진작에 끊었더라면 두번째 살인을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때는 나와 너만 생각하느라, 그녀의 존재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끝으로 아무리 가족이더라도 남의 스마트폰은 봐서는 안된다. 살인으로 가는 티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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