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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함원전에서 집옥재까지 좌측부

경회루가 있는 경복궁 좌측부 관람이다. 함원전을 시작으로 수정전, 경회루, 문경전 터, 태원전, 흥복전, 함화당, 집경당, 장고 그리고 집오재까지다. 수정전 옆 넓은 공터에는 궐내각사가 있었으며, 경복궁이 중건할때 처음 건립된 태원전은 빈전으로 사용됐다. 워낙 자주 갔으니, 모르는게 없는 줄 알았는데, 새삼 또 배웠다.  

 

출처 - 경복궁 홈페이지

중앙부에 비해 전각은 별로 없지만, 띄엄띄엄 있다보니 발품을 많이 팔아야했다. 11번 태원전 일원은 화장실을 찾다가 우연히 들렸는데, 창덕궁 신정전에서 본 복도각 건물에, 경복궁의 빈전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됐다. 

 

불교 행사가 자주 열렸던 함원전
흠경각

왕의 침전인 강녕전에 바로 옆에 있는 흠경각은 농본사회를 운영하는 왕의 역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전각이다. 농업 위주의 전통사회에서 시간과 천체의 운행에 맞추어 정치를 하기 위해서 천체기구들을 왕실에 가까이 두었다고 한다. 세종은 옥루기륜, 양부일구 등의 시계와 간의를 만들어 흠경각 일원에 설치했다. 

 

강녕전에 있는 우물
궁궐을 벗어나 경회루로~

사극 드라마를 보면, 꼭 이런 곳에서 몰래 비밀 얘기를 하다가 들키고 그런던데... 창경궁에 갈때마다 늘 허전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경복궁은 궁궐을 감싸는 거처럼 돌담이 쭉 이어져 있는데, 창경궁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궁궐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수정전

창덕궁에는 미로같은 궐내각사가 있는데, 경복궁에는 왜 없지 했었다. 그런데 수정전과 그 옆으로 길게 뻗어 있는 공터가 궐내각사 자리란다. 왕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여러 관청들의 궁궐안에 설치해 궐내각사로 불렀다고 한다. 비서실은 승정원, 시적 편찬을 맡았던 흥문관, 의료기관인 내의원 등이 근정전 서쪽에 있었다. 세종때 한글 창제의 무대가 된 집현전은 지금의 수정전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왕의 놀이터(?) 경회루

경회루 특별관람을 한지도 벌써 6년 전이다. 인터넷으로 신청을 해서 40분 동안 해설사와 함께 경회루 곳곳을 관람했었다. 늘 밖에서 바라보다, 경회루 2층에서 바라본 전경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별반 차이 없을 줄 알았는데, 차이가 엄청 났기 때문이다. 경회루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 연못을 따라 반영을 담아보려고 한다.

 

반영 좋을시고
경회루는 단일 평면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누각건물

지난번 창덕궁 관람때는 거센 바람이 불어 겨울이 다시 온 거 같았는데, 이번에는 완연한 봄날이다. 추울까봐 옷을 단단히 입고 나갔는데 덥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이 없었더라면 이쯤에서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봄은 이렇게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어요~
봄소식에 방긋 웃고 있는 매화
노란 산수유꽃도 봄소식을 알려요~
문경전 터

문경전은 고종 초 경복궁을 중건할 때 태원전, 회안전과 함께 홍례(왕실의 상·장례)에 쓰기 위해 지었다.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의 신주를 모신 혼전으로 쓰였고, 경운궁(덕수궁)을 지으면서 옮겨 갔다고 한다. 

 

문경전 터에서 걸어서 태원전으로 가는 중
건순문

왕과 왕비가 죽으면 빈전에 관을 모시고, 교외에 마련된 산릉에 시신과 관을 묻은 후에는 혼전에 신주를 모셔 정해진 장례 기간을 치른 후에 종묘로 신위를 옮겨 모시게 된다. 태원전은 경복궁의 빈전으로, 문경전은 혼전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일제감정기때 철거를 당하고, 청와대 경호부대가 주둔을 하기도 했지만, 2006년 복원공사가 마무리되어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런데 왜 이제서야 왔을까? 아무래도 경회루를 보고, 향원정을 바로 가느라 놓쳤던 거 같다.

 

경안문
복도식 건물

요런 복도각을 어디서 본 거 같은데 했다가 아하~ 청기와가 특이했던 창덕궁 선정전이 생각났다. 선정전은 왕의 편전이지만, 한때는 신주를 모시던 혼전으로 쓰였다고 했다. 다른 전각과 달리, 왜 빈전과 혼전으로 쓰인 전각에만 복도각이 있을까? 

 

태원전

검색에 검색을 거듭해 답을 찾았다. 복도각은 혼백이 지나다니는 길이며, 우천시에는 재궁이 비에 젖지 말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한다. 창덕궁 선정전뿐만 아니라, 경희궁 자정전에도 복도각이 있다.

 

영사재

영사재는 왕비나 후궁들이 재숙하던 내빈실로 태원전과 연결되어 있다.

 

숙문당은 국장이 끝나면 시채문 등을 임시로 보관하던 이안청으로 사용되던 곳이라고 한다.

 

산수유꽃이 방긋 방긋
숙설소 터

경회루 북쪽으로 물길을 건넌 자리인 숙설소는 궁중에 잔치 등 큰 행사가 열릴 때 필요한 음식을 조리하고 식자재를 보관하거나 관련자들이 머물기 위해 만든 임시 공간이라고 한다. 숙설소는 왕실의 장독대인 장고 가까이에 설치됐다.

 

흥복전

흥복전은 경복궁의 내전 안에 있는 편전으로 경복궁을 중건할 때 처음 지었다고 한다. 창덕궁 내전에 큰 불이 났을때 강녕전, 교태전 등 경복궁의 다른 건물들과 함께 창덕궁의 내전 건물들의 다시 짓는 자재로 쓰여 없어졌다가, 2018년에 복원됐다.

 

향원정은 현재 보수 공사 중

중궁전인 교태전 북쭉에는 여러 빈들의 거처인 후궁 영역이 있었는데, 관련 있는 내전 가운데 함화당과 집경당이 남아 있다. 외국 사신을 접견한 기록이 간간이 등장할 뿐 건물의 용도가 명확지 않다고 한다. 

 

집경당
집경당 누마루

집경당에 도출된 누마루에서 북쪽 향원정을 감상할 수 있다는데, 지금은 공사중이다.

 

함화당으로 넘어가는 중
함화당

함화당과 집경당 사이를 연결하는 높은 복도가 남아 있어서, 원래 궁궐의 복잡한 통로 체계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장을 보관하던 장독대 장고는 출입금지

왼쪽부터 팔우정, 집옥재 그리고 협길당이다. 고종의 개인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된 곳이다. 집옥재는 양 옆벽을 벽돌을 쌓고 내부를 중2층으로 만들었으며, 팔우정은 팔각형의 2층 정자이다. 중국풍의 요소들이 많이 섞여 궐내에서 이국적인 지역을 형성하며, 복도를 통해 하나의 내부로 연결된다. 예전에는 궁궐 속 작은 도서관으로 개방을 했던데, 지금은 굳이 가까이 가지 않아도 문이 닫혀있다.

 

어서와~ 고요한 경복궁은 처음이지? 마지막 이야기는 창덕궁에 낙선재가 있다면, 경복궁에는 건청궁이 있다. 그리고 세자가 머물던 동궁과 소주방 등 경복궁 우측부를 만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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