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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문화진지 옛 대전차방호시설

벌써 반세기가 지났건만, 전쟁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솔직히 이런 곳이 있다고 생각조차 못했다. 서울의 북쪽 도봉산역 부근에는 6.25 전쟁의 아픔이 담긴 옛 대전차방호시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간재생사업을 통해 새롭게 조성된 문화창작 공간 평화문화진지가 있다. 

 

서울에 이런 곳이 놀라워라~

1950년 6.25 전쟁 시작 후, 북한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동두천, 포천, 의정부를 휩쓸고 서울을 점령했다. 1970년 남한은 북한군의 재침에 대비해 도봉구 마들로932 일대에 대전차방호시설을 지었다. 군사적 목적으로 조성된 이곳은 2층에서 4층부에 시민 아파트인 주거 공간이 건립되었다. 2004년 시민아파트는 노후화로 인해 안전진단 E등급을 받아 철거되었고, 1층은 군사시설로 계속 남아 있었다고 한다. 2016년 서울시와 도봉구청 그리고 60보병사단(관할 군부대)은 이곳을 리모델링하기로 협약을 했고, 대전차방호시설이 아니라 문화예술공간인 평화문화진지로 재탄생(2017년 10월 개관)했다. 이래서 정전이 아니라 종전협정을 했어야 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지 않았다면, 평양가는 KTX 공사가 한창이지 않을까 싶다. 

 

겉모습은 새로 지은 듯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그당시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다. 2층부터 4층은 시민아파트였으니, 지금 남아 있는 건 탱크 등 군사장비가 있던 곳일 듯. 흉물스럽고 을씨년스럽지만 없애지 않고 보존을 결정한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전쟁은 절대 다시는 일절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저 끝에 있는 전망대를 향해~

시민아파트가 있던 2층에 올라, 걸어서 전망대로 향하고 있다. 아파트인듯, 아파트 아닌, 방호시설이었다니 어딘가에 전차가 있을것만 느낌이 든다.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이곳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남과 북, 그 대립했던 시기의 이야기, 소설인데도 반민특위와 농지개혁 등 몰랐던 역사를 배우고 있다. 곧 6.25 전쟁 부분을 읽게 될텐데, 한장 한장 페이지를 넘기는게 너무 버겁다. 

 

독도보다 평양과 금강산이 더 가깝구나!
시민아파트는 사라지고, 그 높이만큼 전망대가

그때도 도봉산은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전쟁은 모든이들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다. 올해는 종전협정으로 전쟁이 끝났음을 선포했으면 좋겠다. 

 

전망대는 따뜻하거나 춥거나
평화문화진지 옆에는 서울창포원이 있다.

전망대는 유리창을 통해 보는 공간도 있고, 밖으로 나와서 보는 공간도 있다. 서울창포원은 지금보다는 꽃피는 봄에 다시 올 예정이므로, 이번은 맛보기만. 걸어올때도 꽤 길다고 생각했지만, 전망대에서 보니 탱크 한두대를 숨기기 위해 만든 공간은 절대 아니구나 싶다. 정말로 전쟁이 다시 일어날 거라 생각했던 것일까? 1970년이니 그 당시 정권은...

 

평화문화진지는 시민동, 창작동, 문화동, 예술동 그리고 평화동 등 4개의 동과 중앙에 평화광장과 전망대로 이루어져 있다. 아까는 2층 공간에서 전망대로 갔으니, 이제는 전망대를 내려와 방호시설이 아닌 문화를 만난다.

 

옛 대전차방호시설이라는 증거

시민아파트에 살았던 분들은 알고 있었을까? 아파트 아래 탱크가 있었다는 것을... 그런데 대전차방호시설이 있던 이곳은 조선시대때 여행하는 관리들의 공공숙박시설인 다락원이었다고 한다.

 

전차대신 문화가 자리잡다.
평화로 가는 기차?!

베를린 장벽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독일 베를린시로부터 기증받은 장벽으로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곳에 세웠다고 한다. 동서 베를린 사이에 40여km에 이르는 길고 두꺼운 콘크리트 담장을 쌓았고, 콘크리트 200만톤, 강철 70만톤이 들어가 높이 3.6m, 총길이 155km의 장벽이다. 베를린처럼 우리도 전쟁이 아닌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벗는 그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어떤 구조물이었을까?

평화광장 양 끝에는 비슷한 시멘트 구조물(?)이 있다. 나름 상상을 해본다. 저 안에 사람이 들어가, 총을 들고 수상한 사람을 잡기 위해 감시를 하던 초소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보관 중인 있는 전차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구조물이 아닐까? 

 

상설전시관으로 현재 도봉구 도봉동 7-4(평화문화진지의 옛 주소) 전시
왼쪽에 있는 문을 열면 다른 전시로 이어진다.
흩어진 말들의 창고

작품 옆으로 보이는 작은 창 또는 구멍은 벙커의 흔적으로 그당시 소총 저격공간이었다. 단순하게 전차를 보관하던 시설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났을때 활용하기 위한 기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그 위에 아파트를 지었다니, 정말로 전쟁이 일어났으면 아파트에 살면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더 이상의 상상은 하고 싶지 않다. 

 

6.25 전쟁이 끝나고 13년이 지난 1970년에 대전차방호시설을 왜 지었을까? 2년 후인 1972년에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는데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러나 그때와 달리 대전차방호시설이 평화문화진지가 됐듯, 2020년에는 남북관계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아주 소박한 개인적인 소망은, KTX 타고 평양역에 내려 옥류관으로 달려가 평양냉면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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