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동 굴뚝배기전문점 모려
요즘 매생이에 흠뻑 빠져있다 보니, 굴에 대한 사랑이 식었다? 아니다. 굴에 비해 매생이를 늦게 만난 탓이다. 이런 나의 맘도 모르고, 혹시나 굴이 맘 상했을까봐 이번에는 오롯이 굴만 먹으러 갔다. 굴밥을 주문하면 굴전과 굴젓 그리고 생굴까지 다 먹는다. 내수동에 있는 굴뚝배기전문점 모려다.
지도앱으로 가는 길을 확인하는데 이상하게 넘나 익숙하다. 서울역사박물관을 지나 한글가온길로 접어든다. 높다란 건물 앞에 서니, KB국민카드 아래 지하 아케이드 간판이 보인다. 가장 윗줄에 있는 평안도만두집, 그렇다. 날이 추워지면 이북식 만두로 만든 만둣국을 먹으러 찾았던 곳이다. 평안도만두집과 굴뚝배기전문점모려가 같은 건물에 있다니, 진작에 알았더라면 만두도 먹고 굴도 먹었을텐데 아쉽다. 굴밥을 찾아 폭풍검색을 하다 발견했는데, 이래서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나보다.
지하로 내려오니, 바로 평안도만두집이 보인다. 여기서 만둣국으로 1차를 하려다, 위대하지 못해서 뒤를 돌아 저 끝에 있는 모려로 달려 아니 천천히 걸어갔다. 만둣국은 그동안 여러번 먹었으니, 이번에는 패스다.
굴뚝배기전문점 모려. 여기서 모려는 굴의 한자로 모려(牡蠣)·석화(石花)·여합(蠣蛤)·모합(牡蛤)·여(蠣)·호려(蠔蠣) 등으로 표기한단다.(출처: 다음백과) 겨울제철 굴에 과메기까지 둘 다 먹고 싶지만, 과메기는 혼자 먹기 힘들어 포기다.
바쁜 점심시간이 끝난 뒤라 식당은 한산하다. 테이블도 있고, 양반다리를 하고 먹을 수 있는 좌식테이블도 있다. 혼밥 초보는 벽을 보며 앉지만, 혼밥 만렙은 사람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브레이크타임이다.
굴뚝배기전문점 모려에 온 이유는 굴밥때문이다. 굴떡국, 굴짬뽕, 굴국밥 등 요즘 국물로 된 굴음식을 자주 먹다보니, 굴밥이 먹고 싶어졌다. 돌솥으로 만든 굴밥(8,000원)이라니, 아니 올 수가 없다. 여기에 단품이 아니라 모려정식(12,000원)을 주문하면 굴밥은 기본, 생굴, 굴전, 굴젓갈까지 같이 먹는다.
주문을 하자마자 고소한 기름냄새가 나고, 이내 굴전과 생굴 그리고 굴젓이 나왔다. 쌈장에 간장 그리고 초고추장까지 장이 왜이리도 많나 했는데, 다 이유가 있다. 초고추장은 생굴, 쌈장은 생양파와 마늘종 그리고 간장은 굴전이다.
석화가 아니라 껍질없는 생굴이다. 마늘과 파가 고명으로 올려져 있고, 전문점답게 굴 상태 매우 신선하다. 생굴을 보니, 반주 생각이 간절한데 할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고소고소 기름냄새의 주인공 굴전이다. 메인 음식이 아니라서 양은 많지 않지만, 혼자서 먹기에는 충분하다. 바로 부친 전은 따끈따끈해서 사진을 찍다 말고 하나를 쓱 먹었다.
굴젓이라서 어리굴젓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주인장이 직접 만든 굴젓갈이란다. 젓갈답게 짭짤하다. 밥과 같이 먹으면 좋겠구나 하고 있는데, 주인장이 밥을 조금 줄까라고 물어본다. 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달라고 했다. 테이블에 있는 참기름을 밥에 조금 넣고, 여기에 굴젓을 더하면 단짠이 아니라 고소짭짤이다.
생굴 먹고, 익은 굴 먹고 굴파티다. 굴전에 들어 있는 굴은 부치기 전에 살짝 익혔는지, 생느낌은 덜하지만 기름과 계란을 만나 고소함이 터진다. 간단하게 밥을 먹으러 갔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이즈백이를 주문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다. 누군가는 따끈따끈한 흰밥에 스햄이라는데 아니다. 따끈따끈한 흰밥에 굴젓갈이다. 반찬이 아무리 많아도 젓갈에는 오직 밥이다. 흰밥의 달달함과 젓갈의 짠맛이 더하니 침샘폭발이다.
굴밥이라고 해서 굴을 넣어 지은 솥밥인 줄 알았다. 그 밥을 기대하고 왔는데, 굴이 들어있는 돌솥비빔밥이다. 굴과 무를 넣고 갓지은 굴밥은 어디로 가야 먹을 수 있을까나?
함께 나온 양념장을 넣고 쓱슥 비빈다. 굴 외에도 해바라기씨, 무, 당근, 부추, 미역(혹은 톳?) 등 내용물이 푸짐하다. 기호에 따라 참기름을 추가해도 되는데, 굴풍미를 살리고 싶어 넣지 않았다. 비빔밥에는 고추장을 넣기도 하지만, 굴향을 살려야 할때는 간장이 좋다.
밥을 슴슴하게 비볐으니 반찬을 올려서 먹어야 한다. 깍두기에 배추김치 그리고 부추무침까지 하나씩 올려서 먹는다. 밥만 먹어도 좋고, 반찬을 더해서 먹어도 좋고, 그냥 다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좋은 건, 굴밥에 굴젓갈이다. 젓갈이 주는 짭짤한 감칠맛에 굴밥이 만나니 이제야 완성이 됐다. 역시 진정한 밥도둑은 젓갈이다.
이즈백이도 남았고, 살짝 부족하기도 해서 주인장에게 혹시 리필이 되냐고 물어봤다. 전은 부쳐야 해서 힘들지만, 생굴과 굴젓은 가능하단다. 그나저나 생굴은 아까보다 상태가 더 좋아보인다.
관자 하나하나 살아있는 생굴, 초고추장을 더하지 않아도 될만큼 신선도가 끝내준다. 굴젓은 흰밥이 있어야 해서 공기밥을 추가했는데 주인장은 아까처럼 밥을 그냥 주셨다. 생굴 먹고, 흰밥에 굴젓 올려서 또 먹고, 그렇게 먹다보니 배는 남산과 친구할만큼 빵빵해졌다. 메뉴판에 멍게비빔밤이 있던데, 겨울에는 굴, 봄에는 멍게 그리고 여름에는 묵밥을 먹으러 계절이 바뀔때마다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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