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송죽장
한때는 겁나 맵다는 닭발도 엄청 잘 먹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매운음식을 먹으면 배가 아프고 다음날 화장실 가기가 두렵다. 이걸 아는 사람이 고추짬뽕을 먹으러 영등포 송죽장에 갔다니, 망각은 무서운 녀석(?)이다. 그나마 군만두가 있어 천만다행이다.
요즘 유튜브를 즐겨보는데, 그중에서 맛있는 녀석들을 좋아한다. 금요일 저녁 8시 15분에는 본방사수를 하고, 다른 요일은 사골스트리밍이라고 1회부터 120회까지 예전 방송을 보고 있다.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갈 일이 있고, 하필이면 전날 저녁에 송죽장편을 봤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 오랜만에 고추짬뽕을 먹을까나. 4년 전에 먹었는데, 그 기억은 망각으로 사라져버렸다. 룸에서 혼밥이라, 해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 고로 2인 테이블에 앉았다.
고추짬뽕(8,000원)을 하나만 먹을까 하다가, 혹시나 싶어 군만두(6,000원) 같이 주문했다. 울면과 우동이 끌렸지만, 송죽장은 고추짬뽕이 가장 유명하다.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봤던 테이블 칸막이가 여기도 있다. 시험볼때 책상에 가방은 올려봤어도, 칸막이는 어색하고 낯설다. 하지만 코로나시대이니 이제는 적응을 해야 한다. 자차이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식초를 더한 새콤한 단무지에 알싸한 양파는 있다.
고추짬뽕을 받자마자, 망각으로 사라졌던 기억이 소환됐다. 맞다. 예전에 완뽕을 힘들어 했는데, 이제야 생각이 났다. 4년 전에 비해 국물이 더더더 진해진 거 같다. 그때도 무지 힘들게 먹었는데, 벌써부터 후덜덜 떨린다.
차라리 면을 따로 건져 놓을까?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옆에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군만두를 믿고 먹어보기로 했다. 우선 국물부터, 와우~ 비주얼대로 맛도 진함 속에 매움이 꽉 들어차 있다. 고작 국물을 먹었을 뿐인데, 아무래도 국물까지 남김없이 다 먹는 건 힘들 거 같다.
군만두가 8개, 모양은 고ㅎ만두스럽지만, 맛은 천지삐까리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바삭한 만두피에 고기와 부추(일듯)가 가득 들어있다. 매운맛을 부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늘 그러하듯, 음식을 숟가락에 올리고 촬영을 해야 하는데, 이건 짬뽕이다. 즉, 아무리 조신하게 먹어도 옷에 국물이 튄다. 앞치마를 하긴 했으나, 짬뽕 먹었다는 티를 내기 싫어 숟가락이 아니라 접시를 이용했다. 원래는 군만두용 간장종지(?)인데, 대형 숟가락이 됐다. 쫄깃한 면은 참 좋은데, 면과 함께 올라와 재채기를 유발하는 매운맛은 역시 힘들다.
아무래도 대왕오징어를 사용하는 거 같다. 크고 두툼해서 좋은데, 살짝 질기다. 김에 밥을 싸서 먹어봤어도. 오징어에 면을 싸서 먹는 건 처음이다. 매운맛 잡는데 단무지도 꽤 훌륭하다. 새콤달달함으로 인해 매운맛이 밀리기 때문이다.
대왕오징어에 단무지도 좋았으니, 단연코 군만두가 짱이다. 고기의 육즙에 기름이 더해지니 매운맛이 쏙 숨어버렸다. 면까지는 좋았지만, 국물은 아무리 군만두라도 안되나 보다. 그냥 뜨끈뜨끈한 울면이나 먹을걸. 이제와서 후회한들, 나만 손해다. 이정도로 매운맛을 못 먹지 않았는데, 맵부심이 바닥 친 맵린이(매운맛 어린이)가 됐다. 신라면보다는 당연히 맵고, 딱 한번 먹어본 불닭볶음면 수준이랄까?
겨우겨우 면은 어느정도 먹었는데, 국물은 처음나온 그대로인 듯 싶다. 예전에는 청양고추를 빼고 먹느라 바빴는데, 지금은 국물 자체가 너무 맵다. 그나마 군만두를 주문하길 얼마나 잘했는지, 스스로에서 참 잘했어요라고 칭찬을 했다. 이제는 섣불리 매운맛 도전은 하지 말아야겠다. 가끔 생각나던 매운닭발은 망각으로 보내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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