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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은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뉴스를 보고 설마 했다.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과 달리 11년 전에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일명 무당층이었다. 그렇다고 투표를 안한 적은 없다. 그저 주변에서 이사람이 좋다고 하면 그런가 하면서 나의 의사와는 별개로 투표를 했다.  

 

무당층이었지만 IMF 후 DJ를, 5년 후 역시나 정치에는 별관심이 없었지만 투표는 제대로 했다. 5년 후 다시 남 따라서 우측으로 갔지만, 그 다음부터 지금까지 내 주관대로 올바르게 투표는 하고 있다. 왜냐하면 11년 전과 달리 이제는 정치에 관삼이 많아졌으니깐. 대통령으로서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아주 오랫동안 이해를 못했다. 그러다 고 노회찬의원이 떠났을때가 돼서야 이해하게 됐다. 믿었던 사람들조차 등을 돌리고,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니, '내가 없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웠다면... 그래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을 거 같다. 

 

문재인의 운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그분의 더 빨리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너무 늦게 봤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고 했었는데, 그 당시 세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양쪽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언론은 죄다 청와대를 까기 바빴고, 그 언론을 보고 그대로 믿었던 나는 그저 부정적으로만 바라봤다. 그때도 팟캐스트나 유튜브 등 대안 미디어가 있었다면, 세상은 좀 더 균형을 잡았을텐데 너무 아쉽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레기는 여전한데 그때는 그들이 기레기인지 몰랐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과 진실은 너무 달랐다. 레거시 미디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변호인석에 그 많은 좌석이 있을 리 없었다. 방청석까지 변호인들로 가득 찰 정도였다. 재판장이 변호인의 출석여부를 확인하는데, 방청석에서 끊임없이 '예'하며 손을 들었다. 변론을 입으로 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말없는 변론이 됐다. 결국 구속 23일 만에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될 수 있었다. (본문중에서)

영화 변호인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 그런데 현실은... "그러나 검찰은 87년 11월 끝내 노변호사를 불구속 기소했고, 그와 동시에 노 변호사는 변호사 업무정지 명령을 받았다. 업무정지명령은 노 변호사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인 88년 6월에야 해재됐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얘기를 하니, 노 후보는 버티는 것을 대단히 힘들어했다. 내게 의견을 물어왔다. 나는 '원칙' 얘기를 했다. "우리가 쭉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겪어봤지만 역시 어려울 때는 원칙에 입각해서 가는 것이 가장 정답이었다. 뒤돌아 보면 늘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땐 힘들어도 나중에 보면 번번이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노 후보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본문중에서)

코로나19 사태를 원칙대로 하니, 우리나라는 방역선진국이 됐고, 우리의 코로나19 대응은 교과서가 됐다. 원칙, 어찌보면 참 쉬운 거 같은데, 절대 쉽지 않다. 코로나19 사태 초창기를 생각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때 언론과 야당에서 한 무차별 공격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나는 첫 1년 동안 치아를 10개쯤 뽑았다. 나뿐 아니라 이호철 비서관과 양인석 비서관은 비롯해 민정수석실 여러 사람이 치아를 여러 개씩 뺐다. 웃기는 것은 우연찮게도 나부터 시작해서 직급이 높을수록 뺸 치아수가 많았다. (본문중에서)

두번의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그리고 비서실장까지 경험이 있었기에 인수위가 없는 대통령이었지만, 어느 대통령보다 가장 뛰어난 대통령을 만났다. 촛불이 만든 대통령이기도 하고, 사실은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었을까 싶다. 

 

검찰과 언론이 한 통속이 돼 벌이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뇌물로 받은 1억 원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갖다 버렸다는 '논두렁 시계' 소설이 단적인 예이다. 사법처리가 여의치 않으니 언론을 통한 망신주기 압막으로 굴복을 받아내려는 것 같았다. (본문중에서)

슬픈 일이지만, 이때의 학습효과로 인해 작년에 다시 촛불을 들었다. 이번에는 그네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뭐가 맞고 틀린지 스스로 찾아봤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 조선시대에 오성과 한음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노무현과 문재인이 있다. 위인전같은 책이 아니라, 지금 현재 ~ing라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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