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진본능의 최종 목적지는 밥이다. 원래 계획은 해방촌(▶해방촌 나들이)에서 간단히 점심도 먹고, 차도 마시고, 시간이 되면 멋진 카페에서 맥주도 한잔 할 생각이었다. 계획했던 일이 그대로 실행되면 참 좋겠지만, 사람 사는게 어찌 그리 간단할 수 있을까? 기대만큼 실망이 컸던 해방촌에서 남산도서관까지 터벅터벅 걸어왔고, 왠지 퇴계로 방향으로 가면 좋은 아니 맛난 일이 생길거 같아서 무작정 또 걸었다. 사실 아주 오래전에 왕돈까스를 먹고,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에 갔던 적이 있었다. 머리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내 두 다리는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iphone5로 촬영).
남산케이블카에서 퇴계로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다보면 다 원조라고 하고, 다 왕돈까스라고 말하는 돈까스 전문점이 5~7개 정도 나온다. 여기는 일본식 두툼한 돈까스가 아니라 거대한 크기에 얇은 두께인 우리식 돈까스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저번에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이 먹었던 집은 입구까지 줄이 서 있었다. 방송의 무서움을 새삼 느끼면서 그냥 지나쳤다. 나의 발길은 가장 마지막집인 바로 since 1977 원조 남산 왕돈까스다.
간판으로 봤을때, 가장 오래된 집이고 그래서 더 원조같이 느껴지는 곳이다. 꼭 원조라서, 가장 오래된 연도라서 선택건 아니다. 10년도 훨씬 전에 남산에 놀러왔을때, 처음으로 갔던 집이 바로 이곳이었다. 다음 번에는 다른 집으로 가야지 하다가도, 나의 선택은 역시 이 곳이었다. 그렇게 십년이 넘도록 이 곳만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가 다른데 보다 훨씬 맛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의 발길은 항상 이 집이다. 그래서 이번만은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식당 앞을 왔다갔다 하면서 엄청 고민을 했지만, 내 선택은 어김없이 이 집이다.
이른 저녁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다. 3층은 올라가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2층 상황은 이랬다. 늘 여럿이 오다가 혼자는 첨인지라 구석 자리를 재빨리 스캔했지만, 자리가 딱 센터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거 무슨 용기인지, 아무래도 나홀로 밥 먹는게 자연스러워 졌나보다. 턱하니 중앙에 앉고, 밥 먹을때 음악이나 영상을 봐야 하는데, 이번에는 방전된 아이폰 충전때문에 기기 도움없이, 눈도 내리깔지 않고 그렇게 주문을 하고 돈까스를 기다리고 먹기까지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엄청난 용기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서도 밥을 먹을 수 있을거 같다. 전혀 개의치 않고, 천천히 맛까지 음미하면서 먹을 수 있을거 같다. 이젠 남은건 나홀로 고기 구워 먹기인가?
메뉴는 돈까스, 순도부, 우동 이렇게 있다. 치즈돈까스를 먹고 싶었지만, 왕돈까스도 혼자서 다 클리어 하지 못하는데, 치즈까지 넣어 먹으면 너무 많이 남길거 같아 그냥 왕돈까스로 주문했다. 돈까스의 느낌함을 맥주로 날려버리고 싶은 유혹이 살짝 다가왔지만, 아직 나홀로 술 먹기 공력은 안되는지라 도전할 생각조차 못했다. 오늘은 센터에서 나홀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왕돈까스가 나오기전에, 기본찬인 깍두기와 고추 그리고 스프다. 어릴때 고추를 왜 주는지 몰랐는데, 이젠 고추가 없으면 돈까스를 못 먹는다. 할라피뇨가 나와도 좋을거 같지만, 한국식 왕돈까스에는 역시 고추다.
후추가 없으면 절대 먹을 수 없는, 그저 후추맛으로 먹는 스프. 후추를 생각보다 과하게 넣고 먹어야 다 먹을 수 있다.
스프를 다 먹으니, 바로 왕돈까스가 나왔다. 엄청난 크기의 왕돈까스다. 도톰한 일본식 돈까스가 아닌, 얇은 우리식 돈까스다.
함께 나오는 가니시는 통조림 옥수수, 샐러드, 단 한개의 단무지 그리고 밥이다. 밥이 적을 수 있지만, 절대 적은 양이 아니다. 워낙 돈까스 양이 많다보니, 밥은 늘 남기기 때문이다.
푸짐한 소스에 돈까스가 눅눅해질까봐 어서 칼질을 해야겠다.
두께가 너무 얇다보니, 포커스가 계속 어긋난다. 소니 nex-3n의 단점이 접사이기에, 이거 하나 찍을려고 엄청 노력을 했다. 더 가까이 담고 싶었으나, 어긋나는 초점때문에 여기서 만족해야 했다.
어릴때는 먹기좋게 칼질부터 먼저 했지만, 지금은 우아하게 스테이크 먹듯이, 먹을때마다 칼질을 했다. 혼자서도 우아함을 찾는 나홀로 먹기 달인이 된거 같다.
다 먹으려고 했지만, 역시 무리다. 그래도 꾸역꾸역 다 먹고 싶었지만, 고추의 종말과 함께 내 배는 그만을 외쳤다. 고추는 리필이 가능하지만, 더이상은 무리였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10년 전에 왔었고, 오늘 왔으니 10년 후에 다시 오면 되겠지. 그때도 지금처럼 그 맛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산 왕돈까스는 엄청 맛있지는 않다. 바삭한 튀김옷에 두툼한 고기, 한 입 베어물면 나오는 육즙까지 엄청 맛있는 돈가스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맛을 잊지 못하는건 아마도 추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 남산왕돈까스 : 02-755-3370
검색하니 다른 집이 나와서 주소로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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