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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천년의 질문

 

이것 참 씁쓸하구먼이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읽고 난 후, 그 유행어가 생각났다. 천년의 질문도 마찬가지였으나, 그 강도는 훨씬 강했다. 왜냐하면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지나온 역사에 내가 살던 시대가 아니지만, 천년의 질문은 바로 지금, 현재를 다루고 있어서다. 그나마 긍정적인 결말이라 조금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막 좋거나 기쁘지만은 않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계란이 필요할까? 

 

다섯개의 권력집단이란, 입법, 사법, 행정의 국가권력과 재벌들의 중심으로 한 경제권력 그리고 국민 우매화의 여론 조성에 앞장선 언론권력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핵심인물은 장우진기자, 곁다리인지 주조연급인지 재벌의 비리를 낱낱이 보여주는 성화재벌의 사위 김태범 그리고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말만 할뿐 결국은 자기 앞가림에 정신이 없는 국회의원 윤현기가 나온다.

 

기레기, 기더기가 아닌 진정한 기자를 만나다

"턱이 이르도록 긴 머리카락은 직선으로 뻗어 내리며 그의 숙인 얼굴을 절반쯤 가리고 있었는데, 지적인 얼굴에 우수까지 서리니 더없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본문 중에서)

소설에는 시사포인트의 장우진기자로 나오는데, 누가봐도 주진우기자다. 느낌은 같은 사람인데, 현실과 달리 소설 속 장우진이 말도 잘하고, 엄청 매력적으로 나온다. 특히 김어준총수인 듯한 김선재보다 말을 더 잘하는 인물로 나와서 깜짝 놀랐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촛불혁명 후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이 됐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2017년 가을쯤으로 나온다. 

 

언제부텨인가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뉴스를 읽지 않는다. 종이신문은 지하철 무가지 신문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간 거 같다. 뉴스는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한 언론사와 유튜브로 구독을 한 무슨무슨TV 그리고 뉴스공장, 뉴스타파, 뉴스쇼, 정면승부 정도다. 스스로는 기레기가 작성한 기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중앙일보 종이신문을 정독하는 아부지를 볼때마다 맘이 너무 아프다. 더구나 저녁뉴스는 스브스를, 그나마 아침뉴스는 K본부라서 괜찮다고 해야할지. 직접 찾아서 기더기 기사를 읽지는 않지만, 지난주의 기자님상이나 저널리즈 m을 통해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기더기를 볼때면 징벌적 손해배상이 생겨야 정신을 차릴까 싶다. 기더기 세상에서 장우진기자는 사실을 너머 진실까지 파헤치는 진짜 기자다. 

 

재벌, 그들만이 사는 세상인가?

김태범은 서울대 상대출신으로 성화에 입사해 재벌딸과 결혼에 성공한다. 2명의 처남대신 감옥까지 갔지만, 그가 원하는 사장 자리는 결국 아내에게 돌아간다.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성화의 비자금 자료를 갖고 도망치지만, 끝내 잡히게 되고 나중에는 돈한푼 받지 못하고 개털이 된다. 그런데 성화처럼 몰래 비자금은 만들고 싶어하는 다른 기업에서 그를 스카웃하고, 그는 성화에서 했던 것보다 더 치열하게 비자금을 만들어내고 사건사고도 법정으로 가기 전에 막아낸다. 사위였을때 하지 않은 콩고물은 이번에는 제대로 차곡차곡 챙긴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엄마 성으로 개명하는 걸 막기 위해서는 그들만큼 돈이 필요하니깐.

 

재벌에 대한 이야기는 김태범과 미술관 두갈래 이야기가 나온다. 세금을 내지 않고 엄청난 비자금을 모을 수 있는 수단으로 명작 구입이 있기때문이다. 혹시 모를 소송문제가 생기게 되더라고 그들은 절대 떨지 않는다. 왜냐하면 "박 판사님께서 얼마 전에 퇴임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변호사 개업을 하시면서 우리 사건을 맡아주신 겁니다. 시간 끌지 않고 우리 사건을 빨리 끝낼 수 있게 됐으니 우리로선 참 다행이고 행운인 거죠."(본문 중에서) 1심에서 판사를 했던 사람이 2심은 변호사가 된다. 이렇게 화끈한 전관예우가 또 있을까 싶다. 우리게에 10억, 20억은 엄청 큰 돈이지만, 조단위의 비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그들에게 10억은 10만원 정도.

