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북구 정자활어직매장 & 독도초장집
게를 좋아하지만, 노동력에 비해 수확은 별로라서 즐겨 먹지 않는다. 그에 반해 영롱한 주황빛깔을 뽐내는 멍게는 없어서 못 먹는다. 원래는 제철 멍게를 원 없이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홍게를 사면 멍게를 서비스로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예상과 달리 살수율이 좋았던 연지 홍게와 향기롭고 부드러운 멍게, 울산 북구에 있는 정자활어직매장 그리고 독도초장집이다.
여기는 울산광역시 북구에 있는 정자항이다. 이름이 거시기(?)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 옛날옛날 포구에 정자나무(느티나무) 24그루가 있어서 그렇게 부르게 됐다고 한다. 지난달에 이어 다시 울산을 찾았는데, 그때는 동구 방어진항 지금은 북구 정자항이다. 공업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몰랐는데, 울산도 깨끗하고 청명한 바닷가마을이다. 저 끝에 보이는 조형물(?)의 정체는 내일 공개됩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어시장을 많이 다녔는데, 정자활어직매장처럼 입구에 떡하니 가격표를 제시한 곳은 처음이다. "우리는 가격으로 장난(?) 치지 않는다."를 이렇게 보여주는 듯싶다. 가격은 1kg 기준으로 나와있는데, 예상하지 않아도 자연산은 후덜덜하다. 그나저나 월요일에는 10% 할인이라니,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참고로 목요일에 방문했다.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현수막은 어딜 가더라도 쉽게 볼 수 있지만, 그대로 따라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정자활어직매장은 다르다. 우선 매대 앞으로 직원이 나와있지 않고, 시장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요하다. 손님이 다가가서 눈이 마주치거나 물어봐야 응대를 해준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질문에 긍정의 표시로 고개만 흔들뿐 "뭐 사러 왔어요?" 등 호객행위는 일절 없다.
바닷가마을답게 작은 소쿠리마다 펄떡펄떡 선도 좋은 녀석(?)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 같은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주인장의 의지인지 모르지만, 이름표에 원산지 표시까지 잘되어 있다.
도다리, 우럭, 밀치, 가자미는 알겠는데 특이한 녀석이 있다. 잡어라는 이름으로 한 곳에 모아 놨는데 솔뱅이, 게르치, 깍다구, 뽈락, 열기, 꼬랑치 등이라고 나와있다. 백퍼 자연산으로 회로 먹는다고 하던데, 잡어라는 이름 때문일까? 선뜻 내키지 않는다.
정자활어직매장은 oo수산과 같은 이름이 없고, A와 B로 구역 표시만 되어 있다. 대체로 주인장의 고향을 표시해 지연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A-1이다. 지연보다는 물건을 보고 선택하라는 의미일까? 입구에 있는 가격표에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현수막 그리고 구역 표시 간판은 낯설지만 믿음이 간다.
홍게보다는 대게라고 하지만, 대게가 대게 크지 않으니 시선은 자연스럽게 홍게에 멈췄다. 가격도 1kg에 1~2만원 차이가 나서 홍게(4만원)로 결정했다. 살수율을 걱정하니 주인장이 봄철 홍게는 살이 많아서 괜찮다고 해서 믿어 보기로 했다.
참, 연지홍게는 연지 곤지를 바른 거처럼 붉은색보다는 불그스름한 주황색에 가까운 때깔을 가졌다. 일반 홍게에 비해서 크기는 작은 편이지만, 짠맛은 덜하고 단맛이 많이 난다고 한다. 그리고 게딱지 안 장맛은 대게의 장맛과 비슷하며 엄청 고소하단다.
살수율도 살수율이지만, 멍게를 서비스로 준다는 말에 더 혹했다는 거, 안 비밀이다. 산지에서 제철 해산물 먹기가 취지이다 보니, 제철이 아니면 꺼리게 된다. 가자미는 지난달에 반건조를 20마리 이상 사서 내내 먹고 있으며, 밀치회도 그때 먹어서 패스다.
멍게와 참소라는 3월이 제철이지만, 힘들게 서울에서 울산까지 와서 주전부리(?)만 먹기에는 애매했다. 홍게가 회는 아니지만 주연급이라 할 수 있고, 여기에 신스틸러 멍게를 더했으니 완벽하다.
건물 2층에 초장집이 있는데, A-1 주인장은 여기가 아니라 다른 초장집을 소개해줬다. 2층이 전망도 좋아서 여기서 먹을까 하다가, 횟집과 연계되어 있는 초장집에서 먹으면 좀 더 신경을 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1층으로 내려가 밖으로 나갔다.
