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구 일본제18은행 인천지점
인천 개항누리길에는 제1, 제18 그리고 제58 건물이 있다. 그때는 모두 다 은행이었지만, 지금은 인천개항장박물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그리고 중구요식업조합 건물이다. 여전히 현존하는 혹은 사라진 근대건축물을 만나러 일본제18은행이 아니라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에 왔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 건물 외관은 시멘트와 모래를 사용해 석재를 쌓아 마감했다. 건물의 지붕을 받치기 위해 목재를 활용했으며, 전형적인 일본식 모임지붕의 형태를 띠고 있다. 다 같은 은행인데 1, 18, 58은행 건물 모습은 제각각이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은 개항 이후 각국 조계지에 건축된 서구 근대건축물과 관련된 자료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현존하는 근대 건축물과 소실되어 이제는 볼 수 없는 근대건축물의 모형 및 건축 관련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개항초기 인천항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소수의 상인만 부산에 거처를 정하고 들락거리는 한적한 어촌이었다. 하지만 개항이후 일본인을 비롯해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상인의 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인천항은 국제적인 무역시장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강화도조약은 1876년 2월 일본의 무력 시위 아래 강압적으로 체결된 불평등조약이다. 그리고 강화도조약 후 대일 미곡수출에 따른 쌀값상승과 과중한 세금부담에 대한 불만으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일본은 조선에 임오군란에 책임을 물어 사후처리에 대한 협상을 요구해 제물포조약(1882년)을 체결한다. (학교 다닐때 무조건 외워야 했던 부분)
사진과 자료 등 볼거리가 많지만,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근대 건축물은 종종 봤지만, 벽돌로 되어 있는 내부는 겁나 독특하다.
일본이 중국을 상대로 한 면직물 중개 무역이 번창하자, 수출입과 통관 업무의 중심지였던 인천에 지점을 개설했다. 일본제18은행 인천지점은 근대에 건립된 은행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간이벽이 있어, 내부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 벽돌 공간을 지나야 메인 무대가 나타난다. 2층은 출입금지다. 큰 건물들을 어떻게 전시했을까 궁금했는데, 건물은 전부 모형이다.
답동성당은 현존하는 건물로, 신포국제시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종교는 다르지만 성당은 좋아한다. 고로 인천에 또 가야할 이유가 생겼다.
1908년에 축초된 홍예문은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둥글게 만든 문이다. 응봉산 일부를 뚫어 인천 중앙동과 관동에서 만석동으로 빠르게 갈 수 있도록 터널처럼 만들었다. 홍예문은 공사 중 거대한 암벽으로 인해 공사기간이 상당히 지연되면서 혈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현존하는 건물이다. 구)인천부청사는 인천시 중구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인천우체국은 우체국으로, 제물포 구락부는 유적지가 됐다. 홍예문과 인천우체국 그리고 제물포구락부는 현존하는 건물이니 모형으로 만족할 수 없다. 곧 만나로 가야겠다.
모형뿐만 아니라 영상으로 현존 혹은 사라진 근대건축을 만날 수 있다.
조선땅에 있는 은행이지만,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을 보호하기 위한 은행이었다. 조선인들에게 받은 담보와 많은 이자는 대부분 일본인의 손에 들어갔고, 조선인들의 삶은 더욱 더 피폐해졌다. 쌀값은 점점 폭락하고 조선인들은 먹고 살기 더 힘들어졌다. 그러나 일본인이 운영하는 은행들은 조선인들을 수탈해 쌀과 땅, 돈을 교모하게 빼앗으며 점점 배를 불려가고 있었다. 힘없는 조선정부는 알아도 이를 막을 수 없었다.
영국영사관은 지금의 파라다이스 호텔이 서 있는 언덕 위에 있던 초기의 소박한 건물을 붉은 벽돌의 단층 양옥으로 새롭게 지었다. 1915년 1차 세계대전 중에 잠시 폐쇄됐다가 1931년 인천부청에 인계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폐쇄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한국전쟁때 포화로 완전히 소실됐다.
세창양행사택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온 세 명의 상사원이 숙소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이탈리아식 2층 벽돌집으로 회를 칠한 하얀 외벽과 붉은 지붕이 돋보이고, 1층에는 아치형 기둥과 멋스러운 사각탑이 있다. 인천부립도서관에서 인천박물관으로 사용됐지만,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
존스턴 별장은 유럽풍의 4층짜리 석조 건물로, 인천해관의 해관장을 지냈던 영국인 제임스 존스턴의 여름별장이다. 1936년 인천부가 이 건물을 사들여 인천각이라는 이름의 호텔 겸 레스토랑을 운영했고, 광복 후에는 미군숙소로 사용됐다. 하지만 한국전쟁때 소실됐다.
인천에 이렇게나 많은 근대 건축이 있었는지 솔직히 몰랐다. 차이나타운은 잘 알면서, 개항누리길은 몰랐다니 많이 부끄럽다. 한양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였기에 지금의 인천공항처럼 그때도 여러나라에서 찾아왔을 거다. 조선이라는 곳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식민지로 삼고 싶었을테니깐.
쇄국정책이 아니라 문호를 일본보다 먼저 개방했더라면... 역사에는 만약이 없으니 혼자만의 상상으로 끝내야겠다. 개항역사는 여기까지, 호텔로 간다.
2022.02.15 - 그때는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 지금은 인천개항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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