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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살짝만 내려오면 바로 백범 광장이 나온다. 백범 광장은 백범 김구선생의 동상과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성재 이시영 선생 동상이 있다. 더불어 한양도성 성곽길도 있다. 3·1절 시리즈 번외편으로 백범 광장과 함께 살짝 맛만 보고 온 한양도성 성곽길 그리고 숭례문까지 걷고 또 걸었다(소니 nex-3n으로 촬영)

 

 

안중근의사 기념관(▶3·1절 시리즈 -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너무 울었더니, 진이 다 빠져버렸다. 그래도 나들이는 계속 되야 하기에, 가까운 곳에 있는 백범 광장으로 항했다. 그런데 광장으로 가다 보니, 얼마 전에 힘들게 걸었던 터널이 보였다.

 

  

아하~ 얼마전 남산도서관에서 남산 케이블카까지 왕돈까스 먹으러 갔던 그 길이구나. 그때 계단으로 가기 싫어 저 터널로 들어갔는데, 터널 위가 바로 백범 광장이었구나. 직진 본능의 단점이 바로 이거다. 다음부터는 시야를 넓게 봐야 할 거 같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진달래과의 백철쭉이다. 꽃 피는 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넓디 넓은 광장이 나왔다. 바로 백범 광장이다. 

 

 

파노라마 기능은 있는데 왜 쓰지 않을까? 여기도 백범 광장이다. 그런데 저 멀리 흐릿하지만 예전부터 걷고 싶었던 그 곳이 보였다. 

 

 

백범 광장이라는 이름답게 백범 김구 선생 동상이 있다.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내용은 3·1절 시리즈 백범 김구 기념관효창공원을 클릭해서 보시길.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정확히는 몰라도 슬픔과 아픔이 느껴진다.

 

 

대한민국임시정부주석 백범김구 선생 상.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나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읽고 또 읽어도 눈물이 나지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하기에...)

 

 

선생이 바라보는 광장의 모습, 아니 대한민국의 모습이겠지. '죄송합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완전한 자주독립을 못했습니다.'

 

 

백범 김구선생 동상을 지나면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성재 이시영 선생 동상이 나온다.

 

 

이시영(李始榮, 문화어: 리시영, 1868년 12월 3일 한성부 ~ 1953년 4월 19일 부산)은 조선,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경주로, 자(字)는 성흡(城翕), 성옹(聖翁), 호는 성재(省齋)·시림산인(始林山人), 본명은 성흡(聖翕)이다. 총리대신을 지낸 김홍집의 사위이다. 1885년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1891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부승지, 우승지(右承旨)에 올라 내의원 부제조, 상의원 부제조 등을 지냈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독립 운동에 투신, 일가족 40인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고, 1919년 9월 통합 임정 수립 이후 김구, 이동녕 등과 함께 임시 정부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광복 이후 귀국,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임정 요인이 단정론과 단정반대론으로 나뉘었을 때는 단정론에 참여하였다. 1948년 7월 24일부터 1951년 5월 9일까지 대한민국의 제1대 부통령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제2대 대통령선거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했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의 후손으로, 영조 때의 정승 이종성의 5대손이었다.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李裕承)과 동래 정씨(東萊鄭氏)의 아들이며, 이건영(李健榮), 이석영(李石榮), 이철영(李哲榮), 이회영(李會榮)의 동생이자 이소영(李韶榮), 이호영(李護榮)의 이복 형이었다.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신익희와도 인척간이다. (출처 - 위키백과)

대통령은 백범 김구선생, 부통령은 성재 이시영선생이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완벽하게 달라졌겠지.

 

 

두분의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이제는 조선시대로 가야겠다.

 

 

2015년이지만, 조선시대 이곳은 한양도성 성곽길이었다. 아쉽게도 이 길은 복원을 했다고 한다. 어쩐지 너무 신상(?) 느낌이 났어. 높은 빌딩 숲에 있지만, 난 지금 조선시대에 있다고 생각하고 내려가는 길이니 가뿐하게 걸어가 보자.

 

 

조선시대에 외계인이 나타났다.^^;

 

 

돌 틈에서 바라본 남산의 모습. 한 폭의 그림이구나.

 

 

이 길을 올라왔다면 툴툴대면서 걸었을텐데, 내려가니 살랑살랑 봄 바람도 불고 참 좋다.

 

 

한양도성 성곽길을 맛만 본다고 했더니, 벌써 끝나버렸다. 도저히 아쉬워서 안되겠다. 곧 성곽길 투어를 시작해야겠다.

 

 

남산에도 볼거리가 참 많은거 같다. 다음에 남산 시리즈를 만들어 볼까나?

 

 

한양 도성 성곽길이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웃기는 건, 차로 버스로 또는 걸어서 많이 다녔던 길이다. 전혀 성곽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다녔던 길이라니, 이런 바부. 설마 경찰 아저씨가 날 체포하기 위해서 서 있는건 아니겠지. 이런 것도 모르면서 다녔다고 하면서 말이다.

 

 

한양도성 성곽은 태조, 세종, 숙종 시대에 따라 성곽 구조이 다르다고 한다. 여긴 어느 시대일까? 혹시 여기도 남산처럼 복원인가? 신상 느낌은 없지만, 도심 속에 있어서 그런지 왠지 복원된 거 같다.  

 

 

몇 발자국 걷지 않았는데, 벌써 마지막이다. 맛만 보자고 했지만, 너무 짧아서 안 되겠다. 인왕산 코스는 어렵더라도, 동대문 - 낙산공원 - 혜화문 코스는 봄 꽃과 함께 걸어봐야겠다.

 

 

걷다보니, 국보 제 1호인 숭례문이 나왔다. 2008년 2월10일, 방화로 인해 숭례문은 상처를 입었다. 복원은 됐지만, 여기저기 흉터가 남아 있어 너무 안타깝다.

 

 

어릴 적에 숭례문에 온 적이 있다. 그때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복원은 됐지만, 지금의 모습이 너무 낯설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일까? 복원이 됐다고 하지만, 숭례문은 여전히 울고 있는거 같다. 특히 이질감이 느껴지는 성벽이라도 어떻게 안되겠니?

 

봄이 오는 길에서 만남 백범 광장과 남산 한양도성 성곽길 그리고 숭례문. 황사라는 나쁜 눔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 오고 있다. 3·1절 시리즈가 끝나면 봄꽃과 함께 하는 서울 나들이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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