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동철길 & 푸른수목원
가까운 곳이다 보니 자주 가게 되고, 갈때마다 대만족을 주니 아니 갈 수 없다. 봄날에 갔고, 장미가 필 즈음에 갔고, 여름은 더우니 건너 뛰고 늦은 가을에 다시 찾았다. 붐비지 않고 한적해서 좋고, 기찻길 옆 수목원은 여기뿐이라서 좋다. 항동철길과 푸른수목원이다.
지난 봄에 갔을때, 열차 운행을 재개한다는 현수막이 있었다. 예전에는 비료와 같은 화물기차가 다녔고, 최근에는 군용열차가 다녔다고 한다. 주로 새벽에 다녔다고 하던데, 주변 아파트 공사로 인해 철로 대신 육로를 이용했다고 3월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현수막을 못 본걸까? 아니면 없어진 걸까? 다시 검색을 해보니,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관련 기사가 없다. 결과가 나쁘다면, 이렇게 걸을 수 없을테니 좋은 쪽으로 잘 처리됐다고 생각하련다. 어찌됐든, 항동철길은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기찻길이다.
같은 곳을 바라보면 걸어가는 노부부. 처음에는 떨어져 걷더니, 어느새 손을 잡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누군가와 함께 오래오래 살 수 있다는 건, 행복이자 행운일 거 같다. 혼자가 좋다고 외치지만, 사실은 혼자보다는 둘이 좋다. 아, 부럽고, 또 부럽다.
철길 옆으로 푸른수목원으로 들어가는 쪽문이 있지만, 오랜만에 왔으니 진짜 끝은 아니고 수목원 정문이 나오는 지점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돌맹이에 걸려 몇번이나 넘어질뻔 하면서도 계속 철길 가운데로 걷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하늘보다는 땅에다 시선을 두고 천천히 한칸 한칸 앞으로 전진 중이다.
바람은 쌀쌀하지만, 햇살이 따뜻했던 날이라 걷기에도 좋고, 앉아서 멋들어진 단풍을 구경하기에도 좋다.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가끔은 느리게 사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가을이란 계절은 짧아서 빠르게 지나가는 거 같지만, 사실은 엄청 느리게 지나가고 있다. 우리가 그걸 느끼지 못할 뿐이다. 가을은 느릴수록 좋은 계절이다. 그러니, 겨울아 조금만 늦게 오렴.
철길의 낭만,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솔직히 걷다보면 별 거 없다. 그저 기찻길과 그 옆으로 펼쳐진 나무들뿐이다. 질릴만도 한데, 자주 오는 이유는 아마도 철길을 걷고 있는 그 순간이 좋아서다. 넘어질 거 같은데 절대 넘어지지 않고, 재미없을 거 같은데 걷다보면 즐겁다. 앞으로 걷다가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본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고, 다시 앞을 본다. 앞이나 뒤나, 다 기찻길이다. 나이가 더 들면, 삶이란 무엇인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텐데, 지금은 철길과 비슷한 거 같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어차피 철길처럼 이어진 하나의 길일 테니깐.
푸른수목원 정문으로 가기 전, 주차장을 보니 어린이집 버스가 무지 많다. 날씨가 좋으니, 가을 소풍보다는 나들이를 나온 듯 싶다. 무농약, 무화학비료, 무쓰레기 배출을 하는 친환경 수목원이다 보니, 수목원 안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즉, 쓰레기를 만들었다면, 아무데나 쓸쩍 버리지 말고 주머니나 가방에 넣어 되가져 가야한다.
지난 봄 용감무쌍하던 수양버들은 월동준비를 하는지 많이 앙상해졌다. 그리고 주차장에 노란 어린이집 버스가 많더니, 역시 잔디마당을 전세낸 듯 어린친구들은 맘껏 뛰어노느라 바쁘다. 기칫길에서 나의 내일을 만났다면, 지금은 나의 어제를 만났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던 6~7살 시절의 나를...
푸른수목원 내에는 저수지가 있다. 조금 일찍 왔더라면 멋진 갈대숲을 봤을 테지만, 이번에는 갈대가 아니라 단풍이 주인공이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보니, 멀리는 가지 못하더라도 틈틈이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다.
푸른수목원에 온 이유, 이 한 장의 사진이 다 말하고 있다. 가을이 있기에 단풍을 만날 수 있고, 단풍이 있기에 가을은 멋지고 아름다운 계절이다. 단풍의 사전적 의미는 늦가을에 식물의 잎이 적색, 황색,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이라고 나와 있다. 여기 다 있다.
하늘까지 좋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저 느리게 천천히 걸으며,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면 된다. 잠시 스마트폰은 꺼두셔도 됩니다~
점점 더 앙상해져 가겠지만, 아직은 즐기고 싶다. 가을을, 단풍을 그리고 낭만을.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그나저나 도라지 위스키는 무슨 맛일까?
예년에 비해 올해 가을은 느림보인 거 같다. 더더더 느리게 천천히 지나가다오.
황화코스모스에 빠져 못보는 줄 알았는데, 누가 뭐래도 가을의 전령사는 너다. 햇살과 바람이라는 양념을 더하니, 하늘하늘 눈이 부시게 빛이난다.
보고 있어도 자꾸 더더 보고 싶다. 어느 길을 걷듯, 수목원은 가을 대풍년이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운데, 사람보다 단풍이 더 아름답다. 때깔 한번 참 곱다.
가을이 되니, 푸른수목원 장미원은 억새원이 됐다. 화려한 장미대신, 은빛 물결 억새도 좋기만 하다. 장미와 억새, 안 어울릴 거 같았는데 자연에는 부조화란 없나보다.
11월이 되고, 아침 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지니 가을이 그리고 단풍이 급격하게 깊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일년내내 가을이면 좋겠지만, 겨울과 봄 그리고 여름이 있기에 가을이 더 멋짐을 알기에 이제는 놔줄까 한다. 그래도 조금만 더 질척거리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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