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자랑스런 역사도 아니면서 굳이 역사관으로 만들 필요가 있냐고 되묻는 이가 있을까? 혹시나 만약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잊지 말아야할 우리 역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다.
2월 25일부터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코로나19로 인해 잠정 휴관됐다. 더불어 101주년 3.1절 기념행사도 취소가 됐다고 한다. 이래저래 우울한 3.1절을 맞이 해야할 거 같다. 이번(2월 22일)이 두번째 방문으로, 6년 만이다. 지금은 형무소도 아니고 역사관인데도 이 앞에 서면 맘이 무거워진다. 만약 그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어떤 인간으로 살았을까? 겉으로는 당연히 독립운동을 했을거라 말하지만, 속마음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서대문형무소는 대한제국 말기, 일제에 의해 1908년 10월 21일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었다고 한다. 개소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근대식 감옥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맞서 싸운 한국민을 저지하고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 순국했고, 광복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해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되어 고난을 치뤘던 곳이다.
성인은 3,000원으로 입장료가 있다. 결제를 하고 전시관에 들어가니, 열감지카메라가 있다. 3일 후 휴관이 될지 모르고, 혹시나 열이 나면 어쩌나 살짝 쫄았는데 다행히 입장이 가능했다.
개소 당시 1,600㎡의 규모였던 서대문형무소는 증축과 개축을 거듭하면서 1930년대에는 51,200㎡로 약 30여 배 이상 규모가 확대되었다고 한다. 이는 독립운동에 따른 소위 사상범의 급증때문이었다. 일제는 한국의 식민 지배를 위해 한국민을 감금하고 탄압할 시설이 필요했다. 이에 8개 주요 도시에 본감옥과 분감옥을 설치해 전국에 16개소 감옥을 설치, 운영했다. 강제병합 직후 21개소, 1920년 이후에는 평균 30여개소 내외의 감옥이 생겼다.
1910~1945년에 걸친 일제강점기 동안 의열투쟁, 비밀결사 조직, 해외 독립군 기지 창건, 독립군 양성, 3.1독립만세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6.10만세운동, 대일 무력투쟁 및 사회 문화 노동 농민 학생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는 독립운동을 했다.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을 보면, 일제는 200년 동안 우리나라를 다스리려고 했단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정말 그렇게 됐다면 지금도...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수감자 노역시 탈주를 방지하기 위해 허리에 채웠던 형구로 요라고 한다. 보기에도 묵직한데, 무게는 5kg, 길이는 3m다. 그리고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당시 태극기를 대량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한 태극기 목각판이다.
독립운동가의 기록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5천여 장의 수형기록표를 통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되새겨 보는 공간이다. 6년 전에도 울컥했는데, 역시나 변함이 없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깊이 새기겠습니다."
전시관 지하 즉, 보안과청사 지하실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독립운동가를 취조하던 공간이다. 각 방은 취조실과 임시구금실, 독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6년 전에는 직접 내려가서 봤지만, 이번에는 내려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 그 충격이 계단 앞에 서자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몸이 아픈데, 그분들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상상을 한다해도 실상은 그 이상일 거 같다.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해 앉을 수도 움직일수도 없는 고통을 준 벽관 고문.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 넣어 마구 흔들며 못에 찔리게 해 고통을 준 상자고문. (6년전에 찍은 사진 재활용)
2020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1월 정용기ㅣ / 2월 조지 새넌 맥큔 / 3월 김세환 / 4월 오광선 정현숙 / 5월 유찬희 / 6월 임병극 / 7월 강혜원 / 8월 이석영 / 9월 채원개 / 10월 박영희 / 11월 유도발 유신영 / 12월 윤창하
3.1운동으로 잡혀 온 수감자가 갑자기 늘어나 1920년대 초에 새로 지은 2층 옥사다. 수감자 감시와 통제를 쉽게 하려고 원형 감옥 구조로 만들었다고 한다. 복도 천장의 채광창은 수감자의 움직임을 잘 보기 위해 만든거란다.
12옥사에는 먹방이라는 독방이 있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약 0.7평의 공간으로 내부는 24시간 내내 빛이 한줌도 들어오지 않아 마치 먹물처럼 깜깜하다 해서 먹방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진 속 공간은 요즘 말로 하면 혼거실이지 않을까 싶다.
수감자들이 노역했던 건물로 주로 옷감과 실, 의복 등 의류품을 만들어 전국 각지의 형무소나 군부대, 관공서에 공급했다고 한다. 오른쪽 사진은 2009년에 발굴한 서울구치소 재소자들이 사용하던 밥그릇이다.
내부는 촬영이 금지된 곳, 사형장이다. 지상 1층과 지하 1층의 일본식 목조건물로, 사형장은 5m 높이와 담장으로 둘러싸고 있어 서대문형무소 안에서도 보이지 않게 차단되어 있다. 사형장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는 끌려가는 사형수들이 원통한 마음에 이 나무를 붙잡고 통곡했다고 해서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전해진다. 사형장 안쪽에도 같은 시기에 심었다는 미루나무가 한 그루 더 있었는데, 억울한 한이 서려 잘 자라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 나무를 죽어 지금은 그루터기만 남아 있다.
