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 아미미술관
폐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해야 할까나. 학교는 미술관으로 운동장은 야외 전시장이 됐다. 건물 안은 인스타 갬성이 풀풀~ 건물 밖은 자연이 그린 그림으로 온통 푸르르다. 숲 속의 작은 미술관, 충남 당진에 있는 아미미술관이다.
미술관 이름은 아미이지만, BTS와의 연관성은 없는 듯 싶다. 혹시 주인장이 아미인가? 진실을 알 수 없으니 넘어가자. 전국 곳곳은 아니더라도, 나름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충청도는 인연이 없다. 대전은 자주 갔지만, 충북은 아직이고, 충남은 공주와 천안 그리고 홍성 정도 가봤다.
기회가 없었지만, 관심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관심을 가져볼까 한다. 그래서 한 곳도 아니고 2곳을 연달아 갔다. 예산 찍고, 당진까지 그 중 첫번째가 아미미술관이다.
작년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코로나땜에 취소가 됐다. 존재를 잊고 있다가, 당진에 갈 일이 생기니 불현듯 생각이 났다. 미술관이라고 하면 도심에 있는 미술관만 가봤지, 이렇게 숲 속에 있는 미술관은 처음이다. 건물은 덩굴식물이 잡아 먹은 듯, 푸르름이 넘실댄다.
아미미술관은 당진시 순성면에 자리잡은 폐교된 농촌학교를 작가 박기호와 설치미술과 구현숙이 가꾸어 온 곳이라고 한다. 폐교에서 미술관이라니, 생각해보니 평택에 있는 웃다리문화촌도 폐교다. 예능에서 여름시즌 공포물에서나 나올 법한 폐교가 미술관이라니, 너의 정체가 무지 궁금하다.
공포물은 아니지만, 내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덩굴식물이 건물을 집어 삼켰다. 그 아래에는 작은 수국이 처음 온 방문객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제주는 수국이 만발했다는데, 당진은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린다.
지금은 초록빛 물결인데, 다른 계절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고 있을테니. 적어도 4번은 와야겠다. 참,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고, 휴관일은 명절 당일을 제외하고는 연중 무휴다. 관람료는 성인은 6,000원 고등은 4,000원이다.
푸르름을 따라서 운동장으로 가는 중이다. 원래는 건물에서 운동장으로 연결된 계단이 있지만, 코시국이라 막아놨다. 그래서 운동장에 가려면, 건물 초입에서 들어가거나, 뒤에 있는 오솔길를 통해서 가야 한다.
구 운동장, 현 야외전시장이자 행사장이다. 코시국이라 야외전시나 행사는 없다. 그래서 넓디넓은 운동장을 어떠한 장애물 없이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이런게 바로 안구정화가 아닐까 싶다.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싶지만, 날도 습하고 잔디가 아파할까봐 그저 바라만 봤다.
지베르니는 운동장 끝에 위치한 카페다. 따끈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친구와 함께 자연을 더 만끽했을텐데, 작품을 봐야 하기에 내부 모습만 담고 다시 나왔다.
운동장과 카페를 보고, 왔던 길을 되돌아서 미술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폐교를 도시재생한 미술관인데, 설치작품때문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으스스하다. 그에 반해 창문 밖 풍경은 싱그럽다.
여기서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눠 느낌이 전혀 다른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오른쪽으로 갈까? 왼쪽으로 갈까? 우선 왼쪽으로 가자.
추상의 경계라는 작품이 전시 중이다. 추상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피카소 뿐이지만, 그의 작품은 아니고 김서울, 박승순, 변선영, 야나리, 정지연, 최경아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3개의 교실에 각기 개성이 강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가 누구이고, 작품명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에는 디테일보다는 거리를 두고 서서 바라봤다. 각 작품이 주는 느낌보다는 공간이 주는 느낌이랄까? 어울림에 더 집중을 했다.
공간이 주는 감동이랄까? 미술관에 왔으니 작품을 봐야하는데, 시선은 창문에 쏠렸다. 자연이 그린 그림은 추상이 아니라 실제인데, 신기하게도 작품보다 창문 밖 풍경이 더 추상처럼 느껴진다.
꽤 많은 작품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베스트를 꼽자면 역시나 자연이 그린 그림이다. 이렇게 멋지고 추상적이며 황홀한 창문 밖 풍경은 그 어떤 작품도 따라할 수 없을 거다. 초록은 다 같은 초록인데,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어쩜 색 표현을 이리도 잘했는지, 따라하고 싶어도 넘을 수 없음을 알기에 그저 조용히 바라만 본다.
아미미술관에서 인스타 갬성 사진 및 인생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하던데, 사람없는 풍경만 잔뜩 담았다. 인물이 없는 인생사진도 있는 법이니깐.
오른쪽 공간은 박기호 작가의 나의 정원... 모두의 정원이다.
아까와는 다른 느낌의 공간이다. 추상의 이어짐이라고 할까나, 아니면 비현실의 세계라고 해야 할까나. 암튼 묘한 공간이다.
분홍 나무를 따라 이어진 첫번째 교실은 휑함 속 꽉참이랄까? 딱히 이거라고 딱 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이상하면서도 아름다고, 민망하면서도 멋지다.
자연이 있고, 공간이 있어야 가능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도심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작품이다. 아까도 느꼈지만, 아미미술관의 숨은 주인공은 흰 격자나무창과 창문 밖 풍경이다.
분홍 교실을 지나니, 파랑 교실이 나타났다. 컬러만 달라졌을뿐, 아까와 별반 차이가 없는데 뭐랄까? 여기는 살짝 무섭다. 아니다. 사실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알 수 없는 무서움이 있었다. 폐교가 주는 이미지가 있기도 하지만, 신당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자꾸만 든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힌다.)
인스타 갬성 사진을 남기는 포토존인 듯 하나, 난 무서웠다. 에어컨이 강했는지 몰라도, 계속 으스스했고, 여기 다녀온 후 며칠동안 악몽을 꾸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사진 포토존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귀신없는 귀신의 집이다. 또 꿈에 나올까봐 무섭다.
미술관 건물 뒤편으로 나왔다. 습한 날씨는 싫지만, 날씨를 이기는 여름꽃 수국이 있어서다.
수국 시즌은 끝났구나 했는데, 당진은 다른 곳에 비해 개화시기가 늦나보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좋아하는 수국을 만나니 아까의 무서움은 싹 사라지고 지금은 그저 좋을 뿐이다.
아미미술관을 다시 또 오게 된다면 그때도 여름이면 좋겠다. 좋아하는 수국을 원없이 볼 수 있으니깐. 다음에는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아트삽에서 기념품도 구입하고, 이번에 놓친 한옥 전시관에 수국정원까지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그때는 무섭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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