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향원정부터 동궁까지 우측부
창덕궁에 이어 경복궁까지 사람없는 궁궐 탐방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갈때마다 관람객이 많아서 투덜투덜댔지만, 막상 없으니 너무나 어색하고 이상하다. 고요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우리의 자랑 경복궁은 시끌벅적해야 좋다. 향원정, 건청궁, 자경전 그리고 동궁까지 경복궁 우측부 관람이다.
한두시간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어느덧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만보는 벌써 넘었고, 쉬는 시간이 길어졌다. 완연한 봄날에 겨울옷을 입고 있다보니 더 지친다. 그나마 가방을 물품보관함에 맡겨서 다행인데, 아뿔사 텀블러를 챙기지 않았다. 수정전 옆 카페에서 음료를 구입했어야 하는데, 다시 가려니 넘 멀다. 좀만 더 참자.
집옥재 일원을 지나 경복궁 우측부로 들어선다. 오른편에는 향원정이 왼편에는 건청궁이 있다. 향원정은 보수공사 중이니, 발길은 자연스럽게 건청궁으로 향한다.
고종은 경복궁 북쪽 동산정원인 녹산과 향원정 사이에 건청궁을 지어, 명성황후와 기거했다. 창덕궁의 낙선재처럼 경청궁 역시 단청이 없는 사대부집 가옥 양식이다. 양반은 99칸을 넘으면 안되는데, 왕답게 2.5배나 되는 250칸이라고 한다. 건청궁은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가설된 곳이다. 일제강점기때 철거되어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다가, 복원 공사를 거쳐 2007년 건청궁으로 다시 돌아왔다.
경복궁에 큰 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생활공간을 옮겼고, 1885년에 다시 건청궁으로 돌아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할 때까지 10여년 간 줄곧 건청궁에서 지냈다고 한다.
곤녕합 옥호루는 1895년 을미사변 때 일본인 자객에게 명성황후가 시해된 곳이다.
장안당 뒷편에 있는 곽문각지, 지금은 그냥 공터이지만 이곳은 2층의 서양식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최고의 양관으로 불렀고, 국왕의 서재 겸 집무실인 집옥재와 대조를 이뤘다. 집옥재와 관문각 사이에는 서양식 기계추 시계탑 세워졌다. 서양식 건물이라면 덕수궁 석조전이 떠오르는데, 관문각도 비슷했을까?
정시합의 동편과 북편으로 가퇴라고 하는 구조를 설치했는데, 마치 쪽마루처럼 기둥 밖 공간에 작은 초석을 두고 그 위로 기동과 마루, 창호 천장을 구성한 별도의 공간이라고 한다.
부속건물인 복수당은 곤녕합의 북행각 뒤편에 굉장히 안쪽으로 위치하고 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폭도들은 건청궁 동쪽 언덕 녹산 자락에서 태우고 남은 뼈를 그 자리에 묻었다고 한다. 이후 왕실에서 이를 거두어 경운궁(덕수궁)에 시신을 안치하고 국장을 지냈다.
자선당은 왕세자 및 세자비의 거처다. 1916년 오쿠다 기하치로는 자선당을 동경에 있는 자신의 자택으로 옮겨 조선관이라는 사설미술관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관동대지진으로 건물은 모두 소실되고, 기단과 주춧돌만 남아 있다가 다시 국내로 돌아왔지만 구조 안전상의 문제로 재사용되지 못하고 녹산에 있다.
현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조대비는 고종의 즉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에 보답하고자 흥선대원군은 조대비를 위한 거처를 궁 안에서 가장 화려하고 섬세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자경전에는 많은 온돌방이 있는데, 각 방들과 연결된 연기 길을 모아 하나의 굴뚝을 만들었다. 굴뚝 정면에는 가운데에 해, 산, 물, 돌, 구름, 학, 소나무, 사슴, 거북, 불로초의 십장생 무늬를 넣었고, 그 위와 아래에 학과 나티(짐승 모양의 한 일종의 귀신) 및 불가사리를 배치해 불로장생 등 길상의 기능과 악귀를 막는 벽사의 역할도 갖추도록 했다고 한다. 실용성에 조형미까지 조선시대 궁궐 굴뚝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자경전 서편 담장에는 여러 꽃나무들과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문자들을 새겨 넣어, 나이든 대비전 주인의 장수를 기원했다고 한다.
소주방 우물은 내소주방과 외소주방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주방에서 필요한 생활용수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한다. 현재 경복궁 안에는 소주방 우물을 포함해 총 7개의 우물이 있다. 우물 앞 건물은 외소주방으로 궁궐 연회음식 등 각종 잔칫상을 준비하던 곳이다. 정월, 단오, 추석, 동지 등 명절음식을 비롯해 왕과 왕비의 탄생일, 왕족의 관례나 가례와 같은 잔치음식을 준비했다고 한다.
내소주방은 왕과 왕비에게 이른 아침에 올리는 아침 수라와 점심, 저녁 수라 등의 궁궐의 일상식을 만드는 곳이다. 내소주방에서 만드는 수라는 붉게 칠한 큰 둥근상(대원반)과 작은 둥근상(소원반) 그리고 네모진 책상반으로 세 개의 상에 차려진다.
소주방은 2011년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해 2015년에 복원을 완료해서 그런지, 단청이 선명하고 깨끗하다. 예전에 소주방에서 궁중음식 시연 및 체험행사를 했다고 하던데,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소주방 문이 다시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
이극문에서 바라본 동궁전의 모습인데, 동궁보다는 근정전이 더 잘 보인다. 왕세자는 동궁에서 근정전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처럼 어진 임금이 되고자 다짐했길 바래본다.
비현각은 세자가 공부를 하며, 정무도 보던 집무공간이다. 왕이 될 인물이지만, 아직은 왕이 아니므로 건녕전에 비해 전각 규모가 작다. 건녕전은 정면에서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비현각도 자선당도 굳이 옆으로 갈 필요가 없다.
자선당은 세자와 세자빈이 거처하는 내전이다. 세종대왕은 아들 문종을 위해 경복궁 동쪽에 자선당을 건립했으며, 동쪽에 있다고 해 동궁이라 불리고, 세자는 동궁마마라고 불렀다고 한다. 문종의 아들인 단종은 자선당에서 태어났다. 건청궁 옆 녹산에 있는 주춧돌과 기단은 여기 있어야 하는데, 왜 그걸 일본까지 갖고 갔는지 참 나쁘다(실제는 쌍욕중). 동궁 남쪽의 춘방 터에는 세자 교육을 담당하는 시강원이, 계방 터에는 경호와 의전을 담당하던 관청이 있다는데, 현재 복원공사 중인지 가림막이 되어 있다.
동궁을 지나 다시 근정전으로 나왔다. 오전과 달리 관람객이 많아진 거 같지만, 예전에 비하면 여전히 고요한 경복궁이다. 아무래도 도심이라서 찾는 이가 더 없는 듯 싶지만,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북적북적한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거라 믿는다.
그때는 경회루 특별관람을 재시작으로, 집옥재는 궁궐 속 작은 도서관으로, 굳게 닫혀진 소주방과 장고의 문도 활짝 열리길 바래본다. #봄날은오고_코로나는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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