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자갈치시장 (feat. 럭키상회)
부산에 왔으면 자갈치시장은 기본이니 당연히 갔을 줄 알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봐도 치를 타고 지나가기만 했을 뿐이다. 부산에 그렇게 자주 갔는데, 이번이 처음이라니 그동안 뭐했나 싶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남포동에 있는 자갈치시장으로 가보자~ 먹어보자~
자갈치시장은 차를 타고 지나가거나, 영도다리 위에서 바라보거나, 배를 타고 스쳐지나갔다. 겉핥기는 여러번 했지만, 정작 시장 안으로 들어간 본 적은 없다. 부산을 대표하는 시장이자, 해산물킬러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야만 했던 곳인데 이제야 왔다. 비릿한 바다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서울에서는 맡을 수 없기에, 크게 들이 마신다. '그래, 이 짠맛이야~'
갈치를 많이 팔아서 자갈치 시장인가 했다. 그런데 자갈이 많은 곳에 시장이 형성됐고, 장소를 나타내는 처가 경상도 사투리 치로 발음되면서 자갈치시장이 됐다고 한다. 시장도 좋지만, 배를 타고 나가서 손맛도 보고, 갓잡은 생선으로 회도 먹고 라면도 먹고 싶다. 하지만 약을 먹어도 소용없는 불치병같은 배멀리로 인해, 언제나 꿈만 꾼다.
자갈치시장은 외관만 보고, 그 옆에 있는 신동아시장으로 왔다. 호객행위가 심하다고 하기에, 도착하기 전에 현지인 친구(코로나 밀접접촉자가 되어 자가격리 중)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어디 가서 먹으면 될까?" "신동아시장에 있는 럭키상회로 가라."
아무것도 모르고 갔으면, 완벽한 호갱이 됐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서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다양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눈을 마주치면 가까이 다가오기에 땅만 보고 걸어야 하는데, 럭키상회 위치를 모르니 시선을 어디에 둘지 난감하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도 이리 반가울까? 저멀리 럭키상회가 보인다.
아직 12시도 안된 이른 시간이건만, 낮술을 하는 올바른 분들이 있다. 저분들을 따라 대선(그 대선이 아님을 아는데도 5년동안 멀리하고 싶다) 말고 C1을 꺾고 싶다. 이 문제는 좀 더 고민하기로 하고, 우선 뭘 먹을지 녀석(?)들을 만나러 가자.
3월 제철 해산물로 도다리와 우럭이 있다. 배낚시를 했다면 100% 자연산이겠지만, 시장이니 아무래도 양식일 거다. 양식은 다른 계절에도 먹을 수 있지만, 제철은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다. 그래서 도다리(좌)와 우력(우)을 각각 한마리씩 낚시라 아닌 바구니로 잡아 올렸다.
메뉴판이 있긴 하지만, 인원수에 따라 가격을 조정해 주나보다. 왜냐하면 혼자 왔다고 하고, 도다리와 우럭을 먹고 싶다고 하니, 3만원에 해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각각 한마리씩, 혼밥 하기에도 부담이 없어 보인다. 도다리(좌)는 제철이라 뼈가 연하다고 해서 세꼬시(빼째썰기)로, 우럭(우)은 탕을 더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회로 먹는다.
수산시장이니 럭키상회에서 회를 뜨고, 식사는 다른(2층) 곳에서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인장 왈, 그냥 여기서 먹어도 된다. 다른 곳에 가면 세팅비를 내야 하는데, 횟값만 내고 먹으면 된단다. 왜 테이블이 있을까? 내심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겠다. 굳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냉큼 자리에 가서 앉았다.
써는 방법이 다르니, 딱 봐도 왼쪽은 도다리고, 오른쪽은 우럭이다. 원래는 친구랑 함께 먹기로 했는데, 입이 하나 줄어드니 무지 럭키하다. 이 좋은 걸 혼자서 다 먹는다. 녹색이 없이 회를 먹는다? 이 어려운 일에 도전이다. 왜냐하면 점심을 먹고 일을 해야 하니깐.
확실히 제철은 다른가 보다. 보기에는 담백하니 기름이 없을 줄 알았는데, 도다리 세꼬시 첫 점을 간장에 넣자마자 기름층이 생겼다. 오도독 씹히는 식감과 함께 고소가 아닌 꼬소함이 올라온다. 일을 먼저 끝내고 왔어야 하는데, 고기는 몰라도 해산물은 녹색이가 있어야 한다.
우럭 맛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할까나? 우럭 식감이 이렇게나 찰지고 탄력이 끝내주는지 미처 몰랐다. 저세상 텐션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쫄깃이 아니라 쪼올깃이다. 주로 탕으로 많이 먹었는데, 앞으로는 무조건 회다. 아니다. 이런 탄력은 바닷가 마을만이 가능하기에, 도시에서는 탕 혹은 구이로 먹고, 바다에 오면 회로 먹어야겠다.
우럭에 큰 기대를 안했는데 흠뻑 빠졌다. 회맛을 알기 전에는 무조건 초장 듬뿍이었지만, 지금은 웬만하면 초장을 먹지 않는다. 그래야 본연의 맛을 더 오래 느낄 수 있으니깐.
세꼬시에는 쌈이 딱이다. 한꺼번에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깐. 간장보다는 막장을 올리고, 봄동 + 깻잎으로 포근히 감싸서 입으로 골인하면 성공. 향긋한 깻잎향이 더해지니 맛이 풍부해진다. 봄 도다리는 주로 도다리쑥국으로 많이 먹었는데, 회(세꼬시)도 겁나 좋다.
회를 뜨고 남은 뼈로 끓인 맑은탕이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국물까지 나오다니, 굳이 세팅비를 내고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없겠다 싶다. 선도가 좋으니 굳이 양념을 과하게 하지 않아도 감칠맛이 폭발을 한다. 살은 별로 없지만, 국물이 정말 끝내준다. 그나저나 이렇게 좋은 국물에 제철 회를 사이다랑 먹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웃프다.
자갈치시장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기에는 한번으로 부족하다. 고로 다음에는 자갈치시장에서 국제시장까지 시장에서 삼시세끼를 해볼까나. 두 곳을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알았다. 그래서 매우 몹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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