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예장공원 그리고 기억의터
남산 예장자락은 일제강점기 통감부와 통감관저를 지나 중앙정보부까지 어둡고 암울한 역사의 장소였다. 역사는 지워지지 않겠지만, 아픈 역사에서 아픔은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영원히 잊지 않으면 된다. 아픔의 상처는 공원으로 남산예장공원 그리고 기억의 터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보면, 남산은 지금과 다른 분위기로 나온다. 남산이라고 불리는 중앙정보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앙정보부 본관은 유스호스텔로, 6국은 서울시청 별관으로 감찰실은 TBS교통방송이 들어섰다. 암울한 역사의 현장은 남산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도시재생을 거쳐 남산예장공원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과거 남산 예장자락은 조선시대 군사들의 무예훈련장과 주자소 등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조선 침략의 교두보인 통감부와 통감관저가 설치됐다. 광복 후에는 중앙정보부에 안기부까지 아무나 갈 수 없던 그곳을 이제는 그 어떠한 제한없이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됐다.
오른쪽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예장공원이 나오고, 왼쪽으로 걸어가면 예장마당과 이회영기념관이 나온다. 순서만 다를뿐, 어느 곳으로 가더라도 다 둘러볼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같은 지상으로 나왔다. 남산의 자연경관을 가렸던 건물들이 다 사라지고, 약 7,000평 규모의 녹지공원이 조성됐다. 정식 개장은 지난 6월 9일에 했으니, 따끈한 신상(?) 공원이다.
공원 중앙에 서면, 왼쪽과 오른쪽으로 전경이 전혀 다르다. 왼손잡이가 아니므로 오른쪽 방향으로 간다. 공원은 공원인데, 다른 공원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뷰가 나온다. 어라~ 저기는 어딜까?
조선총독부 관사 터의 기초 일부분을 그대로 보존한 유구터가 나오고, 그 뒤 빨간 건물은 중앙정보부 6국이 있던 자리로 도시재생을 거쳐 기억6이라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다 없애버려도 될텐데, 암울한 역사도 우리 역사이기에 잊지 말아야 한다. 빨간색 건물은 중앙정보국 6국이 있던 자리로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한 역사를 기억하는 기억6이라는 공간과 그 옆으로 낡은 건물 터가 있다.
동굴 트라우마가 있어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입구에서 촬영만 했다. 건물은 돔 형태로 벽면 스크린에는 국민 감시, 강압 수사, 고문 등 국가 폭력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한 내용이 상영된다지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볼 수가 없다.
유리로 되어 있는 곳 아래를 내려다보면,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6국 지하 취조실을 원자재 그대로 제 위치에 복원했다는데, 매우 몹시 궁금하지만 공간이 동굴같아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입구에 서있는데도, 식은땀이 주르륵~ '나 떨고 있다.'
기억6 공간을 재빨리 나와, 또다른 공간으로 이동을 했다. 애국가 가사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를 따라한 것일까? 여기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오솔길이다. 소나무 사이로 나무 데크를 깔아 걷기 좋은 산책로를 조성했다.
공원 규모가 있으니, 남산의 고유 수종인 소나무 군락을 비롯해 교목, 사철나무, 관목 등 총 62,033주 나무를 식재했다고 한다. 아직은 어린 나무이지만, 산림욕하기 좋은 나무로 무럭무럭 자라렴.
아무리 흐린날씨를 좋아한다지만, 여행 혹은 나들이를 갈때마다 흐린날씨라니, 이거 로또라도 사야 하나? 아니면 왕이 되게 해달라고 손바닥에 왕(王)자를 그릴까? 청명한 가을하늘은 아니지만, 흐리지만 미세먼지 없는 가을하늘이다.
전망대를 지나 데크길을 계속 걷다보면 산속 구름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기억의 터로 연결된다. 기억의 터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는 공간으로 일제의 한일합방 강제조약이 체결된 남산 통감관저터에 쉼터를 조성했다.
1910년 8월 22일 이 자리에서 강제병합조약이 체결됐다. 경술국치 뒤 이곳은 조선총독관저가 되었다. 그랬던 이곳을 광복70주년을 맞아, 거꾸로 세운 동상을 세웠고, 이듬해 기억의 터를 조성했다.
거꾸로 세워진 돌기둥은 을사조약의 체결을 성사시킨 히야시 곤스케 동상이 이곳에 세워졌고, 이를 받치고 있던 판석이다. 판석을 거꾸로 세움으로써 명예롭지 못한 역사를 반성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흥석에 써있는 문구,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절대, 단연코,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가운데 흔들리는 고흥석 주위에는 편안한 높이의 능선이 둘러져 있으며, 그 위에 놓여있는 자연석과 잔디에서 사람들은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기억의 터에서 다시 남산예장공원으로 이번에는 1층같은 지하 공간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남산예장공원에 이회영기념관이 개관을 하면서, 효자동에 있던 우당기념관은 더이상 운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과 남산은 무슨 연결고리가 있을까?
경주 이씨 백사공파 으뜸이 되는 백사 이항복이 남산 북쪽에 살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우당 이회영과 6형제 등 가솔들은 시련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뜻을 도모했다. 첫재 이건영, 둘째 이석영, 셋째 이철영, 넷째 이회영, 다섯째 이시영 그리고 여섯째 이호영이다.
개관특별전으로 "봉오동으로 가자, 청산리가 되자"와 체코무기 특별전을 관람할 수 있다. 전 재산을 들여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무기를 사들여 독립운동을 후원한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6형제의 일대기가 유품 및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사용한 무기 상당수는 제1차 세계대전 과정에 유럽 동부전선에서 기차로 이동해 블라디보스톡 항에서 귀국을 기다리고 있던 체코 군단에게서 획득한 것이라고 한다. 체코인에게 얻은 무기는 대략 소총 1200여정, 기관총 6정, 박격포 2문, 권총과 수류탕 등이었다.
상설 전시 "난잎으로 칼을 얻다."
7분 영상은 독립운동에 나서는 고난에 찬 노정과 신흥무관학교 설립, 무장투쟁 과정을 담고 있다. 영상마다 저마다 고유성을 지니되 서로 연대하면서 산을 만들어간다. 독립운동은 우리 겨레가 대지로 일어나 거대한 산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이회영 선생은 곯은 배를 움켜진 채 붓으로 묵란을 쳐서 그걸 내달팔아 총과 칼을 샀다.
독립운동가의 끝을 그러하듯, 이회영과 그의 형제들도 다섯째 이시영만 뺴고는 참담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회영은 밀정의 밀고로 체포돼 여순감옥에서 고문사하고, 가장 많은 재산을 내놓은 둘째 이석영은 굶주림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이시영만이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됐다.
예장마당 천장에 있는 작은 조형물은 단순하게 인테리어인 줄 알았는데,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의 추축이었던 신흥무관학교 학생 3,300명을 기리는 테라코타 조형물이라고 한다.
아프고 어둡고 암울한 역사는 그만, 이제는 푸르름이 가득한 싱그러운 역사로 남길. 하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잊지 않고 기억하고 또 기억하겠습니다.
2017.08.27 - 기억의 터 1년, 그 약속의 날 - 위안부 할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2015.10.15 - 우당 이회영 기념관 -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독립운동가!! (까칠양파의 서울 나들이 e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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