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 현 인천개항박물관
작년(12월)에 인천개항누리길부터 차이나타운까지 인천 나들이를 했다. 동네 한바퀴를 하다보니, 건물 외관만 보고 박물관으로 변한 내부는 놓쳤다. 또 와야지 다짐했는데, 해가 바뀌고 미세먼지가 자욱한 2월의 어느날 다시 찾았다. 인천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 대불호텔 전시관 & 중구생활사전시관, 한중문화관, 짜장면박물관 중 인천개항박물관이다.
인천개항박물관 건물은 구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으로 1883년 인천 개항 후 일본제1은행 부산지점의 인천출장소로 개설된 근대적 금융기관이다. 1899년에 신축된 지상 1층 건물로 석재 기단부와 수평 줄눈의 안정되고 견고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현관 상부는 아치구조이며, 지붕에는 중앙돔과 작은 천창을 설치했다. 처마부분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린 석조 난간을 올렸다.
5곳의 박물관과 전시관은 모두 입장료가 있다. 1~2곳만 간다면 각각 결제를 해야 하지만, 모두 다 간다면 통합권이 낫다. 통합권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구입이 가능하다. 통합권이라고 따로 입장권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영수증 종이다. 영수증을 보여줘야 입장이 가능하므로, 박물관 투어를 마칠때까지 버리면 안된다.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은 개항기 조선에서 생산된 금과 사금의 매입업무를 주로 대행했으며, 인천항을 왕래하는 무역 상인들을 대상으로 해관세를 받는 업무도 병행했다. 1897년 제1은행의 출장소에서 지점으로 승격되면서 2층의 목조 건물은 현재의 석조 건물로 개축됐다. 은행으로 사용할 당시의 창문과 금고, 그리고 기둥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은 제1전시실로 1883년 인천 개항이후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근대문물이 전시되어 있다.
1904년 11월 취역한 대한제국 군함 광제호에 게양했던 대형 태극기로, 신순성 함장이 경술구치 전날 광제호에서 수습해 신함장의 후손에게 전해진 유물이다. 광제호 모형은 인천세관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우편 제도는 1884년 11월 18일, 서울과 인천 간에 우편물이 교환되기 시작하면서 그 막이 올랐다. 고종은 우편 창설에 관한 칙령을 발표해, 우정총국을 세우고 홍영식을 우정총판에 임명했다. 인천은 서울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우편물을 접수하고 배달한 도시다.
한성과 인천의 우체사 체전부(집배원)는 매일 오전 9시에 각각의 우체서에서 우체낭을 짋어지고 동시에 출발했다. 40리를 걸어 중간 지점인 지금의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서 만나 서로 우편물을 교환했다고 한다.
다음의 물품은 우편으로 부치지 못했다. 우체사무 인원을 위태하게 할 만한 물품, 우체물을 더럽히고 손상할 만한 물품. 폭발하기 쉬운 물품, 불타기 쉬운 물품. 움직이는 물건, 짐승류, 버러지류. 흘러 움직이는 물품, 유리, 물들이기 쉬운 물품.
우리나라에 철도를 처음 소개한 이는 1877년 수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김기수였고, 김홍집도 1880년 그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직접 철도를 소개한 사람은 1889년 미국 주재 대리공사로 근무하다 귀국한 이하영이다. 그는 사람과 화물을 대량으로 실어 나르는 철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주적인 개화를 꿈꾸던 황제와 대신들이 이하영의 설명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철도 도입에 대한 본격적 논의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10년 후 1899년 9월 18일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이 개통됐다.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 같아서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에서 연기는 반공에 솟아올랐다. (중략) 수레 속에 앉아 영칭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해 도는 듯하고, 나르는 새도 따르지 못하였다. 대한 이수로 80리 되는 인천을 순식간에 당도하였는데 그곳 정거장에 배포한 범절은 형형색색 황홀 찬란하여 진실로 대한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였다." (1899년 9월 19일자 독립신문)
개항 이후 당시 일본 제1은행 앞 거리는 은행, 호텔, 상점 등이 밀집해 있는 일본조계의 중심지였다. 모형은 1910년대 촬영된 사진을 토대로 개항기~일제강점 초기의 박물관 앞 거리풍경을 재현한 것이다.
폭탄에도 끄떡없을 것만 같은 돌문을 지나면 제4전시실이 나타난다. 입구에서부터 다름이 느껴진다 했더니, 이곳은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에서 금고로 사용됐던 곳이다. 돌문에 이어 검은 철제문까지 딱봐도 금고처럼 보인다.
4전시실은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과 관련된 자료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자료보다는 건물에 더 집중을 하게 된다. 그당시 은행은 조선인의 수탈을 위해 설립되었을 거다. 얼마나 많은 재물을 약탈해 여기에 보관을 했을까? 더구나 여기뿐만 아니라, 제18은행 인천지점, 제58은행 인천지점까지 모든 은행이 한 길가에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개항 이후 은행거리를 '혼마치도리'라고 불렀다.
인천제1은행 인천지점은 조선에서 만들어낸 금괴와 사금을 싸게 살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수입이 충분하지 않았고, 결국 해관(관세) 업무까지 담당하게 된다. 이후 제1은행의 업무와 수입이 점차 증가하면서 정치자금과 거래, 해관세의 취급, 한일 양국의 국고 취급에 대한 특허를 받은 중앙 금융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인천 개항의 역사를 확인했으니, 그당시 건물을 만날 차례다. 그때는 일본제18은행 인천지점, 지금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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