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니깐 묵사발 & 건진국수 정릉동 봉화묵집

정릉동 봉화묵집

여름이면 묵사발(혹은 묵밥)을 즐겨먹는데, 문제는 하는 곳이 별로 없다. 고깃집에서 후식으로 먹을 수 있지만, 짝퉁(?)이 아닌 정품(?)을 먹고 싶다. 방송을 보고 알게 된 곳이라 긴 줄을 예상했는데 줄이 없다. 이래서 오픈런을 하나보다.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봉화묵집이다.

 

봉화묵집은 서울시 성북구 아리랑로19길 46-2에 있어요~

묵사발 하나 먹자고, 서울 서쪽에서 성북구 정릉동까지 1시간 40여 분을 버스에서 보냈다. 지하철을 타면 조금은 일찍 도착하지만, 꼭 지하철이 아니면 주로 버스를 탄다. 특히, 처음 가는 동네일수록 가는 길을 눈에 넣고 싶기 때문이다.

대학로에서 환승을 하고 정릉입구에서 내린다. 기나긴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시작된 첫날이다. 11시가 조금 지났는데 양산에 손풍기까지 대동하고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서서히 익숙한 풍경이 나타나더니, 봉화묵집이 떡하니 보인다. 가정집을 식당으로 만들었는지, 밖에서 봤을 떄와 달리 내부는 그리 넓지 않다. 

 

방송에 나온 식당을 믿지 않는 1인인데, 봉화묵집은 방송을 통해 알게 됐다. 본방이 아닌 유튜브에서 봤는데, 김대호 아나운서가 고독한 미식가같은 대식가로 나오는 퇴근 후N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보자마자 느낌적이 느낌으로 여기는 무조건 가야지 했다.

메밀묵으로 만드는 묵사발에 익숙한듯 낯선 건진국수 그리고 배추전에 동동주까지 여름이니깐 시리즈에도 딱 맞고, 죄다 좋아하는 메뉴다. 나름 오픈런을 했는데도, 먼저 온 손님이 있어 두번째 방문객이 됐다. 

 

칼국수와 만두는 서늘해지는 가을에 먹을 거예요~

원산지를 보면 두부를 제외하면 올 필승 코리아~이다. 시계를 보면 알겠지만, 영업시간은 11시부터다. 방송에 나온지 조금 지났지만 여름이라서 사람이 많을 줄 알고 아침도 굷고 오픈런을 했는데 널널했다. 

주인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주문을 했다. "시원한 메밀묵(밥) 하나와 건진국수 하나 주세요." 양이 많다는 주인장 말에 언제 다시 올지 몰라 다 먹고 가고 싶다고 대답을 했다. 참, 휴무일은 월요일이며, 동동주는 김치가 나온 후에 주문했다는 거 안 비밀이다. 

 

식당명에서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기에 주인장의 고향을 따로 묻지 않았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양념장을 보는데, 겁나 익숙하다. (쉿~ 동향은 아니지만 울 어무이가 만드는 양념장이랑 매우 흡사)

 

봉화묵집 메밀묵사발과 건진국수 그리고 동동주 등장이요~

청양고추는 건진국수에, 고추장아찌는 메밀묵사발에~

혼밥이지만 욕심을 내서 메밀묵사발에 건진국수까지 주문했다. 묵사발에서 밥이 제공되지 않아 조밥을 주문해야 한다기에 여기까지만 욕심을 내려고 했다. 그런데 배추김치를 보는 순간, 참을 수 없었다. 

 

한되만 가능했다면 포기했을 텐데, 반되(3,000원)가 있다. 주인장이 3~4잔 정도 나오는 양이라 해서 적당하구나 했는데, 그 잔의 기준은 어떤 잔일까 싶다. 확인은 못했지만, 조를 넣어서 만들었다고 했으니 동동주도 직접 빚은 듯 싶다.

