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알라딘

3년 만에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다시 읽었다. 공중그네를 시작으로 한때는 그의 필력에 미쳐있었는데, 추리소설에 빠져 멀리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의 작품은 무코다 이발소다. 공중그네가 갖고 있던 엽기는 사라졌지만, 명랑 유쾌 발랄은 여전하다.

"무코다 이발소는 홋카이도 중앙부에 있는 도마자와 면에서 전쟁이 끝난 지 오래지 않은 1950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옛날 이발소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래된 이발소와 한적한 시골마을 그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다. 제목대로 소설의 주인공은 무코다 이발소의 주인장 무코다 야스히코다. 그의 나이 쉰세 살, 스물여덟에 아버지로부터 이발소를 물려받은 후로 사반세기에 걸쳐 부부 둘이 이발소를 끌고 오고 있다.

늘 똑같은 일상만 반복되는 작은 시골 마을, 이발소 손님도 늘 오는 사람만 온다. 예전에는 탄광이 있어 나름 도시다웠는데, 폐광이 된 지금은 노인들이 주로 살고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야스히코는 이발소는커녕 마을 자체가 없어질 거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발소를 물려받겠다면서 젊은 아들이 내려왔다. 

주변에서는 젋은 사람이 와서 마을에 활기가 생기지 않을까 하지만, 야스히코는 비관적이다. 마을 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결론은 언제나 실패였다. 그리고 본인도 도시에서 실패자가 되어 이곳에 내려왔다. 마을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단정 지었기에, 아들의 시골행이 반갑지가 않다.

"우리 세대는 현실을 지겨울 정도로 봐왔어. 세금을 투입해서 제3섹터라고 하는 지역 개발 사업도 했고, 공장도 유치했고, 이런저런 사업을 일으켰다고, 그런데 전부 헛수고였어. 그렇게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고. 그러니 젊은이들의 열의만으로 뭐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지. 이런 말을 하면 주민들 모두가 손가락질하겠지만, 도마자와는 침몰하는 배야. 아비로서, 내 자식을 침몰하는 배에 그대로 남겨두고 싶지는 않군." (본문 중에서)

배경 설명은 여기까지, 축제가 끝난 후 / 중국에서 온 신부 / 조그만 술집 /  붉은 눈 / 도망자라는 소제목으로 오쿠다 히데오만이 할 수 있는 발랄 유쾌 에피소드가 시작한다. 

 

중국에서 온 신부

작은 마을이다 보니, 어떠한 일이 생기면 축제처럼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다. 결혼식만으로도 엄청난 빅이슈일 텐데, 신부가 중국에서 왔다. 새신부에 대한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에 신랑인 다이스케는 더 숨기려고 한다. 하지만 앞집에 젓가락이 몇 개고, 어제 뒷집은 무엇을 먹었는지 다 아는 마을이다 보니, 신랑은 신부를 마을 사람들에게 소개를 시켜준다. 

시작은 작은 모임이었지만, 단조로운 마을이다보니 점점 부풀어 올라 마을 잔치가 된다. 이 과정이 참 재밌다. 정작 주인공은 아무 관심도 없는데, 주변에서 이러쿵, 저러쿵하면서 규모를 키웠기 때문이다. 결국 신랑은 도망을 치고, 마을 해결사인 야스히코가 그를 찾아간다.

"다이스케 농사 그만둘 건가? 그럴 수 없겠지. 도마자와를 떠날 건가? 그럴 수 없겠지. 그럼 훌훌 털어버리자고. 모두가 한 연못 안에서 똑같은 물은 먹고살고 있어. 그게 도마자와야. 그러니까 어울려. 자기를 버리고 그냥 어울리라고. 그럼 편히 살 수 있어." (본문 중에서)

 

조금만 술집

이번에는 한 여자를 두고 삼각, 사각 관계의 치정극(?)이다. 도마자와에는 중년 여성이 운영하는 작은 술집있다. 마을에 술집은 거기뿐이니, 남자들은 자의반 타의반 그곳에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여주인이 미인이라는 소문과 함께 새로운 술집이 오픈을 했다. 더구나 마담인 사나에는 이 마을 출신이다. 야스히코의 아들 친구들이 모인 청년단과 야스히코의 친구들이 모인 중년단 그리고 면사무소의 직원들까지 새로운 술집에는 빈자리가 없다.

야스히코는 사나에를 둘러싸고 몸싸움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러나 설마가 사람잡는다고, 일이 터진다. 이번에도 역시나 중재자로 야스히코가 나선다. 두 명의 남자 중 한 사람은 죽마고우이기 때문이다.

"인구 적은 동네에서 늘 똑같은 얼굴끼리 지내다 보니 많은 것들을 잊어버려. 여자에게 반하는 감정도 그렇지. 사나에 씨가 와사 잊어가는 감정을 들쑤신 것은 다들 마찬가지야. 다니구치 그 사람도. 사쿠라이 과장도. " (본문 중에서)

 

도망자

영화 촬영지로 썰렁한 겨울을 뜨겁게 보낸 후, 마을 출신인 슈헤이가 커다란 사기 사건의 주범으로 TV에 나왔다. 체포 당시 도망을 쳐 현재 지명수배 상태다. 작은 마을은 도시에서 온 경찰들과 기자들로 북적북적하다. 마을 사람들을 저마다 쉬쉬하지만, 둘 이상이 모이면 그 얘기뿐이다.

야스히코의 아들이 속한 청년단이 수상하다. 그리고 슈헤이가 홋카이도에 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왜 슬픔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숨겨둔 거라 생각했는데, 청년단은 그를 타일렀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들 얼굴을 아는 도마자와에 돌아와서 지내는 편이 마음 편하지 않겠느랴고요. 과거를 알아도. 그래도 동네 사람들끼리는 친하게 지낼 수 있잖아요. 형기를 마치면 죗값을 치른 거니까. 우리는 받아들일 거에요. 아버지들도 그렇죠?" (본문 중에서)

 

도시에서 중국인 신부를 맞이하고, 새로운 술집이 생기고, 영화 촬영지가 된다, 마을 잔치까지 할 정도록 엄청난 이슈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조용한 시골 마을이라면 다르다. 이발소를 물려받기 위해 내려온 야스히코의 아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발소 옆에 카페를 같이 하겠다고 큰 꿈을 갖고 내려왔지만, 영화 촬영 때 헤어 서포트를 하면서 다른 꿈을 갖게 됐을 거 같다. 그나마 영화로 인해 촬영지로 각광을 받을 거 같기는 한데,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듯싶다.

그런데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느낌적인 느낌상 칸영화제 같은데 작품상에 감독상, 각본상, 주연 여배우상 싹쓸이는 "거 넘 심한 거 아니오."

매월 6,500원씩 꼬박꼬박 빠져나가고 있는 리디북스, 돈 생각해서라도 책 좀 많이 읽어야겠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