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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서울284 호텔사회

구 서울역은 공간이 주는 특별함이 있는 곳이다. 오래된 건물은 맞는데, 그 오래됨이 주는 멋짐이라는게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기차여행은 당분간 주춤 모드, 대신 호텔로 바뀐 문화역서울284로 향했다. 호텔사회는 호텔인 거 같은데, 숙식이나 숙박은 안된다. 왜냐하면 전시관이니깐.

 

레트로 열풍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지만, 구 서울역은 존재만으로도 레트로 덩어리다. 지금은 전시관으로 운영 중인데, 이번에는 맞춤옷을 입은 듯 이질감이 일절 없다. 건물이 주는 분위기에 걸맞게 우리나라 초창기 호텔의 다양한 모습들이 전시되어 있다.  

 

건물 자체만으로도 멋져

개항과 함께 물류가 밀려들어오던 시절, 많은 외국인들에게는 체류 기간 동안 지낼 숙박 시설이 필요했다. 이런 욕구가 모여 호텔 문화의 시초를 열어가기 시작했다. 대불호텔, 스테이션호텔, 손탁호텔, 조선철도호텔, 반도호텔 등을 거치며 오늘날의 수많은 호텔들로 이어져오고 있다. 

 

호텔사회는 로비, 라운지, 객실, 수영장 등 호텔 속의 상징적 공간에 기능적 속성을 교차시키며 여행, 여가, 유흥, 식문화 등 서구의 새로운 문화의 도입과 확산 과정을 볼 수 있다. 관람일이 3월 1일까지인데 정보를 너무 늦게 알았다. 진작에 왔더라면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연계 프로그램도 해볼 수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관람만 가능하단다. 많이 아쉽지만 방법이 없다.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빨간 커튼과 계단을 지나면 익스프레스 284 라운지가 나온다. 근대의 고급 호텔 로비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계단 후면으로, 라운지의 콘셉트에 맞추어 사람들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라운지답게 커피에 타르트, 마카롱, 양갱 등을 먹을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저 운영하지 않은 라운지만 있다.

 

오아시스: 풀, 바, 스파

3등 대합실 공간은 풀(poo), 바(Bar), 스파(Spa)로 변했다. 1960년대 최초로 호텔에 실내수영장이 생겨난 이래, 호텔 야외 수영장 및 호텔 온천 사우나는 1970~80년대 타워호텔과 워커힐 호텔, 메트로 호텔 등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을 위한 유흥과 가족을 위한 여가 장소로 기능했다고 한다. 바에서 오렌지주스에 칵테일을 마시고, 스파대신 족욕탕을 할 수 있었다는데 역시나 관람만 가능하다. 

 

콜로니얼 가든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서측복도를 지나가야 한다. 구서울역사 가장 바깥에서 건물 외벽과 맞닿아 길에 늘어진 통로 공간은 호텔 정원의 모티프를 재해석한 콜로니언 가든이 됐다. 호텔의 정원은 오너 가문의 값비싼 수집품을 과시하는 진열장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한다. 다른 곳과 달리 뭔가 불편했던 이유가 혹시?? 특별한 공간답게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무지 많았고, 그들을 피해가면서 사진을 담느라 살짝 힘들었다는 건 안비밀.

 

오호~ 샹들리에
여행 관광 안내소
나도 저분들처럼 세계일주 여행기를 쓸 수 있는데...
스탬프 찍기 놀이

여행, 관광안내소인 1, 2등 대합실은 기차의 1, 2등석을 이용하는 승객이 대기하던 장소로,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구분되었다고 한다. 증기기관을 이용한 기차와 증기선은 근대의 상징이자 세계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교통수단이었다.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인들은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게 되었고, 여행은 호텔이라는 숙박문화를 형성했다. KTX가 도라산역을 지나 북으로 북으로 가게 된다면, 경성역이던 그때 그시절처럼 기차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

 

2층에 있는 복원전시실은 구 서울역사 복원의 전 과정과 주요 복원 공정이 전시되어 있다. 준공 당시 각각 이발소와 화장실로 사용되던 공간이라고 한다. 전시는 바뀌더라도, 복원전시실만은 그대로다.

