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란 장르에 넣을 수 있을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있기도 하지만,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넣기에 너무나 아깝다. 왜냐하면 허구 이미지가 강한 소설로 이 책을 포장하기엔 내용이 너무나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작가 본인의 이야기로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지만, 읽다보면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그리고 6·25전쟁까지 아픈 근대사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기억력이 참 대단하네 하면서 재밌게 읽어 나갔지만, 그 속에 담긴 우리의 아픈 역사가 보이는 순간, 이건 소설이 아니라 역사서다.
교과서라는 무게감 때문일까? 교과서에 실린 내용은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주로 임금, 장군 등 힘 깨나 있는 높은 사람들을 주로 다룬다. 세종때는 이런 일이, 고종 때는 이런 일이 등으로 시대와 함께 왕이 연결된다. 어릴때 본 조선왕조 대하드라마 역시, 왕들의 이야기였다. 왕은 한명이고, 중신의 수도 그리 많지 않을텐데, 역사 교과서처럼 드라마도 늘 그들이 주인공이다. 백제에서 신라로, 신라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나라는 바뀌지만, 땅을 가꾸면 살아가는 백성들에게는 그저 나라 이름만 바꿨을뿐, 달라지는 건 그리 많지 않았을 거다. 언제나 그 땅을 지키며 대를 이어 살아왔을텐데, 역사는 늘 힘 깨나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사극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왕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왕은 그저 건들뿐, 주인공을 하는 계층이 다양해졌다.
어렸을때부터 꾸준히 써왔던 일기, 역사교과서에는 넣을 수 없는 그저 개인의 역사일 뿐이다. 하지만 1980년 5월 광주에 살았던 아이였다면? IMF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면? 2002년 월드컵 4강전을 직관했다면? 2016년 겨울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면? 한낱 개인의 역사라 할 수 있을까? 힘 깨나 있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역사교과서에는 넣을 수 없을지라도,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이니깐. 서두가 너무 길었다.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의 슬픈 근현대사이기도 하다.
"흰옷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초가지붕마다 뿜어 올린 저녁연기가 스멀스멀 먹물처럼 퍼져 길과 논밭과 수품과 동산의 경계를 부드럽게 지워 버려, 마침애 잿빛 하늘을 인 거대한 한덩어리가 되었을 때도 흰옷 입은 사람이 산모퉁이를 돌아오는 것은 잘 분간이 되었다. (중간생략) 할아버지의 독특한 걸음걸이는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강렬한 빛처럼 직통으로 나에게 와 박혔다. 우리 할아버지다라고 생각하자마자 나는 총알처럼 동구 밖으로 내달았다." (본문 중에서)
"자화상을 그리듯이 쓴 글.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써보았다."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책은 개성에 살던 시절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마도 5, 6세때일 거 같은데 그때 나는 뭐했나 싶을만큼 엄청나고 대단한 기억력이다.
"세숫물 버리지 말고 거기다 발 닦아라. 발 닦은 물 버리지 말고 거기다 걸레 빨아라. 걸레 빤 물도 버리지 말고 놔둬라. 이따가 마당 쓸때 뿌릴 거니까." (본문중에서) 개성에서 엄마와 오빠가 있는 서울 현저동 달동네로 온 후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어린 박완서. 개성에 사는 할아버지가 만석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 양반에 삼시세끼 밥은 굶지 않고 살았는데, 서울로 오면서 소공녀 세라처럼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된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중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상처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 (본문중에서) 싱아에 대한 궁금증 해소.
"엄마의 생각은 뒤죽박죽이었다. 등화관제로 전깃불을 끄고 깜깜한 방에 죽치고 앉았을 때는 폭격을 맞아 다 죽는 한이 있어도 일본 놈들 폭삭 망하는 꼴이나 좀 봤으면 좋겠다고 폭언을 해서 누가 들을까 봐 겁나게 하다가도 아들이 일본인한테 잘 보이고 중하게 쓰인다는 것은 또 그렇게 자랑스러워할 수가 없었다."(본문중에서)
친일파니? 독립운동이니? 이분법으로 나누기 보다는 하루하루 밥 굶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게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면서 일제강점기를 보냈을 거 같다.
"그건 말끝마다 절대지지 아니면 결사반대가 붙은 당시의 말버릇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너나없이 어느 한쪽 이념에 붙지 않으면 불안한 해방 후의 사회상 탓도 있었지만 그중에도 하필 좌익이었다는 건 오빠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중간생략) 그러나 엄마는 빨갱이 짓에 한해서는 집안 망치고 제 몸 망친다는 일관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가 이해하는 빨갱이 짓의 초보는 이승만 박사를 반대하는 것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거기까지는 이해하고 동조할 아량이 있다는 것을 늘 강조했다."(본문중에서)
세상이 달라지고 난 후, 친일과 독립운동이 아닌 또다른 이분법이 등장한다. 좌익이냐? 우익이냐? 하지만 여기서 잠깐, 좌익도 우익도 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엄마때문에도 그랬지만 나는 좌익이고 우익이고를 막론하고 집회나 시위, 구호 외치는 것 따위가 싫었다."
"1950년, 나는 열아홉 살에서 스물살이 되었고, 황금 같은 고 3 시절은 그해에 한해서 9개월밖에 안됐다. (중간생략)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새롭게 전개될 생활에 대한 예감에 충만한 특별히 아름다운 5월이었다. 그러나 하필 1950년 5월이었다." (본문중에서) 누가 알았을까? 그해 6월 25일에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걸.
"인민군이 삼팔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시도했다는 뉴스를 듣긴 했지만 전에도 삼팔선에선 충돌이 잦았고 그때마다 국군이 잘 물리쳐 왔기 때문에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설사 전하고는 다른 전면전이 된다고 해도 우리가 시골로 들어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본문중에서)
하지만 전쟁은 일어났고, 그녀와 가족은 피난을 가지 못한채, 국군이 다시 서울을 수복할때까지 서울에 있게 된다. 그 기간동안 그들은 서울을 버리고 도망간 정부를 지지해야 했을까? 아니면 북에서 내려온 정부를 지지해야 했을까? 이건 좌익이냐, 우익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데 이데올로기는 그저 사치일뿐이다.
그런데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면서, 그때 서울에 있던 사람들에게 빨간 옷을 입혀버린다. 죽지 않으려고 했던 행동이 결과적으로 북으로 넘어간 그들을 도와줬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세상은 또한번 바뀐다. 1·4후퇴, 작가와 가족들은 이번엔 제대로 피난을 떠날 수 있을까? 학습효과가 있는데, 이번에도 버젓이 서울에 머물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 이야기가 매우 몹시 궁금한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여기까지다. 이렇게 미완성으로 끝나는 건가 했는데, 다행히 후속편이 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ps...뜻한 건 아닌데, 6·25전쟁이 일어난지 어느새 70년이 됐다. 여전히 한반도는 종전이 아니라 정전 중이다. 전쟁의 끝, 종전의 그날은 언제쯤 오는 걸까? 하노이 회담이 잘 됐더라면, 종전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됐을지도 모른다. 선제 폭격을 해야 한다고 회고록에 나왔다는데, 자기네 땅이 아니라고 막말하는데, "거 넘 심한 거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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