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친하게 지내요~ | 낙이망우樂以忘憂 망우동이야기 (in 서울역사박물관)
망우(忘憂)는 근심을 잊는다는 뜻으로, 태조 이성계가 자신이 죽어서 묻힐 무덤의 위치를 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근심이 사라졌다며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근심이 없는 동네를 일제는 공동묘지 동네로 만들어 버렸다. 전시를 보기 전까지 망우동 = 공동묘지로 기억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딱밤을 날리고 싶다. 그때는 그랬는지 몰라도 이제는 친하게 지내고 싶은 동네,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 낙이망우 망우동이야기이다.
망우동은 서울 동북쪽에 있어 서울-경기-강원을 오가기 편한 동네이다. 조선시대 왕들이 조상의 무덤을 오가며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다니던 길이었는데, 일제는 망우동에 철도와 공동묘지를 세웠다. 1963년 망우동은 경기도에서 서울시로 속하게 됐다. 그리고 망우리공동묘지는 망우역사문화공원이 됐다. 망우동의 역사 속으로~
망우동은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로 있다가 1963년 1월 1일부터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속하게 됐다(지금은 중랑구 망우동). 잊을 망, 근심 우라는 뜻의 망우고개에서 따온 망우동은 태조 이성계 덕분에 지어진 이름이다.
위에서 잠시 설명했지만, 조선시대의 왕은 살아 있을 때 자신이 죽어서 묻힐 무덤 위치를 직접 정했다고 한다. 태조는 무덤 위치를 정하고 오는 길에 근심이 사라졌다고 말했고, 그때 오른 고개 이름이 망우고개가 되었다.
망우동지는 1760년에 만들어진 책으로, 망우동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 망우동에 살았던 동래 정씨, 의령 남씨, 평산 신씨의 세 양반 가문이 함께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왕에게 망우동의 땅을 선물로 받아 망우동에서 살기 시작했다. 세 양반 가문은 자신들의 마을에 왕의 무덤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신망우동지는 2022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만든 책으로, 도시로 변한 망우동의 모습을 담고 있다. 망우리 공동묘지는 2022년에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바뀌었다.
동래 정씨 가문은 망우동 양원리 마을에 약 6백 년 전부터 살고 있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동래 정씨 집안사람들이 살고 있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집성촌"이라는 간판이 있다. 조선초기 태종 이방원은 동래 정씨 집안의 12대 정구에게 망우리 무덤 자리를 선물했다.
의령 남씨는 태조 이성계에게 땅을 선물 받아 망우동 쪽에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태조의 무덤이 있는 곳은 원래 의령 남씨 집안의 남재가 자신의 무덤 위치로 정한 곳이었다. 하지만 태조가 그 땅을 마음에 들어 하자 남재가 태조에게 양보했다. 태조는 고마운 마음에 남재에게 농사 지을 수 있는 땅과 농사일을 할 사람을 주었다.
방축리(현재 동원중학교 주변)에는 의령 남씨들이 태조에게 하사 받은 땅에서 조선 후기까지 거주했으나, 일제강점기에 집성촌은 해체가 됐다. 우리 친하게 지내요라고 했던 가장 큰 이유, 공동묘지 동네로만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우리 집안의 역사를 만나게 될 줄 전혀 몰랐다. '뿌리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망우동 역사 나들이를 해야겠다.
평산 신씨의 15대 신개는 좌의정으로 일하며 세종 대에 망우동의 땅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망우동 산 69-1번지 주변인 옛 위암리 일대에는 평산 신씨 가문의 무덤과 비석이 있다.
평해로는 한양과 동해안의 평해 지방을 연결하는 도로로, 경기 동부 지역과 강원도를 연결했다. 망우동은 평해로의 시작점이었다.
능행로는 조선의 왕이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오갔던 길로, 망우동은 능행로 중간에 위치해 있다. 태종이 1409년에 처음으로 능행을 시작했고, 이후 왕들은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 등을 지나 제사를 지내러 갔다.
국장로는 조선시대 왕들이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길로,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이 이 길을 지난 마지막 왕이다. 참, 국장은 나라의 장례라는 뜻으로 왕이나 왕비 등의 장례를 말한다.
