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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자전소설은 총 3부작이다. 제1부는 작가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의 일들을 그린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 제2부는 6·25 전쟁 동안 작가가 스무 살의 처녀로 겪었던 체험을 그린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다. 아름다워야 할 20대는 전쟁으로 인해 싹쓸이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스무 살이던 1951년은 국군이 서울을 다시 버려야 했던, 1·4후퇴가 있었다.

 

그 많던 싱아에서 인민 의용군으로 잡혀간 오빠땜에 피난을 갈 수 없었던 그녀의 가족은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때 그 편에 서게 된다. 세상이 달라졌는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할 수 없었을 거다. 그랬다가는 바로 총살형이었을테니깐.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은 서울을 탈환하게 되는데, 이때 서울에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숙청 아닌 숙청이 진행된다. 이유는 북한군을 도와줬기에 빨갱이라는 거다. 그녀의 가족에게는 큰 불행은 없었지만, 작은 숙부는 감옥에서 처형을 당했다. 그 당시 북한군에 동조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전혀 아닌데 주변 사람들의 밀고로 허망하게 죽어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북한군이 있을때, 나는 굶주려 살았는데, 옆집 누구누구는 배불리 먹고 잘 살았으니깐, 빨갱이다." 한창 전쟁 중이었으니 기다, 아니다를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치더라고, 너무 허망한 죽음이다.

 

인생은 반복의 연속이라더니, 1951년 1월 4일 국군은 다시 서울을 버리고 후퇴를 한다. 이때 그녀의 가족들은 학습효과로 인해 피난을  준비한다. 그런데 의용군으로 갔다가 돌아온 오빠가 도민증을 받기위해 갔던 시골 학교에서 총기 사고로 다리를 다치게 된다. 부산, 대구 등 멀리 갈 수 없어서, 돈암동에서 어릴적에 살았던 현서동 달동네로 오게 된다. 이건 피난이라 할 수 없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피난을 갔다 온 거처럼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오빠는 이 수도 서울에 우리 식구 말고 다른 사람이 있나 없나를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우리가 누구 치하에 있나가 알고 싶은 거였다. 우리가 지금 이고 있는 하늘이 대한민국의 하늘인지 인민공화국의 하늘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다시 겨끔내기로 내쫓겼다. 깃대빼기가 솟아 있는 건물은 (서대문)형무소 말고도 몇 군데 더 있었지만, 아무것도 나부끼고 있지 않았다. 국군은 시민을 죄다 피난시키고 나서 후퇴했으니 서울을 비워 준 셈이건만 인민군은 어디서 뭘 하는지 아직도 입성을 한 것 같지가 않았다." (본문 중에서)

 

진공 상태인 서울, 그리고 현서동 달동네는 그녀의 가족들만이 남겨졌다. 6·25전쟁이 났을때 모든 사람들이 다 피난을 떠난 줄 알았다.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을 읽기 전에는 말이다. 공무원, 경찰 그리고 지주들은 전쟁이 났을때 죄다 피난을 떠났지만, 서민들은 떠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땅(벼농사)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태백산맥의 무대는 전남 벌교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무대는 서울이다. 남겨진 사람들이 있었다니, 책을 읽지 않았으면 계속 몰랐을 거 같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지만, 그 어디서도 알 수 없었던 또 다른 역사다.

 

전쟁보다 더 무서운 건 아마도 배고픔이지 않을까 싶다. 달동네로 피난 오면서 가져온 식량이 동이 나자, 작가와 올케는 남의 집 담장을 넘게 된다. "도둑질에 죄의식이 없어지고 후환을 근심하는 것까지 배부른 수작으로 여겨졌다. 오로지 배고픈 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모조리 엄살이요 가짜라고 여길질 정도로 나는 악에 받쳐 있었다." (본문 중에서)

 

다시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기 전, 작가와 올케 그리고 젖먹이 아기는 강제적으로 북으로 피난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올케의 현명한 판단으로 인해 임진강을 넘지 않고,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부근에서 지내다가 다시 서울 돈암동 집으로 오게 된다. 이때 남겨진 가족도 다시 만나게 된다. 

 

"깃대빼기에 태극기가 오른 날, 우리는 신임장과 식권을 잘게잘게 찢어 불아궁이에 던졌다. 그리고 몰래 숨겨 가지고 다니던 시민증을 꺼내서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안주머니에 소중하게 간직했다." (본문 중에서)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 서울은 소설의 주인공이다!

전쟁은 전선의 이동이 없는 진지전 형태로 전환이 됐다. 그로 인해, 서울은 줬다 뺏다의 반복을 멈췄고, 전쟁인듯 전쟁 아닌 활기에 찬 서울로 변해 간다. "미 8군의 메인 피엑스는 해방 전에는 미쓰코시였다가 해방 후엔 동화백화점이 된 건물을 쓰고 있었다.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건물이다." (본문 중에서) 그녀 나이 21세, 서울대학생 학벌로 인해 피엑스에 취직을 하게 된다.

 

"검문소를 통과하고 나서 한참을 더 가서 복도가 오른쪽으로 꺾이고, 그 끝에 있는 문을 밀고 들어서니까 매장이 나타났다. 들어서자마자 있는 것은 사진을 현상하는 사진부였고, 그 다음이 내가 일할 파자마부, 가운데가 귀금속부, 가죽제품부, 목공예품의 순서로 한국물산 매장이 있고, 그 다음부터는 미제 물품을 취급하는 진짜 피엑스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안목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게 그때는 눈이 돌게 휘황한 별세계였다. 주야로 포성이 그치지 않고 밤이면 북쪽 하늘에 전쟁의 섬광이 불길하게 명멸하는 이 최전방 도시에 이런 고장도 있었던가, 마치 흑백영화에서 갑자기 총천연색영화의 세계로 떠다밀린 것처럼 얼떨떨하고도 활홀했고, 뭔지 모르게 억울하기도 했다." (본문 중에서)

 

피엑스 부분을 읽을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았던 부분이기도 했고, 한창 전쟁 중인데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웠다. 피엑스에서 몰래 빼돌린 물건은 남대문에서 비싼 가격에 팔렸을 거고, 역시 미제가 최고 하면서 돈 있는 사람은 앞다투어 물건을 구입했을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혼자가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다니,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급 상승했다. 

 

"해가 더디 지는 봄날이었다. 밤 벚꽃 놀이는 중단된 채였지만, 전차가 창경원 앞을 지날 때는 모두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정도로 무르익은 화사함이 고궁 담을 넘쳐 전차 속까지 투영되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나도 석간신문을 보다 말고,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비틀어 미친듯이 만개한 벚꽃을 내다보았다." (본문 중에서)

 

1, 2부에 이어 3부도 있다. "그 남자네 집"이라는데, 아직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았는지 밀리의 서재에 없다. 아무래도 종이책으로 읽어야 할 듯 싶다. 역사는 힘 깨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박완서 작가의 자전소설은 누구나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작가의 기억력에 경의를 표하면서 그 남자네 집, 나목, 목마른 계절 등 종이책을 구해서 계속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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