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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가귀의 방 | 나전국화넝쿨무늬 상자 (in 국립고궁박물관)

나전칠기는 옻칠한 기물의 표면 위에 나전이라 불리는 전복, 조개, 소라 껍데기를 얇게 갈아 여러 가지 문양으로 박아 넣어 장식한 공예품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우리나라 나전칠기는 대부분 12세기 이후 유물로, 고려시대에는 나전 외에도 바다거북 등딱지인 대모, 구리줄 등을 함께 사용했고 국화, 모란 무늬를 작고 촘촘하게 장식했다. 고려 나전칠기는 전 세계 20건에도 못 미치는데, 그중 13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가 일본에서 돌아왔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12에 있어요~

이번에 환수된 나전국화넝쿨무늬는 일본 개인 소장가 창고에서 100여년 넘게 있던 유물로 최근까지 일본에서도 그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1년 넘은 조사와 협상 끝에 지난 7월 환수를 했다는데, 가져가지 않았으면 환수를 할 이유도 없었을 거다.

100년이 넘게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유물이 우리 곁으로 돌아 왔다. 귀한 유물이니 수장고에서 보관을 해야하지만,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보고(?)도 해야 한다. 2024년 1월 7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세밀가귀의 방 |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특별전을 한다. 기간이 길지 않으니 기회가 되면 꼭 관람하시길~

 

고려의 나전칠기는 종잇장처럼 얇게 갈아서 만든 자개 판을 작게 오려붙여 꽃송이나 넝쿨 등을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최고의 장식 기법을 보여준다. 주로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경함, 상자 그리고 완형 또는 화형 합 등으로 제작되었다.

중국에서는 당대와 송대에 성행하다가 남송시대 이후 쇠퇴했고, 통일신라시대에 우리나라로 전해져 고려시대 전성기를 이루었다. 고려 나전칠기의 뛰어난 기술 수준은 송나라 사신 서긍이 1124년 고려를 돌아보고 쓴 선화보상고려도경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릇에 옻칠하는 일은 그리 잘하지 못하였지만, 나전의 솜씨는 세밀해 귀하다고 할 만하다."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와 고려시대 혹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다른 나전칠기도 같이 전시할 줄 알았는데, 이거 하나 뿐이다. 그만큼 귀한 유물이라는 의미일 거다. ISO를 6400에 맞추고 촬영을 했다. 밝은 조명에 유물이 훼손될 수 있어 암흑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사진보다 실제가 훨씬 어둡다.

 

다시 옆
근접샷은 ISO 3200

나전국회넝쿨무늬상자는 전형적인 고려 나전칠기 제작기법인 목심저피법으로 만들어졌다. 목심저피법은 나무판으로 전체적인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베나 모시 등의 작물을 붙이고 작은 자개 조각과 금속선 등을 장식하는 기법이다.

뚜껑 윗면과 몸체 각 네 면에 자개와 금속선으로 반복되는 국화꽃와 넝쿨무늬를 빡빡하고 섬세하게 장식했다. 옻칠 솜씨 또한 빼어나 고려 나전공예 전성기 작품으로 부족함이 없다.

 

정교함에 아닐 놀랄 수 없다~

고려 나전칠기의 기술적 특성은 먼저 유물전체를 뒤덮은 문양의 경우 잘라서 사용한 자개의 크기가 불과 2~3mm 정도로 손가락으로 잡기도 어려울 만큼 작고 정세하다. 또한 문양에 따라 자개뿐만 아니라 적절한 재료를 사용했는데 식물의 줄기문양은 은선, 동선, 주석선 등 금속선을 써서 유려한 리듬감이 느껴지게 표현했다고 한다.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는 나전(전복, 소라껍데기)과 아름다운 색을 입힌 대모(거북 등껍질)가 빚어내는 색상의 조화, 부드럽고 활기찬 문양표현 등에서 고려시대 나전칠기의 예술성과 기술력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내 눈앞에 그 고려시대 나전칠기가 있는데 오색찬란한 빛이 느껴지지 않는다. 빛바랜 사진 같다고 할까나? 100년이 넘도록 창고에 보관되어 있어서 빛을 잃어버렸나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서 오색찬란한 빛과 아름다움이 제대로 표출되지 않았을 뿐이다. 전시실 한 켠에 있는 모니터에서 본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13세기 작품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우아하고 황홀하다.

 

나전국회넝쿨무늬상자는 18.5×33.0 ×19.4cm로 전체 면에 자개로 770개의 국화 넝쿨무늬를 장식했다. 천판(뚜껑 윗면) 테두리 좁은 면에는 약 30개의 모란 넝쿨무늬를, 외곽에는 약 1670개의 연주무늬(점이나 작은 원을 구슬을 꿰맨 듯 연결해 만든 무늬)를 촘촘히 둘렀다. 사용된 자개의 수만 약 4만 5000개에 달한다.

 

방금 전에 본 그 상자와 이 상자가 같은 상자일까? 의문이 들 정도로 품어내는 빛이 다르다. 더구나 이걸 기계가 아닌 사람이 손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 않는다. 그 당시에 현미경 같은 기구도 없었을 텐데, 손가락으로 잡기도 어려운 자개를 어떻게 한 땀 한 땀 정교하게 작업을 했을까?

기계가 아니라면,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 만들었다고 누군가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국화꽃무늬 중심원이 약 1.7mm이며, 꽃잎 하나 크기는 약 2.5m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꽃잎 하나하나에 음각으로 선을 새겨 세부를 정교하게 묘사했다.

 

안국동에 있는 공예박물관에 가면, 나전칠기 제작공정이 자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과정을 보면서 와~ 엄청나구나 했는데, 그 결실을 이렇게 마주하니 말이 안 나온다. 사진을 찍고, 눈으로 다시 감상을 하고, 모니터를 보고 와서 또 작품을 보고 그렇게 보고 또 보고 또또 보고 나왔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월 7일까지 하니 한번 아니 두어번 더 갈 예정이다. 한 번만 보기에는 너무 아쉬우니깐. 경복궁은 화요일이 휴무이지만, 박물관의 휴무일은 1월 1일이다. 방문객이 그나마 적은 화요일에 다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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