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천 송정제방 은행나무길
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는데, 가을은 은행나무다. 덕수궁 은행나무의 아쉬움을 채우고도 남을만큼 노란카펫이 깔린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이제는 정말 가을을 보내야겠다. 일요일에 하루종일 비가 내리더니, 이제는 완연한 겨울이 왔다. 마지막 가을, 중랑천 송정제방길을 걷다.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에 내려 버스를 탄다. 한정거장이니 걸어서 갈까 하다가, 지도를 보니 성동교를 지난다. 추운데 걸어서 가기 귀찮아 버스를 탔는데, 걸어서 가도 될 뻔했다. 암튼 그렇게 송정제방길에 왔다. 왼쪽은 동부간선도로, 송정제방길은 찻길 옆으로 길게 뻗어있다.
은행나무는 여전히 숱(?)이 많다. 그래서일까, 노란 은행카펫은 아직이다. 또 너무 일찍 온 걸까? 허탈했지만 왔으니 걷기로 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벽이 나타났다. 장안철교다. 뚫고 갈 수 없으니, 돌아서 가야한다.
장안철교를 지나니 길가 양옆으로 은행나무 쫙 펼쳐져있다. 열매가 열렸을때는 걷기 힘들었을 거 같은데, 지금은 그윽한 가을냄새뿐이다. 자동차 소리는 요란했지만, 햇살까지 좋으니 좀 걸어봐야겠다. 그나저나 자전거는 내려서 끌고 가라는 안내문이 있지만, 끌고 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어느 쪽에서 바라봐도 멋지다. 왜 걷고 싶은 길이라 했는지 알 거 같다. 그런데 노란 카펫은 아직인가? 아니면 청소를 하는 걸까? 은행나무를 보아하니 비라도 내려야 떨어질 거 같다. 지난 일요일에 비가 내렸으니, 지금은 맨땅이 보이지 않을만큼 노란카펫이 깔렸을 것이다. 이번주에 갔으면 더 좋았을테지만, 지난주에도 충분히 좋았다. 왜냐하면 진짜 멋진 은행나무길을 만났으니깐.
제방길 오른편으로 작고 좁은 길이 하나 있는데, 여기가 바로 그토록 찾고자 했던 은행나무길이다. 맨땅이 보이지 않을만큼 소복하게 노란 은행잎이 깔려있다. 5미터 아니 10미터 아니 100미터쯤 될까나? 떠나는 가을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자연은 정말 위대하고 위대하도다.
왔던 길, 다시 보는 중이다. 그저 앞만 보고 걸었더라면 옆으로 이런 길이 있는지 몰랐을 거다. 진짜 은행나무길이 여기 있는데, 제방길을 걸으며 떨어진 은행잎을 다 어디로 갔지 하면서 투덜거렸을거다.
어느새 길의 끝에 왔다. 일부러 천천히 느리게 걸었는데도 벌써 끝이라니 아쉽다. 그런데 올라갈때와 내려올때 조심해야 한다. 생각보다 길이 많이 미끄럽기 때문이다.
어디나 다 그러겠지만, 특히 송정제방 은행나무길을 사진보다는 실제로 보는게 훨~~~씬 더 멋지다. 길게 뻗어 있는 좁은 길에 소복하게 쌓인 노란 은행잎, 바스락 소리를 벗 삼아 걸어봐야 이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오르막이 있기에 길이 끝나는 건가 했다. 하지만, 다시 내리막이 나왔고, 두번째 은행나무길에 들어섰다.
제방길을 걸을때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바로 옆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없다. 아무도 없으니, 나를 위해 존재하는 길인 거 같다. 잘 모르는 동네라 낯설었는데, 앞으로 가을의 마직막은 송정제방길에서 보낼 듯 싶다.
봄바람이 불면 벚꽃잎이 흩날리더니, 가을바람이 부니 후드득 은행잎이 떨어진다. 마치 눈이라도 내리는 거처럼, 나무가지에서 아래로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
또다시 나타난 오르막, 세번째 은행나무 길이 있을까 싶어 이번에는 서둘러 올라왔다. 그래도 왔던 길을 돌아봐야 한다.
다시 송정제방길이다. 세번째 은행나무길은 없지만, 멋스러운 단풍이 있으니 걷는 맛이 난다.
군자교까지 1200m 남았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원래 계획은 3.2km 걷기였는데, 사람은 참 간사하다. 원하던 은행나무길을 보고 나니 귀찮다. 봄에는 벚꽃이 멋지다고 하니, 그때 군자교에서 시작해 성동교까지 걷는 걸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다.
그만 질척거리고 이제는 보내줘야겠다. 2019년 가을, 펭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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