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수목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오기 전에 다녀오길 잘했다. 땅으로 떨어진 나뭇잎을 보니 가을과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직은 가을을 좀 더 붙잡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음을 알기에, 가을을 보낼 준비를 한다. 만추 푸른수목원을 거닐다.
푸른수목원을 알기 전에는 단풍을 만나러 멀리 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코시국이기도 하고, 멀리 갈 형편이 못되니 가까운 곳으로 간다. 예전에는 교통편이 살짝 불편했는데, 수목원 주위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버스정류장이 새로 생겼다. 비가 오면 벚꽃도 단풍도 다 떨어지기에 버스를 타고 서둘러 다녀왔다.
수목원으로 들어가기 전, 먼저 철길부터다. 푸른수목원이 인기있는 데에는 항동철길이 큰 몫을 한다. 기차가 다니지 않으니 맘놓고 기찻길을 걸어도 된다. 혼자도 좋도, 둘이서 걸어도 좋고, 그렇게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 중이다.
올림픽공원에 나홀로 나무가 있다면, 푸른수목원에도 나홀로 버드나무가 있다. 숱(?)이 풍성했던 버드나무도 계절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직은 풍성하지만 곧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을거다. 하지만 괜찮다. 봄이 오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테니깐.
철길에 저수지까지 푸른수목원은 욕심쟁이(?)다. 그래서 더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가까운데 볼거리가 아주 많으니깐. 지난 여름 새벽에 일어서 연꽃을 찍으러 가려고 했는데, 새벽형 인간이 아니라서 끝내 못 일어났다. 올해는 놓쳤지만, 내년 여름에는 항동저수지에 핀 연꽃을 만나러 새벽에 일어나리라~
급격한 기온 변화로 인해 올해 단풍은 줌으로 당겨서 찍기보다는 전체적인 풍경을 담는다. 그래야 더 예쁘니깐. 붉게 물든 노을처럼 색감이 참 멋지다.
어쩜 이런 색감을 연출할 수 있는지, 역시 자연이 그린 그림은 거룩할 정도로 대단하다.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높은 산을 올라가지 않아도, 가을을 만끽하기에 푸른수목원은 최적의 장소다.
항동철길이 있다. 수목원을 따라 철길이 있기에, 철길을 걷다가 수목원으로 들어가도 좋고, 수목원을 걷다가 잠시 철길로 빠져나와도 좋다. 어떻게 하든, 수목원과 철길은 셋뚜셋뚜다.
어쩜 이런 색감 2탄이다. 단풍은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랄까? 나무는 언제나 꽃에게 주인공 자리를 양보하지만, 가을만은 양보할 수 없나보다.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마지막은 화려하게 그렇게 기억되길 바라는 듯 싶다.
어쩜 이런 색감 3탄이다. 흉내조차 낼 수 없을만큼 자연이 그린 그림 앞에서 겸손함을 배운다. 어쩌다 보니 가을나들이를 별로 못했는데, 굳이 여기저기 가지 않아도 푸른수목원만으로도 대만족이다.
억새인 줄 알았는데 큰 개기장이라고 한다. 벼과 식물이라는데, 핑크뮬리의 사촌쯤 되지 않을까 싶다.
가을에도 장미는 여전히 화려함을 뽐내고 있지만, 장미 하나하나보다는 전경에 시선이 머문다. 장미와 억새, 봄에는 만날 수 없는 풍경이기에, 지금 이순간이 더 소중하다.
저수지가 있는데 반영이 없으면 서운한 법. 올해 단풍놀이는 푸른수목원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사실 한 곳 더 가고 싶었는데,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넘 밉다.
올 가을은 시작도 끝도 스치고 지나가듯 후다닥이다. 이제는 첫눈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가는 가을을 붙잡고 싶지만, 오는 겨울이 반갑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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