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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그남자네 집 | 달콤하고도 슬픈 추억 첫사랑

박완서 작가의 첫번째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년 출간)는 그녀의 유년시절의 이야기다. 두번째 자전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7년 출간)는 그녀의 성년시절부터 결혼까지의 20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자전소설 "그 남자네 집"(2004년 출간)은 그녀의 첫사랑 이야기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도 첫사랑의 이야기가 살짝 나오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남자네 집에 담겨 있다. 그남자네 집이라고 해서, 남편분과의 사랑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결혼 전  외가쪽 친척인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더불어 앞서 읽었던 2편의 소설에도 나오지만, 1950년대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그 여자가 첫사랑 그남자가 살았던 돈암동 안감내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 예상을 뒤엎고, 이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서 홀로 초연히 그 남자네 집은 그냥 조선 기와집으로 남아 있었다."(본문 중에서) 주변 집들은 4~5층 높이의 빌딩으로 변했지만, 그 남자네 집만은 철문이 새로 생겼을 뿐,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다시 20대로 돌아간 듯, 문을 열면 그 남자가 나올 거 같지만, 현실은 굳게 닫힌 철문이 막아서고 있다. 

 

현재에서 과거로 그녀의 첫사랑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해 겨울 퇴근하는 전차 안에서 그 남자를 만났다. 남자가 먼저 반색을 했다. 그는 다짜고짜 나를 누나라고 불렀다. 누나라는 말은 묘했다. 마음이 놓이게도 섭섭하게도 했다. 늦은 시간의 전차 안은 텅 비어 있었지만, 그 안에서는 서로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것 이상의 감정표현을 하지 못했다."(본문 중에서)

 

6.25 전쟁으로 그 여자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미군부대에서 일을 해야했고, 그 남자는 아버지와 형은 북으로, 누나들은 부산으로 피난을, 돈암동 집에는 어머니만 홀로 남았다. 그는 국군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상이군인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외가쪽으로 친척이라 그 여자의 어머니는 둘의 만남을 그저 친척간의 교유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해서든 둘 사이를 갈라 놓았을 거 같기 때문이다. 사랑인듯 아닌 듯 그 여자와 그 남자의 만남 혹은 데이트는 계속 된다.

 

"주로 중앙극장에서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곧잘 명동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종로거리가 완전히 파괴되고 시민들은 거의 다 피난을 가셔 주택가에도 사람 사는 집이 얼마 안 되던 전시에 명동의 은성한 불빛은 비현실적이었다. 우리는 부나비처럼 불빛 안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본문 중에서) 사랑만 하기도 아까운 시간인데, 시대가 시대인지라 그들의 연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운명의 장난일까? 그남자와의 거리가 소원해지자, 뉴페이스가 등장했다. 그는 구 은행원, 현 미군부대 군속, 곧 다시 은행원이 될 남자였다. 연애만 했던 그 남자와 달리, 그와는 결혼을 한다. 휴전이 된 이듬해 봄, 그 여자와 그는 결혼을 했다. 그의 어머니 즉 시어머니는 엄청난 요리고수다. 작가가 풀어놓는 시어머니의 조리법을 읽고 있으면, 머리 속으로 상상이 되고 저절로 입맛을 다시게 된다. 

 

"민어 말고도 시어머니가 지극정성으로 손수 절여서 말린 굴비도 식욕이 떨어지는 여름철을 살맛 나게 하는 미각이었다. 친정에서도 영광굴비는 먹어보았지만, 시집에서 물 좋은 조기를 제때에 장만해 간을 맞춰 건조시킨 굴비맛에 댈 게 아니었다. 잘 마른 굴비도 껍질과 살 사이에는 기름기가 많아 북어처럼 메마르지 않았다. 점심 반찬을 하려고 짝짝 찟고 나면 손바닥에 기름이 흘렀고, 육질은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특히 단단하게 잘 마른 알맛은 조금 맛본 어란 맛 못지 않았고, 빛깔은 투명한 조니 워커 빛깔이었다." (본문 중에서)

 

현실판 자유부인이 된 듯, 그 여자는 우연한 계기로 다시 그 남자를 만나게 됐다. 장을 보러가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여자의 삶에 활력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남자와 기차를 타고 근교로 나들이를 떠나기로 했지만, 당일 청량리역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그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남자는 시력을 잃고 나는 귀여움을 잃었다. 나의 첫사랑은 이렇게 작살이 났다.(본문 중에서)

 

책소개에 사랑이 사치가 되던 그 시절, 구슬 같던 첫사랑 이야기라고 나와 있다. 6.25전쟁 직후에 왠 사랑타령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랑이야 말로, 인류에게 있어 절대 꺼지지 않은 불이라 생각한다. 그나저나 나의 첫사랑 그남자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지금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오랜만에 달콤하고도 슬픔 첫사랑의 옛추억을 꺼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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