 

"존경하는 사장님, 잊지 않으시고 또 보내주신 연말 선물, 사장님 뵙듯 반갑고 고맙게 받았습니다."(본문 중에서) 재벌 비리를 다루고 있는데, 그 유명한 문자 사건이 아니 나올 리 없다. 역시 예상대로 무한 충성 줄서기라는 소제목으로 등장한다. 뉴스로 접할때는 글(문자)만 있지 이야기가 없어서 삭막했는데, 여기에 이야기를 넣으니 더 끔찍하다. 그 주인공은 한인규라는 인물로 문자를 보면 혼잣말을 하는데, "그래 쪼오아. 그래야지, 은혜를 모르는 건 사람이 아니니까. 무한 충성이라고? 그거 좋지. 계속 그렇게만 해. 그럼 부장만 시켜주겠냐. 더 좋은 자리 부장, 편집부국장, 편집국장, 논설위원, 계속 쑥쑥 올려주지. 느네 사장도 너같이 눈치빠른 세퍼드가 필요하니까. 기특한 녀석."(본문 중에서) 가장 씁쓸했던 구간이다.

 

비밀의 숲이 아니라 그네들의 숲

"검찰은 참 특이하고 묘한 곳이기도 했다. 온갖 죄진 자들을 신속하게 색출하고, 엄중하게 처벌하는 일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 주임무 외에 또 중대한 일들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검사동일체 원칙과 상명하복이었다. 그것은 검찰이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규정하고, 고유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드라마 비밀의 숲에는 황시목 검사가, 소설 천년의 질문에는 황원준 검사가 나온다. 그렇다면 현실은 임은정 검사, 서지현 검사 등등 드라마나 소설보다는 훨씬 많을 거다. 검경·경검 수사권 조정을 다루고 있는 비밀의 숲2를 보면서, 놓아주기 싫은 집단의 매서움과 갖고자 하는 집단의 집념 누구의 승리로 끝나게 될까? 검찰도 경찰도 개혁은 참 힘든거구나 싶다.

 

"어떤 사건을 얼마나 수사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수사권, 기소를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기소독점권, 기소한 다음에 재판에서 행하는 구형권, 경찰을 상대로 하는 수사 지휘권, 그리고 직접 수사권을 발동하는 수사 인력 소유까지 검사가 행사하는 권한은 실로 천하무적적이었다." (본문 중에서)

 

우리도 그들처럼 될 수 있겠지?!

국회의원에게 당연히 지급되는 승용차 없다.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점심은 도시락을 먹는다. 한국 국회의원에게는 9명의 보좌관이 있는데, 스웨덴 국회의원은 보좌관도 비서도 없다. 단, 두의원당 한명씩 국가입법 조사관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국회의원의 특권도 없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듯, 모든 국회의원들은 일반 근로자들과 똑같이 일할 뿐이란다. 

"모든 지출은 100퍼센트 투명하게 영수증으로 입증되어야 하고, 모든 세금 사용은 단 한 푼도 속이지 않고 국민 앞에 공개됩니다. 세금 낭비는 곧 도둑질이라는 고정인식이 국민이나 의원 들이나 확고합니다."(본문 중에서)

 

지자체 의원들은 그 어떤 보수도 받지 않고 봉사하는 맘으로 일을 한다. 주민의 행복과 안전을 위한 일한다는 긍지와 보람이 그들이 받은 보수라면 보수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아니다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가능하게 만드는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비영리 민간단체는 2십 3만 2천여개, 핀란드는 14만 4천여개, 프랑스는 100만개, 영국은 87만개, 네덜란드는 6만 5천여개. 그에 비해 한국은 숫자로는 만개가 넘지만 지속적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데는 몇십 곳."(본문 중에서) 

국민이 국법을 준수하는 것은 의무이고, 국민이 위임한 모든 권력을 철저하게 감시 감독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다. 그 권리 행사는 바로 시민단체를 통해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며 가장 저질스러운 정치인들에게 지배당한다. 플라톤의 말처럼 된다.

 

세상은 여전히 온갖 비리가 난무하고 있지만,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제시하면서 천년의 질문은 끝이난다. "민주주의는 투표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 전체의 행복을 만들어내는 참다운 민주주의를 원하거든 모든 권력자들을 철저하게 감시 감독하는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너나"사모, 소설 속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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