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 능소화 만발
봄꽃과 달리 여름꽃은 생명력이 길다. 벚꽃은 시기를 놓치면 일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능소화는 일주일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만발~ing다. 진한 초록잎 사이로 주홍빛깔 능소화는 시선강탈이다. 능소화를 만나러 안양천으로 간다.
작년에는 긴 장마더니, 올해는 벌써부터 폭염이다. 아침부터 푹푹 찐다. 여기에 비가 올듯 말듯, 습도가 만땅이라 밖에 나가기 싫지만, 능소화를 만나야 하니 아침산책을 나왔다. 손풍기에 양산까지 들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그럼 뭐하나 싶다. 조금 걸었더니 벌써 땀이 난다. 다시 돌아갈까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가졌지만, 어차피 나왔으니 능소화는 보고 가야겠다.
액션영화의 주인공처럼 가뿐히 뛰어내리고 싶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능소화는 커녕 119를 불러야 한다. 너무나 잘 알기에 길따라 걸어간다.
고척교에서 안양천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능소화는 여기서부터다. 왼쪽에는 능소화가 오른쪽에는 무궁화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봄에는 무궁화 옆 오솔길에서 벚꽃을 만났는데, 능소화는 가운데 큰 길로 내려가면 된다.
여름꽃 중에서 수국을 가장 좋아하지만, 능소화는 긴 생명력 때문일까? 오다가다 계속 만나니,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졌다. 햇살을 듬뿍 먹고 자란 능소화는 진한 초록잎들 사이에서 절대 기죽지 않고 자신의 주황빛깔을 맘껏 뽐내고 있다.
능소화에 빠져 자칫 놓칠뻔한 작은 야생화(?). 넌 이름이 뭐니? 달개비 꽃입니다.
능소화는 주황색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노란빛이 감도는 붉은색이다. 다섯 개의 꽃잎이 얕게 갈라져 있어 정면에서 보면 나팔꽃과 비슷하다. 옆에서 보면 깔때기 모양의 기다란 꽃통의 끝에 꽃잎이 붙어 있어서 짧은 트럼펫이 연상된다고도 한다.
능소화를 보러 왔는데, 일찍 일어난 코스모스가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너의 계절은 아직인데 질투의 화신이로구나. 그 옆에는 백일동안 꽃을 피우는 백일홍도 있다.
덩굴식물 능소화는 금동화로 옛날에는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어 양반꽃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때는 양반꽃이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우리 모두의 꽃이다. 능소호의 꽃말은 명예, 영광이다.
장미에는 가시가 있듯, 능소화에는 지압길이 있다. 맨발로 걸으면 무지 아프지만, 신발을 싣고 걸으니 걸을만하다. 그래도 혹시나 아플까봐, 자갈이 없는 옆길로 걸어갔다.
보라빛향기의 주인공 너는 정말 누구니?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하니 라벤더라고 나온다. 라벤더의 개화시기도 6~7월이다. 능소화에 라벤더까지 다양한 여름꽃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니 나오길 잘했다.
능소화는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지지 않고 동백꽃처럼 통째로 떨어진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흔히 처녀꽃이란 이름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한번 피기 시작하면 초가을까지 피고 지기를 이어간다고 하니, 꽃을 볼 날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능소화에 전설이 있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소화라는 후궁이 임금의 성은을 입었는데, 그 날 이후 한번도 찾아주지 않는 임금을 기다리다 상사병으로 죽었단다. 언제나 오실까? 애끓은 기다림에도 찾아주지 않는 임금을 담장 너머라도 보고싶어 하는 소화의 바람으로 피어난 꽃이 소화를 닮았다고 해 능소화라고 불렀다고 한다.
수국도 그러더니, 능소화에도 벌이 참 많다. 가까이 다가가서 향기를 맡고 싶은데, 마스크를 쓰기도 했지만 벌이 무서워서 다가갈 수가 없다. 배롱나무꽃도 서서히 기지개를 피고 있던데, 능소화에 이어 배롱나무꽃 그리고 연꽃까지 더워서 밖으로 나가기 싫지만 아니 나갈 수 없게 만든다.
벚나무가 주는 싱그러운 여름향기가 좋긴 한데, 역시 여름은 산책하기 힘든 계절이다. 일찍 나왔는데도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에어컨 근처를 떠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건강을 생각한다면 여름에는 땀을 흘려야 한다. 고로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산책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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