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동 동양식당 마곡점
자고로, 짬뽕은 빨갛다. 굴이나 나가사키 짬뽕으로 인해 하얀 국물이 있긴 하지만, 짬뽕은 빨간 국물이 진리다. 그런데 빨강도, 하얗도 아니 초록 짬뽕이 있다. 매생이를 가득 넣어 초록빛 바닷물인가 했더니, 그 주인공은 샌드위치나 파스타에 들어 있는 바질이다. 어서와~ 바질짬뽕은 처음이지, 마곡동에 있는 동양식당이다.
처음 가는 밥집이라면, 시그니처 메뉴를 먹어야 한다. 그런데 계속 끌리는 메뉴가 있다면, 마음가는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후회를 해도 내탓이지 남탓이 아니다.
서울식물원에서 동양식당까지 약 1.7km로 도보로 27분이 걸린다고 카카오맵이 알려줬다. 나들이 코스로 묶기에 살짝 거시기(?) 하지만, 식물원 근처에는 딱히 갈만한 밥집이 없다. 역대급 한파로 야외정원을 포기하면서, 칼바람이 부는 호수공원을 건너 여기까지 걸어서 왔다는 거, 안 비밀이다. 힘들게 온 만큼 음식을 먹고 행복해져야 할 텐데 걱정이다.
처음에는 와사비 비빔국수가 끌려서 여기까지 왔는데, 강추위에 벌벌 떨면서 오다 보니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졌다. 그때 내 눈앞에 바질짬뽕이 나타나~ 무난하게 백짬뽕으로 갈까 하다가,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혼밥 블로거답게 바질짬뽕 + 그릴홍닭 세트(16,000원)를 주문했다.
주문을 하고 나서도 바질짬뽕 이게 가능할까? 긴가 민가했는데, 오호~ 정말 가능하다. 바질은 샌드위치나 파스타처럼 서양요리에 들어가는 식재료인데 짬뽕이라니,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 않는다. 냄새는 확실히 바질이 맞다. 짬뽕에서 바질의 향이 느껴지다니, 적응이 안 된다. 한참을 바라만 보다가, 국물을 먹었는데 바질 향에 비해 맛은 강하지 않다.
고기와 숙주나물이 많아 들어 있고, 새우와 오징어 그리고 당근과 애호박 등도 들어 있다. 아무래도 나가사키 짬뽕을 기본 베이스로 하고 여기에 바질을 더한 듯싶다.
신기하고 독특한데,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하다. 그냥 시그니처 메뉴인 와사비 비빔국수를 먹어야 하는데, 괜한 객기를 부렸나 했다. 그렇다고 메뉴를 바꿀 수도 없고, 배도 고프니 그냥 먹었다. 그런데 그새 적응이 됐나? 아까와 달리 감칠맛이 느껴지고, 맛이 없지 않고 은근 아니 완전 맘에 든다.
그릴홍닭은 세트로 주문하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거다. 왜냐하면, 어릴때 연탄불에 구운 고추장불고기 맛이 났기 때문이다. 연탄은 아니겠지만, 불향은 가득, 닭고기는 야들야들하니 밥보다는 술생각이 간절했다. 고추장삼겹덮밥이라는 메뉴가 있던데, 같은 양념을 사용한단다. 들어왔을 때 짬뽕보다는 덮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살짝 당황했는데 왜 그런지 확실히 알겠다.
파스타처럼 돌돌 말아서 먹고, 면치기하듯 후루룩 먹고, 어떻게 먹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면을 먹고 난 후, 꼭 국물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바질짬뽕의 참맛을 느낄 수 있으니깐. 자칭 건더기파인데, 이번만은 국물파라 불러다오~
바질짬뽕도 그릴홍닭도 매운맛은 일절 없다. 세트로 주문했지만, 따로 먹어야지 굳이 같이 먹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릴홍닭이 너무 강해서 바질 풍미가 사라진다.
고기만 골라서 바질수프처럼 먹어도 좋다. 바질짬뽕은 처음이라는 설렘과 함께 중반부터 행복했으니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동양식당은 브레이크타임이 없으니, 꽃피는 봄에 서울식물원 주제원(야외정원)을 찍고 27분을 걸어서 다시 올 만큼 매력있는 곳이다. 그때는 이번에 놓친 와사비 비빔국수를 먹어야겠다.
2024.01.31 - 밖은 역대급 한파! 안은 따뜻한 서울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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