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3가(관수동) 소문난 경북집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부터 알고 있던 곳이다. 영어를 배우겠다고 뻔질나게 종로를 들락거렸지만 영어울렁증은 여전하다. 대신 동그랑땡 하나는 꽉 잡았다. 몇 년만인지 헤아릴 수 없지만, 아무튼 겁나 오랜만에 다시 찾은 종로3가에 있는 소문난경북집이다.
소문난 경북집은 종로 YBM어학원 뒷골목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여전히 그곳에 있는지, 혹시 이사를 했는지 전혀 모른다. 지도앱의 도움을 받을까 하다가, 느낌대로 종로1가에서 부터 천천히 걸어갔다. 종로2가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버거킹을 지나 어학원 건물을 끼고 우회전을 한다.
별다방과 CU편의점이 마주보고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니, 낯선데 익숙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동그랑땡을 먹으면서 영어책이 아닌 녹색병 혹은 누룩병을 들었던 그곳, 소문난 경북집이 보인다.
너무 오래되서 예전 모습 그대로인지 가물가물하지만, 여전히 있다는 그 자체(그 자체를 왜 그 잡채라고 하는지 이해못하는 1인)만으로도 겁나 반갑다. 그나저나 예전에는 그냥 경북집이라고 불렀는데, 앞에 소문난이 있다는 거 이번에 알았다. 포장마차 천막같은 비닐 문을 열면 야장이 나오지만, 넘 추우니 따뜻한 실내로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고, 잠시 충격에 빠졌다. 가볍게 한잔하기 좋은 곳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가볍지가 않기 때문이다. 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직원분이 대뜸 술 마시러 왔어요라고 물어봐서 네라고 대답하고, 그 다음에 몇 명이냐고 물어봐서 혼자 왔다고 했다.
뭘 먹을지 미리 정하고 왔기에, 동그랑땡 중(16,000원)과 로이(5,000원)를 주문했다. 소문난경북집은 12시 오픈인데, 브레이크타임이 없다. 이는 낮술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3시가 넘어서 도착했으니, 밥이 아니라 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소문난 경북집이 노포는 확실한데, 그 시작이 언제였을까? 직원에게 물어볼까 말까 하고 있는데, Since 1973을 발견했다. 올해가 2023년이니, 정확히 50년이다.
그리고 동그랑땡과 가장 잘 어울리는 부추 피처링 간장이 나왔다. 소주 특유의 독한 냄새가 없어 즐겨 찾고 있는 제로 슈거 새로다. 기본찬과 로이가 나왔는데 20분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 원래 이렇게 오래 걸렸나? 빨리 달라고 할까?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공복에 로이 한잔 했다는 거, 안 비밀이다.
동그랑땡 대는 11개가 나오고, 중은 8개가 나온다. 가격은 2천원 차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 먹을 수 있을거란 생각에 중을 주문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대를 주문했어야 했다. 그 이유는 마지막에...
동그랑땡의 사전적 의미는 돈저냐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럼 돈저냐는 쇠고기나 돼지고기, 생선 따위의 살을 잘게 다지고 두부나 나물 등을 섞어 주물러서 엽전 크기로 동글납작하게 만들어 밀기루와 달걀을 씌워 지진 음식이라고 다음사전에 나와있다.
이렇게 큰 엽전은 박물관에도 없을 거다. 나오자마자 고소한 기름과 계란 냄새가 퍼지고,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8개 돈저냐가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가장자리는 얇은 듯하나, 중앙으로 갈수록 동그랑땡 특유의 도톰함이 드러난다. 누군가에게는 한입 크기가 될 수 있지만, 갓나온 돈저냐는 겁나 뜨겁다. 고로 반으로 나누고 다시 반으로 나눈 다음 호호 불면서 먹어야 한다.
시작은 본연의 맛부터, 크기도 크고 단단해 보여서 퍽퍽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겁나 부드럽다. 여기에 고기 잡내는 1도 없으며, 부드러움 속 당근의 아삭함이 맛을 더 돋보이게 한다. 예전에도 이 맛이었어 하고 싶은데,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그때도 지금도 맛나게 먹을 자신은 있다.
어쩜 이리도 간이 적당한지, 기름도 과하게 사용하지 않아서 슴슴하니 담백하다. 간장을 많이 올렸나 싶지만, 두께가 있어서 짠맛보다는 감칠맛이 더해졌다. 명절때마다 동그랑땡을 만드는데, 소문난경북집만큼 부드러웠던 적은 없다. 아마도 비법이 있을 것이다. 하긴 1973년부터 했으니, 비법에 노하우가 없으면 더 이상할 듯 싶다.
로이에게 미안하지만, 동그랑땡은 술보다는 밥이다. 고기반찬인데 어찌 밥을 아니 먹을 수 있을까? 공깃밥을 추가해서 늦은 혼밥을 시작한다. 숟가락에 따끈한 흰밥을 올리고, 여기에 돈저냐 한 점과 마늘장아찌로 마무리를 하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해진다.
밥이 있으니 로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반주를 해도 되는데 배가 고팠는지 밥만 먹었다. 밥 한공기에 동그랑땡 5개를 해치우니 위가 그만 쉬고 싶단다. 혹시나 하는 맘에 용기와 텀블러를 따로 챙겨왔다. 용기까지 챙겨왔으니 중이 아니라 대를 주문했어야 했다. 깊게 생각했어야 했는데 아쉽다.
참, 텀블러에 챙겨온 로이는 머그컵에 얼음을 가득 넣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레몬즙을 추가한다. 마지막으로 로이를 넣으면 탄산없는 하이볼 혹은 진한 레몬칵테일이 된다. 홀짝 홀짝 마시면 꽤나 좋다는 거, 쉿~ 비밀이다.
소문난경북집에서 50m정도 가면 뚝배기집이 있다. 여기도 예전에 자주 오던 곳인데, 있다. 종로3가에서 이런 가격을 만나기 힘든데, 여전히 갓성비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에는 배가 불러서 입구만 찍고 가지만, 다시 와서 우렁된장을 꼭 먹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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