 

그릴홀

우리나라 최초 양식당이었던 구 서울역사의 대식당 그릴(Grill)에서부터 소식당 공간으로 이어지는 장소적 특징 속에서 호텔 식당과 공연장 모습을 오버랩하여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한다. 1960~70년대 워커힐 쇼로 대표되는 디너쇼의 무대와 소품이라고 하는데, 인형극 무대처럼 보이는건 나뿐인가?

 

사물의 정원

대식당 그릴을 위한 음식 준비실이었던 공간에 실제 1960~70년대 많이 사용했던 화분, 냅킨과 나이프 등 식사를 위한 도구들을 사용해 사물의 정원을 만들었다. 화분이라는 임시적인 터전에서 자라나는 여러 집기들과 정리된 사물들의 모습은, 호텔에 숙박하는 여행객들을 맞이하는 작은 배려와 정서적 위로의 태도를 표현한다.

 

1970년대 앰배서더 호텔의 킹스 뷔페를 시작으로 국내 주요 호텔들에 퍼져나갔으며, 오늘날 호텔의 식사문화를 대변하는 대중적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연산 송이는 비싸다.

 

공연문화 아카이브
1963년 4월 8일부터 14일간 워커힐 호텔에서 로이암스트롱 공연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식당인 워커힐 퍼시픽 나이트클럽에서부터 오늘의 워커힐 씨어터에 이르기까지의 워커힐 쇼의 사료들을 통해 호텔의 공연문화를 엿볼 수 있다. 워커힐 호텔은 건립 당시 우리나라 최초 리조트 호텔로서 주한미군을 위한 다양한 문화시설과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호텔에 객실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 객실은 구 서울역사의 사무동 공간을 활용했다. 201호부터 205호까지 5개의 객실이 있는데, 그중 201호가 가장 압권이다. 낮잠용 대객실이라고 해서 설마 했는데, 정말 잠을 잘 수 있게 꾸며놓았다. 객실 앞에 엄청 많은 매트리스부터 안에 들어가면 잠자기 딱 좋은 조명부터 폭신한 매트가 잔뜩 놓여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객실의 기능을 꽁꽁 묶어버렸다. 그전에는 정말 잠을 잘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관람만 가능하다. 오른쪽 사진은 202호실로 호텔 공간 속 다양한 문을 촬영한 영상을 볼 수 있다.

 

203호실: 서울호텔

호텔은 은밀하고 비밀스런 공간인데, 이런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정치인. 서울호텔은 1960년대 정권 수뇌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제 몇 공화국과 같은 정치 드라마를 보면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호텔이 나오던데, 굵직굵직한 사건의 시작은 거의 다 호텔에서 이루어진 거 같다.

 

204호실: 객실 NO.204는 침대와 조명, 가구가 설치된 전시장으로 가장 호텔의 객실다웠다. 205호실: 호텔, 루시드 드림은 호텔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수많은 차원의 시간여행자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여행객들은 각자의 시간대에 기억과 흔적을 남기고, 호텔은 마치 우리가 루시드 드림(자각몽)처럼 깨어 이는 정신상태에서 꿈을 꾼다는 것을 알려주는 특별한 공간이라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저 보이는 건, 작은 공간에 엄청 많은 캐리어가 있고, 모니터마다 다른 영상(주로 영화)이 나오고 있을 뿐이다.

 

서울로7017에서 바라본 문화역서울284

전시는 기본 기본,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퍼포먼스 및 연극, 마술, 음악회 등 다양한 공연이 있었다는데, 죄다 취소가 됐다. 1월에 왔더라면, 제대로 즐겼을텐데 겁나 아쉽다. 3월 1일로 호텔사회 전시는 끝이 나지만, 완전한 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호텔 문을 다시 열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그때나 지금이나 호텔은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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