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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 전자북

12권을 다 읽기까지 두어달 걸렸다. 무섭게 더웠던 8월의 어느날, 일제강점기를 두고 얼토당토않는 말들이 가방끈이 겁나 긴 자들을 통해 쏟아졌다. '왜 저럴까?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아니면 진짜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혹시나 어디서 돈을 받았냐?' 터무니없는 소리를 마치 진실인냥 말하는 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혹시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구심은 들지 않았지만, 좀 더 명확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교과서는 결과의 산물 즉, 통보서다.

몇년도에 전쟁이 났는데 그때 누가 이기고 누가 졌다. 그래서 나라가 고조선에서 삼국 그리고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진다. 결과 통보서이긴 해도, 조선시대까지는 그나마 디테일하게 다뤘다. 물론 연도와 명칭이 가장 중요했고, 연도별로 나열해서 외워야 하니 수포자에 물포자처럼 역사포기자도 꽤 많았다. 하지만 역사를 좋아했기에, 역사 교과서를 마치 소설책인냥 3~4번을 정독했던 사람으로 늘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 역사에서 결과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왜 과정을 다루지 않을까?

특히 기말고사 범위에도 들어가지 않는 근현대사 부분은 정말 연도별로 꽤 중요하다 싶은 일들만 나열하고 있다. 기말고사가 끝나야 배우는 부분이라, 선생도 학생도 대충이다. 어찌보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근현대사인데, 고조선보다도 신라보다도 조선보다도 못하는 대접을 받았다. 성인이 된후 스스로 찾아나섰다. 역사여행을 주로 다녔고, 박물관이나 기념관은 꼭 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나둘 교과서에서 알려주지 않은 진짜 역사를 배우게 됐고,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됐다. 

3.1운동에서 유관순 열사를 모르는 이는 없을 거다.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을 모르는 이도 없을 거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와 함께 만세를 외치던 친구가 있었을 거고, 의열단 소속으로 김원봉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이름 모를 단원들이 많았을 거다. 하지만 그들이 누군인지 알지 못한다.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 장군 혼자서 한 전투가 아니다. 영화에서 처럼 봉우리마다 뺴곡하게 서 있던 사람들,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을 읽고자 마음 먹은 이유다. 물론 아리랑에서도 그들의 이름을 다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도 홍범도 장군과 함께 싸운 누구누구, 의열단 소속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누구누구, 소설이니 당연히 허구의 인물이겠지만,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때는 존재했을 인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아리랑은 소설이 아니라 과정을 담고 있는 역사서다.

"태백산맥 10권 1만 6,500장을 6년 동안 썼고, 이제 아리랑 12권 2만장을 4년 8개월 만에 마친다. 두작품을 쓰면서 10년 8개월의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중간생략) 그래서 나는 그 유랑의 삶터를 찾아 세계 여러 곳을 다녔다. 중국 두번, 미국 세번, 동남아시아 세번, 러시아 두번, 일본 세번이 취재여행의 거리를 전부 이어 놓으면 지구를 세바퀴 이상 돈 것이 될 것이다.

분단대립으로 반토막 나고, 또 친알파들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차단시키고 망각을 조장한 식민지시대의 역사를 구체적이며 총제척으로 바로 알고, 우리 모두가 식민지시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굴복감과 패배감, 수치심을 진실한 역사 사실들을 통해 우리의 식민지시대는 저항과 투쟁의 승리의 역사였음을 확인시키고 우리 모두에게 상실되어 있는 민족적 긍지감과 자긍심, 자존심을 회복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12권 아리랑을 마치며 중에서)

 