여옥사 8호 감방은 1920년 3월 1일에 3.1운동 1주년 옥중 만세 투쟁이 펼쳐졌던 현장이다. 유관순과 함께 8호 감방에 수감된 여성 독립운동가는 개성지역 3.1운동을 지도한 어윤희,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수원지역 3.1운동을 지도한 김향화, 파주지역 3.1운동을 지도한 구세군 사령 부인 임명애 등의 인사들이었다.
박진홍(좌)과 이효정(우)은 동덕여고 동기생으로 일선 공장의 노동운동을 주도하다, 각각 일본 경찰에 피체되어 서로 소식을 모른 채 여옥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때 박진홍은 임신한 상태로 수감되었고, 출산을 했지만 아기는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한다.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영혼만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1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다. 작년에 개봉을 했는데 아직 못봤다. 영화 시작부터 펑펑 울 거 같아 미뤘는데, 3.1절을 맞아 나만의 기념식으로 영화를 봐야겠다. 그리고 다시한번 다짐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고,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고로 "잊지 않겠습니다.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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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에서 나와가지고 봣었어요 좋은데 다녀오셨네용
네이버에서 한번 봤는데 여기서는 더 전문성있는 정보를 또 보게 되네염~
이번 3.1절은 서대문형무소를 꼭 다녀오고싶었는데.. 코로나 여파로 계획을 캔슬했네요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고,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3.1절이 다가오니 더욱더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모든 호국선열들께
한 번 더 감사드리며, 지금부터라도
좀더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네요.
편안한 저녁 보내시길요~ :D
저도 잊지 않겠습니다.
삼일절이 이틀 뒤네요.
되새길 기회가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은평구 살때 자주 지나다녔던 곳이에요..내부는 가보질 못했죠..
다들 말씀대로 .. 곧 3.1절이네요~
이번 기회에 한번 방문해서 역사에 대해 한번 더 깊이 되새기고
와야겠습니다
그쵸~자랑스럽지 않다고 없애버리면 안되겠지요~
지금 시기에 문을 열었네~했는데 역시 휴관했군요
은평구쪽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거든여
서대문형무소는 늘 이렇게 포스팅으로만 만나는데
언젠가는 꼭 방문해보고 싶어요..
코로나 때문에 3.1절이 낼 모래인지도 몰랐네요.ㅠ.ㅠ
잊지말고 꼭 마음속에되새겨야 겠어요
곧 3.1절인데 역사적인곳을 다녀오셨군요
포스팅 잘보고갑니다 ㅎㅎ
그러고 보니 내일이 3.1절이군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상기시켜주셨어요~!
아직 방문하지 못한 곳인데 언젠간 꼭 가보고 싶어요~
지금의 우리나라가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다 독립운동가 님들 덕분이죠~!
의미있는 포스팅입니다~ ㅎㅎ
곧 삼일절인데 코로나 때문에 행사도 하지 않는군요.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날이죠. 서대문형무소 예전에 갔었는데 보기만해도 뭔가 가슴이 답답한 것이 너무 고통스럽더라구요. 하지만 독립운동가 분들 덕분에 이렇게 저희가 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음에 한국가면 꼭 다시 가봐야겠습니다. : )
내일이 3.1절이군요.. 저도 전에 서대문 형무소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정말 많은 걸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고문 당하신 현장, 기구 등을 보면서 정말 내가 정신 못 차리고 살았구나, 나는 정말 편하게 살고 있구나,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로 돌아가면 나는 어땠을지 모르겠다는 말씀에 정말 공감합니다. 사람들은 다들 독립 운동을 했을 거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진짜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 과연 몇 %나 될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존경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감사해용~^^ 의미있는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고 편안한 민주주의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는 게
모진 고초를 감수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조상님들 덕분임을
절대 잊어선 안 되겠다는 다짐을 다시한번 하게 되네요~!!!
저도 4~5년전즈음에 방문했었던 곳입니다. 들어가기 전에 한번 마음이 묵직해지고 벽에 걸려있는 태극기 앞에서 눈이 묵직해지는 곳이죠. 선조들의 애국정신과 항일의지를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아 여기 갔다 오셨군요. 너무 유명한 형무소.... 볼때마다 열도 받아요.
코로나 사태로 어수선한 상황이지만, 3.1절의 의미는 절대 잊지 말아야죠~~~
구독합니다..
항거까지 이어서 보셨군요 .. 역시 ..
독립운동이라는게 쉽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문까지 당한다면, 절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현실의 독립운동가의 굳은 결의가 더더욱 존경스럽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헌신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만들어졌겠지요.
그분들의 치열한 삶을 우리가 지켜나가야겠습니다.
집 근처인데 한 번을 안 가봤네요..
저도 한 번 가서 자세히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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