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생 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100번은 아니지만, 10번 이상은 읽은 거 같다. 초등학교때 처음 어린왕자를 읽었고, 성인이 된 후에도 가끔씩 어린왕자를 읽는다. 어린왕자와 비슷한 나이대에는 왜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을 모자라고 할까? 딱봐도 아닌데 생각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보아뱀인 걸 알고 있었지만, 모자라고 해도 믿었을 거 같다. 그만큼 때가 많이 묻은 어른이 됐으니깐.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면 정작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묻지 않는다. '그애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애는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수집하니?'라고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대신에 '나이가 몇이니? 형제는 몇이고? 몸무게는 얼마지? 아버지 직업은 뭐니?'하고 그들은 묻는다. 그래야만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줄로 생각한다. (본문 중에서)
아무리 어른이 되어도 이거 하나를 바뀌지 않길 바랬다. 숫자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랬는데, 나도 어쩔 수 없나보다. 이번에도 똑같은 다짐을 하지만, 아마도 지키지는 못할 거 같다.
어린왕자를 다시 찾게 되는 순간이 있다. 삶에 지쳐 힘들때, 편견으로 가득 찰때, 세상이 다 어둡게 보일때 등등 마음의 디톡스가 필요할때 책장에서 하얗게 먼지가 쌓인 어린왕자를 꺼낸다. 종이책은 들고 다니기 귀찮아서 밀리의 서재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어린왕자는 무조건 종이책으로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자책에는 그림이 너무 작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고 전자책으로 읽다가, 다시 종이책으로 바꿨다.
어린왕자는 워낙 유명한 소설이니, 굳이 줄거리를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그중에서도 많이 알려진 부분은 어린왕자와 여우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길들여 진다는 거.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질 테니까, 네 시가 되면 난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지도 몰라. 그러다 보면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게 되겠지! " (본문 중에서)
신가하게도 어린왕자는 읽을때마다 와닿는 부분이 매번 다르다. 처음에는 보아뱀, 숫자만 따지는 어른, 어린왕자와 여우, 어린왕자가 자기 별로 돌아가는 순간 등이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 감동코드로 다가왔다.
"어린왕자의 별은 소혹성 325호, 326호, 327호, 328호, 329호 330호와 이웃해 있었다. 그래서 일거리도 구하고 견물도 넓힐 생각으로 그별부터 찾아가보기로 했다." (본문 중에서)
생뚱맞게 왜 이부분인지는 모르겠다 어린왕자가 지구로 오기 위해 만났던 사람(어른)들의 이야기가 이번에는 유별나게 쿵하고 다가왔다. 왕이 살고 있는 별에 누군가 찾아오면 죄다 신하가 된다. 왜냐하면 왕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신하이니깐. 두번째 별에는 허영심이에 빠진 사람이 살고 있다. 답례를 하기 위해 야릇한 모자를 쓰고있는데, 불행히도 그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세번째 별에는 술꾼이 살고 있다. 술을 왜 마셔요라고 어린왕자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잊기 위해, 부끄럽다는 걸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게 부끄러워." 네번째 별에는 별을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한 사업가가, 다섯번째 별에는 명령에 따라 가로등을 끄고 켜는 사람이 살고 있다. 그리고 여섯번째 별에는 커다란 책을 보고 있는 늙은 신사가 살고 있다. 그는 지리학자이지만 별, 바다, 산, 도시, 강, 사막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곳들을 조사하는 건 탐험가의 영역이고 자신은 그저 서재에 앉아 그들의 기억을 기록한다. 지구는 일곱번째 별이었다.
이번에는 왜 이 부분이 끌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들 중에 내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고 하고, 뭐랄까? 자기만 알고 자기 말만 하는 꽉막힌 어른으로 살고 있었나 보다. 책을 읽었다고 확 바뀌지는 않겠지만, 제어하는 능력은 생긴 거 같다.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온 어린왕자가 다시 사라지기 전까지 나쁜 어른에서 동심 가득 어른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 몇개월 아니 몇년 후에 다시 어린왕자를 읽게 될텐데, 그때는 어느 부분에 마음이 끌릴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상자그림 속 양을 이해할 수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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