1권부터 12권까지 모든 장이 다 슬펐고, 아팠다. 그래도 6권에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다룰때에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졌지만, 그 후 복수를 한다며 마구잡이로 백성들을 잡아 죽이는 일제의 만행이 나오자 다시 우울해졌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 그건 아니다. 독립을 위해 한반도에서 만주에서 중국에서 러시아에서 전투는 계속 됐고, 먼 하와이에서도 독립투쟁은 이어졌다. 아리랑에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방씨네 가족과 송수익 선생 그리고 공허스님이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고스란히 받아 큰아들은 하와이로 막내아들은 의열단 단원으로 첫째딸과 셋째딸은 예쁜 외모로 인해 일본인에게 친일파에게 조폭과 밀정에서 겁탈을 당한다.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첫째딸의 아들은 만주로 가 삼촌과 함께 군인이 되지만 끝내 해방된 조국을 맞이하지 못한다. 

아리랑 속 인물들 중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모르게 사라진 인물들이 참 많이 나온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공허스님이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그는 총알받이가 되고 그렇게 사라진다. 하지만 그의 핏줄을 이어받은 아들은 아버지처럼 다시 독립군이 된다. 양반이지만 아래 사람에게 존대를 하고 의병을 시작으로 만주에서 독립운동까지 아리랑에서 주인공을 한명만 정하라고 한다면, 단연코 송수익이다. 그를 따라 이야기가 전개 되었고, 그의 죽음 후에는 두아들 그리고 손자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을 한다. 대하소설답게 인물이 겁나 많다. 하지만 아버지가 독립운동을하며 아들에 손자까지 역시 독립운동을 한다. 아버지가 친일파라면 아들 역시 친일파다. 밀정처럼 처음에는 안그랬다가 결과적으로 친일을 하는 인물도 있긴하다.

전권을 다 읽으면 좋겠지만, 딱 한권만 읽고 싶다면 승리의 기록을 담고 있는 6권도 좋지만,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강제 징용과 위안부를 담고 있는 12권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 권이라 헤어졌던 가족이 다시 만나고, 땅을 빼앗긴 사람들이 다시 땅을 찾고, 중앙아시아나 만주로 떠난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겠구나 했다. 하지만 마지막 권은 맞지만, 작가는 끝맺음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도 그 역사가 이어지고 있으니깐.

 

"복실이는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거기가 퉁퉁 부어오르고 속이 쓰리고 욱신거리고 화끈거리는데다 불두덩이며 아랫배 전부가 터지는 것 같고 찢어지는 거같이 아파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40명을 치렀는지 50명을 치렀는지 알 수도 없었다."

"노무자들은 어두운 방공호 안에서 규칙위반을 해가며 여기저기서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런데 방공호 밖에는 군인들 열댓 명씩이 양쪽으로 도열해 있었다. [준비이, 투척!] 장교의 명령이 떨어지자 방공호 입구를 막고 있던 위장문이 치워지며 군인들이 일제히 방공호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기관총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중간생략) 기관총 난사가 끝나자 군인들은 신속하게 돌덩이들을 방공호 입구에다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다른 군인들 한 패가 돌이 한 겹씩 쌓일때마다 반죽된 시멘트를 퍼다 부었다. 그곳에 징용으로 끌려온 1천여명은 결국 하나도 살아남지 못한것이었다. 지시마 열도 여러 섬에서는 그런 식으로 이미 4천여 명이 죽어갔던 것이다."

"일제는 160여만 명을 강제집용했고, 30여만 명의 여자들을 위안부와 정신대로 끌어갔고, 4,500여 명의 학도병을 포함해 징병으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이들은 40여만 명이었다." (본문 중에서)

 

아리랑 12권을 읽고 난 후, 몸살에 앓았다. 약을 먹으면 안될 거 같아 어 3~4일 동안 그냥 냅뒀다. 그렇게 아리랑을 마음 속에 묻고, 태백산맥 1권 첫페이지를 넘겼다. 소설 아리랑의 주무대는 군산이다. 몰랐을때는 스탬프투어한다고 건성건성 보면서 바쁘게 돌아다녔는데, 이번에는 째보선창부터 다시한번 찬찬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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