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강동 노독일처
문득 그런 날이 있다. 점심마다 뭐 먹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데, 볶음밥이 매우 몹시 먹고 싶다. 커다란 웍에 단숨에 볶아 낸 밥은 기름코팅으로 인해 밥알이 하나하나 살아있다. 기름에 볶았지만 기름맛이 별로 안나는 슴슴한 볶음밥, 용강동에 있는 노독일처다.
봄바람에 따라 춤을 추며 떨어지는 벚꽃잎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쉽게 손 안에 들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보이는 것과 달리 잡히지 않는다. 화려하게 왔다가, 쓸쓸하게 사라지는 벚꽃을 보고 있으려니 배가 더 고프다. 벚꽃을 본다고 배고픔이 사라지지 않을테니 녹독일처로 밥 먹으러 간다.
역시나 바쁜 점심시간을 피해서 오니, 한산하니 좋다. 여유로운 혼밥을 위해서는 12시를 피해야 한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시선은 창밖의 여자가 아니라 벚꽃이다. 그렇게 화려했는데 어느새 벚꽃과 안녕을 해야 하다니, 그 화려함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나저나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따라하기에는 장소가 살짝 거시기(?)하다.
중국집에 오면 짬뽕 아니면 짜장인데, 이번에는 아니다. 문득 볶음밥이 먹고 싶었기에, 새우볶음밥(10,000원)을 주문했다. 노독일처는 세트메뉴가 나름 괜찮은데, 혼밥이라서 늘 단품으로 주문한다.
밑반찬 3총사. 노란 단무지는 무조건이고, 양파와 춘장이 아니라 노독일처는 자차이무침이 나온다. 그리고 단무지에는 없는 잘익은 빨간맛 깍두기도 있다.
볶음밥이니 당연히 기름에 볶았을 텐데, 기름져 보이지 않는다. 기름의 역할은 밥알을 코팅하는 정도였을까? 밥알이 뭉개지지 않고, 하나하나 살이있다.
잘하는 중국집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면, 볶음밥을 주문해야 한다고 누군가 알려줬다. 그릇에 기름이 흥건하다면, 그건 삐~~ 밥알이 뭉개지지 않고 나풀나풀 거려야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노독일처의 볶음밥은 베리 굿(여기서 굿은 그 굿이 아니라 good)이다.
생김새만으로도 예상을 했지만, 맛을 보니 오호~ 잘 볶아낸 볶음밥이 맞다. 전혀 기름지지 않고, 기름이 갖고있는 고소함만 가득이다. 고슬고슬한 밥은 씹을수록 단맛이 우려나와, 꿀꺽꿀꺽 먹기보다는 저작운동을 오래 할수록 좋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냥 먹어도 충분히 좋은데 굳이 짜장소스에 비벼서 볶음밥이 갖고 있는 장점을 다 지울 필요가 있을까 싶다. 비벼 먹기보다는 덮밥처럼 올려서 먹는 게 더 좋다. 좋은 볶음밥에 짜장소스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다.
볶음밥에 짜장소스는 별로이지만, 짬뽕국물은 꽤 괜찮다. 혹시 몰라서 처음에는 적셔 먹었다. 양념이 강한 짬뽕국물이니 볶음밥이 기죽지 않을까 싶었는데, 괜한 걱정을 했다. 물론 밥만 먹을때에 비해서는 고소함은 덜하지만, 둘의 조화가 은근 괜찮다.
다음에는 짬뽕국물에 밥을 말았다. 기름에 코팅된 밥알이라서 뭉개짐이 없다. 고소한 볶음밥과 얼큰한 짬뽕이 따로 놀지 않고 한데 어울러지니, 그동안 왜 이렇게 먹지 않았나 싶다.
남은 짜장소스에 새우를 넣어 새우범벅으로 해치웠다. 짬뽕에 볶음밥은 이상할 줄 알았는데, 볶음밥과 짬뽕의 장점을 다 맛볼 수 있어 좋다. 알고 있던 조합인데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짬뽕국물을 리필까지 해서 먹을 거다. 볶음밥에는 기름진 짜장보다는 칼칼한 짬뽕이 더 어울린다.
2021.07.12 - 맵지 않고 깔끔한 짬뽕 용강동 노독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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