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라도 마포점
명품백 살 돈은 없지만, 명품 갈비탕 먹을 돈은 있다. 나를 위한 작은 사치를 스몰 럭셔리라고 한다. 하나를 먹더라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소중하니깐. 갈때마다 늘 기분 좋은 만족을 주는 능라도 마포점으로 간다.
이북땅에 있는 능라도에는 언제 갈지 모르지만, 마포동에 있는 능라도에는 배가 고프면 언제라도 갈 수 있다. 브레이크 타임이 없으니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기에, 대놓고 늦은 시간(오후 3시)에 갔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라 혼밥이라도 사람이 많으면 살짝 불안하니깐.
역시 예상대로 넓은 식당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직원분은 만두를 빚고 있고, 주방은 저녁을 위한 재료 손질을 하고 있는지 일정하게 칼질 소리가 난다. 늦은 오후라 그런지, 죄다 식사보다는 낮술을 하고 있다. 이거 나도 동참을 할까나.
평양냉면을 시작으로 만둣국과 평양온반을 먹었다. 나름 혼밥용 음식을 다 먹었기에, 평냉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까 했다. 그런데 주인공은 마지막이 아니라 뒷장에 있다고 해야 할까나? 메뉴판 뒷장에 명가의 깊고 그윽한 맛이라는 명품 갈비탕이 있다. 아마도 계절메뉴라서 그런가 보다. 그냥 갈비탕도 아니고, 명품 갈비탕(16,000원)이니 부담스런 가격이지만 스몰 럭셔리라 생각하고 주문을 했다.
차가운 냉수를 원한다면 따로 요청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테이블에는 뜨거운 면수가 들어있는 주전자만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음식이 나오기 전이지만, 능라도는 면수부터 음식이라 볼 수 있다. 그냥 물인데 할 수 있지만, 애피타이저처럼 요거 한잔을 쭉 마시면 입맛이 돌기 때문이다.
갈비탕이라서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배추김치와 깍두기가 나왔다. 늘 그러하듯 배추김치는 아직 익기 전이고, 깍두기는 맛깔나게 잘 익었다. 깍두기는 건더기만 먹지 말고, 국물과 같이 먹어야 훨씬 좋다.
밥은 2/3정도 들어있고, 고슬고슬하니 탕에 말아도 밥알이 풀어지지 않는다. 테이블에 고춧가루와 소금만 있기에, 만둣국을 먹을때 후추를 따로 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갈비탕에는 후추가 정말 필요한데 하면서, "후추 좀..." 얘기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후추가 등장했다. 만둣국과 달리 갈비탕에는 후추가 기본으로 나온다.
평양온반은 음식 특성상 뜨끈하게 나오는데, 갈비탕은 뜨겁게 나온다. 요런 비주얼에는 연사가 빠지면 안된다.
깔끔하고 맑은 육수라고 하고 싶은데, 평양냉면과 비교를 하면 탁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능라도의 평양냉면은 맹물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육수가 엄청 맑으니깐. 노란 계란지단과 파는 고명이고, 주인공인 갈비는 육수 아래 자신의 존재를 살짝 노출하면서 숨어 있다.
갈비탕을 그리 즐겨 먹지 않았지만, 능라도이니 육수를 깔끔하게 뽑아낼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소금을 더 넣지 않아도 될만큼 간간하지만 입에 쫙쫙 달라붙는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살국마가 다시 등장했다. 숟가락질을 멈추지 아니 멈출 수가 없다.
예상하지 못한 당면의 등장으로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왕갈비는 아니지만, 고기가 엄청 실하다. 힘줄(?) 부분도 제대로 있고, 뼈를 잡고 막 뜯고 싶은데 체통(?)을 지켜야 한다.
하나, 두울, 세엣... 국물 속에 잠겨 있는 갈비까지 더해 총 6개가 들어있다. 참, 명품갈비탕의 갈비는 호주산이다.
설렁탕에 들어있는 면은 좋아하지 않으면서, 갈비탕에 들어있는 당면은 무지 좋아한다. 육수를 흠뻑 먹고 있는 당면은, 마치 빨대로 육수를 마시는 느낌이랄까? 명품갈비탕인데 2% 부족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후추를 넣으라는 주방장의 큰그림이 아닐까 싶다.
뼈를 잡고 뜯고 싶었으나, 너무 뜨거워서 쉽지가 않다. 이래서 인간은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테이블에 있던 칼과 집게를 사용해 뼈와 고기를 분리하고, 고기는 먹기 편하게 한입 크기로 잘랐다. 고기가 질겨서 그동안 갈비탕을 즐겨 먹지 않았는데, 능라도는 아니다. 질김보다는 부드러움이 더 강하다. 뼈 한개 정도는 그냥 뜯어 먹어야 하는데, 도구 사용도 좋지만 가끔은 원시 시대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역시 나의 취향은 배추김치보다는 깍두기다. 그래서 깍두기를 두번이나 더 리필을 했다. 고기와 국물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밥은 아직 말지 않았다. 밥을 말면, 지금 이순간 아니 지금 이맛으로 돌아갈 수 없을테니깐.
본격적으로 먹기 전에 후추를 넣었는데, 이번에는 고기에 직접 후추를 뿌렸다. 국물에 잠겨 은은하게 퍼지는 후추향도 좋지만, 이렇게 대놓고 먹으니 후추향이 코를 훅 치고 들어간다. 당면과 고기의 조화는 말하지 않아도 좋다는 거 다 알지요~
40% 정도 갈비탕 본연의 맛을 즐겼으니, 이제는 밥 타이밍이다. 밥을 넣고 잘 풀어준 후,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다. 왜냐하면 밥알이 국물을 빨아들이는 시간을 줘야하기 때문이다. 블로그 때문이기도 하지만, 혼자서 나름 순서와 격식을 갖추면서 먹고 있다.
고기와 당면 그리고 밥까지 조화롭지 않을 수 없다. 명품답게 양도 푸짐하고, 밥이 적을 줄 알았는데 남기지 않고 딱 먹을 수 있게 적당하다. 마지막 사진만 보면, "과연 무슨 음식을 먹었을까요?" 되묻고 싶다. 능라도에서 혼밥용 메뉴는 다 먹은 거 같으니, 평양냉면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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