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삼천포초장 (feat. 방어진등대)
늘 다른 녀석(?)과 함께 나오는 바람에 진가를 몰라봤다. 흰살생선 특유의 부드러움은 기본, 여기에 마치 전복회를 먹듯 오도독하니 식감이 미쳤다. 그리고 제철답게 적당히 오른 기름까지 삼박자를 딱딱 들어맞는다. 울산 동구 방어진활어센터에서 구입한 밀치회를 삼천포초장에서 먹는다.
여타의 수산시장과 달리 방어진활어센터는 단층 건물로 되어 있어, 초장집이 있어야 할 횟집이 없다. 그럼 포장만 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포장도 가능하지만, 활어센터 주차장으로 나오면 맞은편으로 초장집이 쭉 이어져 있다.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할 필요 없다. 회를 구입한 점포와 초장집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수산에서 밀치(가숭어)를 구입하니, 주인장이 먹기 좋게 다듬어줬다. 어느 초장집으로 가라고 알려줘야 하는데, 주인장은 말없이 포장한 회를 들고 앞서 간다. 말이 아니라 직접 초장집으로 안내를 해줬고, 그렇게 삼천포초장으로 들어왔다.
저 끝에 보이는 전자시계를 보니, 11시 37분이라고 나온다. 아침겸 점심이자 브런치로 밀치회를 먹는다. 아무도 없으니 첫 손님인데, 먼저 왔을 뿐 12시가 되니 예약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고물가 시대는 상차림에서도 나타난다. 서울에 있는 강서수산도매시장 초장집은 4,000원인데 울산 동구에 있는 방어진활어센터 초장집은 6,000원이다. 그나마 원산지는 올~ 필승 코리아로 매우 맘에 든다.
반찬 가지수를 보니 상차림 가격이 이해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거의 먹지 않았다는 거다. 밀치회를 남김없이 먹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하니깐. 새콤 아삭한 샐러드는 애피타이저, 다시마부각과 땅콩은 디저트 그리고 미역은 맛만 봤다. 그나저나 번데기는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밀치(가숭어)는 찬바람이 부는 12월에 살이 통통하게 찌고 기름기가 오르고, 산란기가 시작되는 3월까지 제철이라고 한다. 대방어만큼 넘칠 듯 기름은 차지 않았지만, 흰살생선치고는 적당히 기름이 올랐다.
활어에 흰살생선이니 씹히는 맛보다는 부드러움으로 먹어야 하나 했는데, 와우~ 겁나 꼬들꼬들하다. 오도독 씹히는 전복회가 생각날 정도로 식감이 깡패다. 초장은 극혐, 막장은 어쩌다 한 번이고 주로 와사비+간장으로 먹는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전복회와 같은 오독독한 부위를 찾았다. 빨간 부위와 그 위로 보이는 막이라고 해야 할까나? 암튼 요 부위가 미친 식감을 만들어낸다. 어찌나 조직감이 좋던지 저작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꼭꼭 씹어 먹었다.
방어진공동어시장에서 봤던 물미역과 동일하지 않을까 싶다. 초장에 찍어 먹었을 때는 바다내음이 나면서 나쁘지 않았는데, 밀치회랑은 반대다. 왜냐하면, 미역 풍미가 강해서 회 맛을 다 죽이기 때문이다. 밀치회가 아니라 과메기라면 기가 막혔을 텐데 아쉽다.
회 한접시에 절대 배가 부르지 않다. 좋은데이도 반 이상이나 남았고, 회가 더 먹고 싶기는 하나 뜨끈한 국물이 먼저다. 주인장이 매운탕(10,000원)과 함께 용기 하나를 내려놓는다. 처음에는 후춧가루인가 했더니 제피가루가 들어있는 통이다.
몇 년 전에 부산 기장에서 방아잎이 들어 있는 생멸치찌개를 먹었는데, 이번에는 제피가루 매운탕이다. 거절할까 하다가, 울산법(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직접 하면 양조절을 못할 테니 주인장에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제피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없으면 어디서도 먹을 수 있는 매운탕, 있으면 특유의 향이 가득한 매운탕이 된다.
매운탕을 주문했는데 서비스로 열기구이가 나왔다. 밀치회를 먹었던 기억은 다 지우고 공깃밥을 추가해 매운탕과 생선구이에 집중한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다.
매운탕 속에 들어 있는 생선의 정체는 뭘까? 검은색이라 우럭인 줄 알았는데 우럭치고는 껍질이 너무 두껍다.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방어란다. 아무리 제철이라고 하지만 매운탕에 방어를 넣어주다니 깜짝 놀랐다. 제피 특유의 향이 강해서 매운탕을 남기려고 했는데, 방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남김없이 다 먹었다는 거, 안 비밀이다.
든든하게 먹고 달달한 믹스커피로 마무리를 했는데 뭔가 부족하다. 식후경(食後景)에서 식만 했기 때문이다. 경을 위해 횟집을 나와 바닷가로 오니 방파제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지금 서 있는 곳은 방어진항 남방파제이고, 슬도는 방어진항 북파방제이다.
방어진항 방파제는 1923년 3월부터 1927년 8월까지 4년 5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공사에 참여한 연인원이 무려 19만 5천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토목사업이었다. 기념비에는 일본인 관료와 선주 등으로 구성된 방파제 축조위원회가 공사를 주도했다고 나와있다. 정작 주인공은 따로 있는데...
방어진공동어시장에서 줌으로 당겨야 볼 수 있던 조형물이 지금은 디지털장비가 없어도 잘 보인다. 왼쪽부터 슬도에 있는 새끼를 업은 고래, 슬도교, 슬도등대 그리고 방어진등대다. 방어진등대만 따로 떨어져있고, 나머지는 연결되어 있다.
방어진항 남방파제가 아니라 북방파제로 갔으면 오른쪽 끝에 있는 빨간 등대를 볼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가지 않은 이유는 남방파제를 나와서 방어진활어센터를 지나쳐, 방어진공동어시장을 끼고 한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식후경이라고 하지만, 배가 부르면 움직이기 싫다. 그래도 방어진등대를 봤으니 부족함은 다 채웠다.
울산은 공업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청정한 바다와 신선함이 한도초과인 해산물이 풍부한 바닷가마을인지 몰랐다. 올해는 울산에 자주 갈 듯하니 다른 바닷가마을도 가보고 싶다.
2024.02.20 - 산지 용가자미와 제철 밀치회! 울산 방어진공동어시장 & 방어진활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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