망우동은 서울시와 경기도에 맞닿은 곳에 위치해 있어 교통이 편하며, 땅이 평평한 배밭이 많아 학교를 짓기 좋았다고 한다. 1970년대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면서 망우동에는 학교가 많이 지어졌다. 학생들은 이곳이 시베리아처럼 매우 춥고 땅이 넓어서 망우동과 시베리아를 합쳐 망베리아라고 불렀다.
학교는 밀집되어 있는데 버스의 노선이나 수는 많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이런 환경에서 학교 앞 떡볶이가 빠질 수 없는 법. 망우동의 떡볶이는 튀김만두를 넣어 같이 먹는 것이 특징이었다고 한다. 대부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몇 곳이 남아 있다. 고로, 뿌리와 함께 떡볶이도 먹고 와야겠다.
일제는 도시를 개발한다는 이유로 망우동에 축구장 240개 정도 크기의 매우 넓은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1933년 처음 만들어져 1973년 문을 닫을때까지 4만 7천여 기의 무덤이 있었다. 이곳에는 유관순, 방정환, 이중섭, 한용운 등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는 죽은 사람을 땅에 묻는 장래 문화가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늘로 가고, 몸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과 그 주변에는 무덤을 만들지 못하게 법으로 금지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죽은 사람의 무덤을 일본의 허락 없이 만들지 못하게 했다. 1912년 묘지규칙을 만들어 공동묘지에만 묻을 수 있게 했다. 이 규칙에 따라 미아리, 이태원 등 공동묘지 19곳이 정해졌다. 경성부 안에 사람 수가 늘어나자 1926년 미아리는 추가로, 망우리에는 새로 공동묘지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망우리 공동묘지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다 죽은 인물들이 많이 묻혀 있다. 더불어 우리나라 문화와 예술, 사회, 교육, 의료, 종료, 언론의 발전을 위해 일한 인물들도 묻혀 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현재 약 7천 기의 무덤이 남아 있다. 인물카드는 그 사람들 중에서 독립운동가, 문화 예술을 발전시킨 시인, 가수, 화가 등 28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중섭 미공개 작품전 팸플릿에는 그의 미공개 작품 사진 48점과 작품해설, 연보가 수록되어 있다. 이중섭의 삽화가 다수 수록되어 있는 문학예술과 1956년 작고한 이중섭의 추모 모임 초대장이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유언)
유관순 열사는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무연고묘로서 분류, 화장되어 망우리 공동묘지의 무연분묘합장묘에 안치되었다. 여기서 잠깐, 합장은 한 무덤에 여러 사람을 묻는 것을 말한다. 무연고에 합장까지 화가 난다.
건국훈장 대한민국 훈장은 건국훈장 중 가장 격이 높은 대한민국장이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관순 열사는 3·1 독립운동의 상징"이라며 "유 열사에게 국가유공자 1등급,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오늘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16살 나이로 시위를 주도하고 , 꺾이지 않는 의지로 나리의 독립에 자신을 바친 유관순 열사를 보며 나라를 위한 희생의 고귀함을 깨운 친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지난 1962년 국가유공자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아, 서훈등급이 낮다는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2019년 2월 26일 MBC 뉴스 중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본성으로써, 이 같은 본성은 남이 꺾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스스로 자기 민족의 자존성을 억제하려 하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 중에서) 만해 한용운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불교계 대표였던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다. 대표 시집 님의 침묵을 남겼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 주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 가며 기르십시오.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살펴 주십시오. 어린이에게 책을 늘 읽히십시오. 희망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다 같이 어린이를 잘 키웁시다." (어린이날의 약속 중에서)
"땅이 있으며 명칭과 경관이 있고, 그 후에 무덤이 있고 사람이 있고 풍속과 문헌이 있다."라고 망우동지에 쓰여 있다. 이는 망우동이 살기 좋은 곳이라 무덤도 많았다는 의미일 거다. 망우리 공동묘지는 잊어 버리고, 근심을 잊는 동네 망우동으로 기억해야겠다.
망우역은 지나쳐 가는 역으로 한번도 내린 적이 없다. 하지만 뿌리도 찾아보고,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유관순 열사도 만나고, 망우동 떡볶이를 먹으려면 망우역에서 무조건 내려야겠다. 청룡의 해에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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