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동 히말라야어죽
노래 가사처럼 비가 오면 그사람이 생각나야 하는데, 비가 오면 생각나는 건 부침개다. 빗소리인지 전 부치는 소리인지 굳이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소리와 함께 흐르는 고소한 냄새는 비가 내릴수록 더 진해진다. 녹두, 감자, 애호박 그리고 동태 등 전 사총사와 아스타팜없는 누룩이, 도화동에 있는 히말라야어죽이다.
오전에 내렸던 비는 그쳤지만, 장마이다 보니 하늘은 언제라도 비를 보낼 준비를 마친 거 같다. 우울한 회색 하늘이지만, 기분은 정반대다. 왜냐하면 오전에 들었던 빗소리를 오후에는 먹으러 왔기 때문이다. 자주 오는데도 골목을 찾지 못해 주변을 서성거린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왔는데, 나만 쏙 골목으로 들어오고 친구는 직진을 했다. 미리 말을 해줘야 했는데, 골목을 찾느라 말할 기회를 놓쳤다. 큰소리로 친구를 부르고 함께 골목으로 들어왔고 자동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 저녁에라 한산하지만, 다 먹고 나갈때쯤 모든 테이블이 꽉 찼다. 아무래도 비가 와서, 퇴근 후 집보다는 한잔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일찍 가서 다행이지, 점심이 아니라 저녁에 갈때는 예약을 해야겠다.
어죽을 즐겨 먹었다던 친구는 서울에서 어죽을 먹어본 적이 없단다. 그래서 어죽(10,000원)과 장마시즌이니 모둠전(25,000원)을 주문했다. 이때 주인장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2개의 의미가 사뭇 다르게 전달이 됐다.
마지막 기본반찬은 고사리나물이다. 반찬이 워낙에 훌륭하니 메인 음식이 나올때까지 누룩이 친구(안주)로도 훌륭하다. 혼술할때는 짠을 못하는데, 둘이 마시니 자꾸만 짠을 하게 된다.
가격을 생각하면, 비싼감이 없지 않은데, 히말라야어죽의 모듬전은 양보다는 질이다. 전 하나하나 퀄리티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모둠전이라고 해서 6~7가지 정도 나오는 줄 알았는데, 단촐하게 4총사가 나왔다.
겉바속촉의 정석 감자전이다. 다른 전에 비해 감자전은 만들기가 은근 까다롭다. 강판에 갈아야 하고, 체에 걸려 윗물은 버리고 앙금과 건더기를 섞어서 소금간을 살짝 한 후 노릇하게 부쳐야 한다. 다른 부재료가 들어가지 않기에, 감자와 기름만으로 요런 비주얼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기름이 너무 많아도 안되고, 속까지 바짝 익혀도 안되고, 만들기 어려울때는 사 먹는 게 정답이다.
어죽 하나, 모둠전 하나 이렇게 2개를 주문했는데, 주인장은 어죽 둘에 모둠전은 추가로 들었단다. 주인장이 둘이요 했을때, 네라고 답을 했는데, 둘의 의미는 완전 달랐다. 어죽이 2개나 나왔는데, 하나만 달라고 할 수 없으니 둘다 먹기로 했다. 대신 친구가 1과1/2를 먹고, 나는 1/2를 먹었다. 비린내 단 1도 없는 어죽, 국수와 밥이 함께 들어 있다.
어죽에, 감자, 녹두, 동태, 애호박전 그리고 무 아스파탐 누룩이까지 장마시즌 한정판(?)이다. 이날 3명 이상 온 테이블은 죄다 아나고전골을 먹고 있다. 붕장어와 함께 푹 익은 파김치가 푸짐하게 들어있는 전골은 둘보다는 셋은 되야 남김없이 다 먹을 수 있을 듯 싶다. 고로 집밥은 혼자, 모둠전은 2명, 아나고전골은 3명 이렇게 인원을 맞춰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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