식혜처럼 밥알이 많은 동동주도 있던데, 봉화묵집 동동주는 탄산은 거의 없고, 단맛은 약하며, 밥알은 조밥이 어쩌다 들어 있다는데 이번에는 없었다. 동동주 한잔에 김치를 먹고 시작했다는 거, 쉿~ 비밀이다.

 

건진국수

건진국수(9,000원)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넣어 반죽을 하고, 국수를 익혀 찬물에서 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만드는 방법은 밀가루와 날콩가루를 3:1의 비율로 섞어 약간 되직하고 반죽한 다음 얇게 밀어 가늘게 채를 썬다. 경상북도 안동의 명물음식이라고 한다. 

이름만 몰랐을 뿐, 어릴때 건진국수를 먹었던 적이 있다. 어무이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 직접 국수를 만들었는데 그때마다 항상 콩가루를 넣었다. 고소함을 더하고, 밀가루 풋내를 막기 위해서였다. 차갑게 먹기도 했지만, 뜨거운 칼국수로 더 많이 먹었다.

 

꽤 많이 심심하므로 양념장과 청양고추는 필수~

어떤 이는 평양냉면의 국수버전이라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은 차가운 잔치국수같다. 간은 육수부터 면발 그리고 고명까지 죄다 슴슴하다. 청양고추에 양념장을 넣었는데도 익숙하지 않아 그런지 살짝 겉도는 느낌이 든다. 얼음 동동 육수라서 얇은 면발은 금방 풀어지지 않고, 김치는 동동주뿐만 아니라 건진국수와도 잘 어울린다.

 

메밀묵사발

메밀묵(8,000원)으로 만든 묵사발은 처음이다. 평양냉면, 메밀전, 메밀전병과는 많이 다르지만, 메밀 특유의 투박함이 묵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메밀이라서 도토리묵에 비해 찰기가 떨어질 수 알았는데,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젓가락으로 들어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나저나 침기름도 직접 방앗간에 가서 만들어 오는지 고소함이 대단하다. 건진국수와 동일한 육수일텐데, 참기름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나다. 고로, 나의 취향은 메밀묵사발이다. 

 

좋아해서 여름이면 묵사발을 찾으러 다니면서 먹는다. 그동안 먹었던 묵사발에 들어 있는 김가루는 대체로 조미가 되어 있는 기성품인데 반해, 봉화묵집은 일반 생김을 구워서 김가루를 만들었다. 다른 음식도 그러하지만, 음식을 대하는 주인장의 진심이 느껴진 순간이다.

 

육지의 고소함과 바다의 고소함이 만나다~

건진국수와 달리 메밀묵사발은 왜이리도 고소할까? 아마도 메밀이 갖고 있는 특유의 투박함만으로는 맛을 내기 어렵다 생각해, 참기름에 김까지 고소함을 더하지 않았을까 싶다. 김치는 맛보다는 식감을, 고추장아찌는 매콤함과 감칠맛을 담당한다.

 

지금 이순간, 참 행복한 순간!

김치가 없었으면 건진국수를 더 멀리했을 거다. 혼자 먹는데 김치를 너무 많이 줬구나 했는데, 동동주는 기본, 건진국수에 메밀묵사발까지 김치는 스스로를 뽐내면서 주변도 아우르는 케미요정(?)이다.

 

육수 추가는 잘못된 선택이었어~

메밀묵 양에 비해 국물이 적은 듯 싶어, 육수를 추가했다. 이 행동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이내 알게 됐다. 고소함이 가득했던 묵사발에 육수를 더하니 묽어졌다. 자박하게 나와 아쉽다 해도 그대로 먹었어야 했다. 건진국수도 저만큼이나 남겼는데, 조밥은 끝내 주문하지 않았다.

참, 동동주도 남겼는데 다행히 포장이 가능했고, 2차로 간 카페에서 까눌레를 안주삼아 해치웠다. 가을이 오면 만두를 먹으러 갈테지만, 여름이 끝나기 전에 메밀묵사발에 조밥 그리고 동동주를 먹으러 또 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