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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세관역사공원 인천세관역사관

건물 자체만으로도 보존 가치가 있는데, 여기에 스토리를 담았다. 계속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면 창고 건물로 기억될테지만, 여기에 역사를 담으니 더이상 창고가 아니다. 인천세관 옛 창고 건물은 이제 주변 공원과 함께 전시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인천세관역사공원에 있는 인천세관역사관이다.

 

미세먼지 가득했던 어느날~

인천세관역사관에 가려면,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수인선 신포역에서 내리면 된다. 2번 출구로 나왔는데, 출입구가 겁나 독특하다. 마치 여기에 무엇이 있었는지 말해주는 듯하다. 인천세관역사관은 1911년에 건립된 인천세관 옛 창고 건물로, 원래는 여기에 있었다고 한다. 수인선 복선전철공사로 철거 위기에 놓일뻔 했지만, 남쪽으로 40m 이전과 함께 보존을 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왜 창고 건물만 있을까?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인천세관 건물은 한국전쟁때 불에 타버렸다.

 

공원안내도

왼쪽은 선거계, 오른쪽은 화물계 사무실이다. 세관창고가 1911년이라면, 여기는 1918년경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위치에 그대로 서 있다. 선거계는 만사드 지붕 형식, 화물계는 인조석으로 정면에 모양을 냈다. 

 

인천세관역사관
등록문화재 569호로 지정

세관창고는 전면 입구를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 건물의 처마와 창 테두리 장식 등은 15~16세기에 발달한 르네상스 양식이다. 창고 측면 좌우 벽면 끝은 기둥 상부에 사각형 석판을 올리고, 그 위에 동근 형태의 장식을 했다. 

 

특이하게도 출입구가 안쪽에 있다~

인천세관 역사관 관람시간은 평일 10시부터 17시까지, 입장료는 무료다. 인천본부세관은 1883년 제물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관세행정업무를 시작했다. 개항 당시 관세행정뿐 아니라 우편, 검역, 기상관측, 항로표지, 항만시설 건립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관람순서는 들어가서 우회전~

인천항은 언덕을 내려오면 바로 개펄과 만나 바다로 이어지는 지형이어서 창고 등을 짓기 위한 땅을 찾기 어려웠다. 때문에 쇄국시대 바다를 지키던 포대를 헐고 언덕을 깎아 얻은 돌과 흙으로 해안과 개펄을 매립했다. 매립지는 구조적으로 지반이 무르기에 건물을 올리기 위해서는 기초를 견고하게 만들어야 했다. 2012년 세관창고 해체 이전 시 지반을 다지기 위해 박아 넣은 말뚝이 다수 발견되어, 기초 공사가 튼튼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조선은 일찍이 관리들을 보내 일본의 세관제도를 연구했지만, 청나라의 관세행정조직인 해관을 모델로 조선해관을 창설했다. 독일 출신 묄렌도르프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협판겸 총세무사(지금의 관세청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해관원, 엔지니어, 경찰 등 필요한 인원 20여명을 선발해 데려왔고, 이중 영국 출신 스트리플링이 인천해관 초대 세무사로 임명됐다.

 

약장합편: 조선이 각국과 체결한 조약을 모아 발간한 책자
조선국해관세목: 조선에서 수출입되는 물품에 대해 부과하는 물품별 세율이 그룹별로 정리되어 있다!
수호조규: 1876년 강화도에서 일본과 체결한 조약문
위를 보면 건물의 나이가 느껴져~
공간은 넓지 않으나 볼거리는 가득!
제일국립은행 조선인천항출장소 발행 어음 1885년
해관순시선 광제

1887년 5월부터 해관 자체적으로 우편사업을 운영했다. 토지 측량, 용지조성, 개펄매립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1904년에는 밀무역 단속 등을 위해 철강선 광제를 도입하고 전국에 등대 건설을 시작했다. 이러한 인천해관의 노력에 의해 인천항은 국제무역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게 된다.

 

인천해관세무사 발행 영수증 / 등기우편 실체 / 병가신청서 및 진단서
인천해관 공문서
인천해관세무사 관인 1883년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일제가 해관을 장악했고, 해관은 일본식 명칭이 세관으로 바뀌게 된다. 1908년 총세무사는 철폐되고 대신 관세국을 설치해 탁지부 소속 하에 두고, 관세총장이 세관사무를 감독하게 된다.

 

인천세관 청사
세관청사 설계도 1911년 10월

인천항의 교역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사무 공간이 부족해지자 인천세관은 매립지에 서양식 2층 목조청사를 준공한다. 이후 1918년에 인천항 갑문식 토크가 준공되자 세관업무를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1924년 도크 주변으로 이전하는 한편, 창고 등 시설을 신축했다. 창고 건물은 한국전쟁 이후 한동안 미군의 스낵바로 사용되기도 했다.

 

세관용지 표시석과 철강제 금고
인천항 3D 지도 1934년
휴전직후 전 세관직원에서 배포된 세관직원 수첩 1953년
인천세관 청인 / 인천세관 세관화물취급인 배지 1960년대

해방 후 인천세관은 미 군정청 교통국 해관과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가,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면서 재무부 소속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한국전쟁으로 세관 시설들이 파괴되기도 했지만, 1952년에 업무를 재개하고 전후 재건사업을 위한 관세행정을 펼쳐나갔다.

 

1959년 8월 30일 신축된 인천세관 청사의 1층 내부에 있던 정초석으로 지금은 사라진 건물의 이력을 말해주고 있다. 당시 이 건물은 착공 후 약 1년 만에 준공되었는데 예산 56,000,000환이 투입되었고, 건축은 중앙산업(이후 중앙건설)이, 설계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였던 고 김희춘씨가 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천항은 매립으로 육지 면적을 꾸준히 넓혀온 지역이다. 이 돌들은 1905년 인천항 매립과 호안석축 공사 시 실제 사용했던 것들의 일부라고 한다. 구 세관창고의 이전을 위해 창고 벽체를 잘라냈을때 그 하부에서 발견되었다. 1980년 인천세관은 인천본부세관으로 직제를 변경하면서, 현재는 인천, 김포공항, 인천공항국제우편, 수원, 안산세관 등 5개 세관을 권약하에 두고 있다. 

 

서울본부세관에는 관세박물관, 부산경남본부세관에는 부산세관박물관, 군산세관에는 호남관세박물관 그리고 인천본부세관에는 인천세관역사관이 있다. 서울과 부산은 현대식 건물에 박물관이 있고, 군산과 인천은 옛군산세관과 옛인천세관 창고에 박물관이 있다. 세관박물관이니 비슷하다 볼 수 있는데,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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