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냉면이라고 하면, 평양냉면, 함흥냉면 그리고 진주냉면이다. 평양과 함흥냉면은 서울에서 많이 먹었는데, 진주냉면은 지금까지 먹어본 적이 없다. 진주로의 여행을 준비하면서, 무조건 기필코 꼭 먹고 싶었다. 조선시대 귀양 온 양반들이 기방에서 해장으로 먹었다던 냉면을 찾아, 진주에 있는 하연옥 본점으로 갔다.
진주냉면집으로 엄청 유명하다고 하더니, 본관에 별관까지 건물이 어마어마하다.
여기서 잠깐, 진주냉면의 유래는 이렇다. 1849년 간행된 동국세시기에 언급되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냉면이자, 조선시대 권번가(기생집)에서 야참으로 즐겨먹던 고급 음식이었다고 한다. 평양과 함흥냉면은 사골을 이용해 육수를 만들지만, 진주냉면은 멸치와 바지락, 홍합, 해삼, 전복, 석이버섯 등 해물을 이용한 장국과 쇠고기육수로 육수의 빛깔과 맛을 낸 후에 바로 사용하지 않고 보름동안 저온 숙성을 한다고 한다.
육수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고명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있다. 평양과 함흥냉면은 무를 얇게 썰어 절인 것과 수육을 올리는데, 진주냉면은 오이와 배, 석이버섯, 지단과 함께 기름기 적은 우둔살로 만든 소고기육전을 올린다. 평양과 함흥냉면이 단순함과 소박함이라면, 진주냉면은 다양함과 화려함이다.
점심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도착을 했더니, 빈 자리가 많다.
진주냉면은 처음이니, 비빔보다는 물냉면으로 선택했다. 진주까지 왔는데, 냉면 하나만 먹자니 뭔가 부족하다. 오기 전에 조사를 했더니, 육전과 함께 먹으면 좋다고 하던데, 혼밥족을 위해 1/2육전이 있으면 참 좋겠지만 없다. 그런데 포장이 가능하단다. 무슨 고민이 더 필요할까 싶다. "진주물냉면과 한우육전 주세요."
기회가 된다면, 지역소주를 모아모아서 포스팅해봐야겠다. 부산은 시원이던데, 영남은 화이트다. 전북 소주와 이름이 같나 했는데, 찾아보니 하이트다. 즉 영남은 화이트, 전북은 하이트다. 19도로 도수가 좀 된다. 소주를 주문했더니, 뜨끈한 국물이 필요하다면서 국밥 국물을 함께 주셨다. 주인장의 센스가 엄지척이다.
국물만 있는줄 알았는데, 내용물도 꽤 많다. 공깃밥을 주문해서 먹고 싶을만큼 여기 국밥 괜찮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이 아니기에, 조금만 먹었다.
딱 나오자마자, 이게 육전(19,500원)인가 했다. 동태나 대구전처럼 포를 떠서 만든 전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피자같다. 육전을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했다. 간장과 무피클 그리고 샐러드는 육전에 올려서 먹으면 좋다고 한다. 주인장이 알려준 육전을 맛나게 먹는 4가지 방법은 간장에 찍어 먹기, 무피클을 올려서 먹기, 샐러드를 올려서 먹기 그리고 마지막은 냉면과 함께 먹기다.
계란 옷이 과한가? 한우가 안 보인다.
아하~ 올려서 보니, 아주 얇은 한우가 계란 옷 속에 숨어 있다. 두툼한 생선전에 비해 육전이 얇은 이유는 아마도 익는 시간때문이 아닐까 싶다. 두꺼우면 오래 부쳐야 하는데, 그럴경우 질겨질 수 있기에 이렇게 만든 거 같다.
육전도 나왔으니, 본격적으로 혼술 시작이다. 지금까지 했던 혼술 중 가장 호사스러운 거 같다.
주인장이 알려준 방법대로, 먼저 간장에 찍어 먹기다. 그 전에 육전만 먹었다. 굳이 간장을 추가하지 않아도 될만큼 어느 정도 간이 되어 있다. 심심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간장을 추가해도 되지만, 나는 그냥 먹는게 더 좋았다. 육전이라서 육즙 가득? 이런 건 기대하면 안된다. 대신 누가 육전이라고 말을 하지 않는다면, 모르고 먹었을 거 같다. 우선 누린내가 전혀 안난다. 그리고 질기지도 않다. 계란이 주는 담백함에 고기가 주는 고소함까지 참 조화롭다. 이거 반은 포장해달라고 말해뒀는데, 왠지 다 먹을 거 같다.
샐러드와 무피클은 육전에 없는 아삭함 식감을 더해준다.
마지막은 진주냉면과 함께, 냉면과 고기는 함께 먹어야 좋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니 구차하게 덧붙이 필요는 없겠지. 그러나 개인적으로 육전만 먹었을때가 가장 좋았다. 무언가를 추가하지 않아도 될만큼, 육전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육전을 다 먹을 거 같다는 생각은 진주냉면(8,000원)이 나오자마자 사라졌다. 왜냐하면 양이 엄청나게 많다. 유기그릇에 담겨 나온 진주냉면, 양반들이 즐겨먹었다는 그 냉면이 이거구나 했다. 와~ 이게 냉면이야. 엄청 화려하네, 첫느낌이었다.
조선시대 진주냉면은 이보다 더 화려했다고 한다. 지금도 충분한데, 그때는 지금보다 고명이 더 화려하고 고급스러웠다고 한다.
우선 육수부터, 맛이 확실히 다르다. 멸치로 육수를 냈다고 해서 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잔치국수 느낌이 나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아니다. 국물이 가볍고 얕으면서도 묵직하고 깊은 맛이 느껴진다. 해물과 고기 육수의 멋진 콜라보이기에 가능한 맛인 거 같다. 그런데 간이 좀 세다. 나중에 계산할때 물어보니, 간이 강할 경우 육수 추가를 해준다고 한다. 진주냉면은 원래 이런가 싶어 그냥 먹었는데, 미리 말을 할 걸 그랬나보다. 면과 고명을 함께 먹으면 짠맛을 덜 느낄 수 있다고 했지만, 솔직히 같이 먹어도 간이 강했다. 유독 짠맛에 약한 1인이라서 그런 듯 싶다.
면은 함흥과 평양 냉면 중간쯤인 거 같다. 탱탱함과 쫄깃함이 있는데도, 특이하게 툭툭 잘 끊어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냉면을 먹을때는 고명을 아껴야했는데, 진주냉면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면을 다 먹었는데도 오이, 배, 무생채, 계란지단 그리고 육전까지 고명이 남아돈다. 다른 냉면을 먹을때는 생각도 못했던 밥이 먹고 싶어졌다. 유기그릇이라 시간이 지나도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육수에 밥을 말고 싶었다. 야속하게도 속 좁은 위가 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참아야만 했다. 그렇다고 저 육수를 그냥 남기고 왔을까? 아니다. 안주삼아 끝까지 다 마시고 일어났다.
진주냉면은 화려함의 끝판왕답게 참 다르다. 서울에서 먹을 수 없으니 그저 안타깝다. 왕복 7시간 걸리는 진주, 냉면 하나 먹기위해 갈 수 있을까? 음... 음...... 왠지 그럴 거 같다. 왜냐하면 이렇게 한번으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놓친 비빔냉면도 먹고 싶고, 물냉면도 한번 더 먹고 싶고, 앙~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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