생각보다 초장집이 없구나 했는데 건물 2층에만 없을뿐, 밖으로 나오니 초장집이 겁나 많다. 독도초장집은 A-1 주인장이 가라고 한 곳이다. 대체로 어시장에서 해산물을 고르면 주인장이 손질을 해준다. 그럼 손님은 회 접시를 들고 초장집으로 가면 되는데, 여기는 사뭇 다르다.
해산물을 고르고 계산까지는 동일하지만, 손질이 끝날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주인장이 알려준 초장집으로 가서, 어디서 왔다고 말을 하고 자리에 앉으면 된다. 그럼 회는 누가 가져다줄까? 시장에서 손질이 끝났다고 초장집으로 전화가 오면, 직원이 받으러 간다.
기본 상차림은 5,000원이며, 메뉴판에는 없지만 홍게를 삶는 비용(5,000원)은 따로 내야 한다.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 몰랐다가 다 먹고 계산할때 상차림을 2인으로 했나 의심했다.
홍게는 삶아야 하고, 멍게는 아직 도착 전이다. 배는 고픈데, 딱히 먹을 게 없다. 메추리알 2개를 먹으면 위를 살짝 달래주고, 경남 지방 지역소주인 좋은데이를 마실까 하다가, 총선을 앞두고 대선을 골랐다.
참, 양배추는 초장을 넣고 잠시 후 등장하는 해조류를 더해서 먹으면 된다. 초장 맛이 앞도적이지만, 양배추와 꼬시래기의 조합은 식감 깡패다.
서비스로 멍게를 준다면서 홍게가 들어 있는 바구니에 4~5개를 담았던 걸로 기억한다. 사진을 찍지 않아서 정확하지 않지만, 1~2개는 확실히 아니다. 많이 줬구나 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살짝 서운하다. 그릇된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멍게가 덩치는 큰데 속은 허한가 보다.
대게와 달리 홍게는 뜨거울때 먹어야 하기에 직접 손질을 해야 하지만, 요청을 하면 해준단다. 미리 알았더라면 부탁을 했을 텐데, 계산할 때 알게 되는 바람에 일일이 손질을 다 했다. 홍게를 즐겨 먹었다면 쉽게 했을 텐데, 겁나 잘 드는 가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손질하는데 오래 걸렸다.
봄철 홍게는 살수율이 좋다는 거, 완전 인정이다. 그런데 사진은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다. 고기도 구워본 눔이 잘 굽는다고 하더니, 홍게도 마찬가지다. 껍질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해서, 게살이 너덜너덜하고 초라하다.
먹을 줄은 모르지만, 맛은 과히 역대급이라 하고 싶다. 달아 달아 겁나 달지만 인공적인 단맛이 아니라,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의 단맛이다. 게맛살을 좋아하는데, 한동안 먹지 못하겠다. 진짜 게맛을 알아버렸으니깐.
홍게 다리를 3~4개 모았을까나? 양이 꽤 된다. 그냥 먹어도 되지만, 내장에 와사비를 더해 가볍게 비벼준다. 게살만 먹어도 미치도록 행복한데, 여기에 게딱지에 붙어있는 내장을 더하니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이맛을 오래오래 즐기고 싶으니깐.
홍게에 빠져 멍게를 잊고 있었다. 멍게를 먹을 때마다 바다내음을 가득 품고 있다고 표현을 했는데, 정정을 해야겠다. 서울이 아니라 산지에서 먹으면, 멍게 특유의 진한 바다향이 아니라 싱그러운 꽃향기가 난다.
아무래도 멍게의 진한 풍미는 이동과정에서 오는 발효(?)가 아닐까 싶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힌다. 신선 그 자체에 부드러움까지 저작운동은 할 필요없이 그냥 후루룩 마셨다. 굳이 초장을 더하지 않아도 멍게 자체만으로도 감칠맛 대폭발이다.
새우도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녀석(?)인데, 게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셀프로 손질한 홍게가 무덤이 되는데 1시간 30분 걸렸다. 다리에만 살이 많은 줄 알았는데, 딱지가 아닌 몸통은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곳곳에 살이 그득그득하다.
메뉴판에 볶음밥이나 라면이 없어 내장을 호로록 다 먹어버렸는데, 라면은 없지만 볶음밥은 있었다. 이것도 계산할 때 알았다. 홍게 2마리에 멍게까지 많이 먹은 듯싶은데, 배가 부르지 않았다는 거, 안 비밀이다. 그리고 홍게에 빠져 대선을 챙기지 못했지만, 총선은 꼭 챙길 거다. 그럼 대선을 포기했을까? 아니다. 텀블러에 담아서 집으로 고이고이 모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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