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가 이리도 넓고 멋진 곳인지 정말 몰랐다. 그저 강남 부자들만 가는 곳으로만 생각해, 색안경을 쓰고 바라만 봤었다. 서울에서 홍매화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처음으로 간 봉은사, 홍매화도 홍매화지만 천년고찰답게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속으로는 '여기 땅값 장난 아닐텐데'라면서, 속세에 찌든 내색을 팍팍 풍기면서 들어갔다(소니 nex-3n으로 촬영).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에 속한다. 이 절의 기원은 794년에 연회국사가 창건한 견성사이다. 그뒤 1498년에 정현왕후가 성종의 능인 선릉을 위해 이 절을 중창하고 봉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562년 보우선사가 중종의 능인 정릉을 선릉의 곁으로 옮기고 이 절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다. 임진왜란·병자호란 때 소실된 것을 1637년에 중건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건·중수했다. 1912년에 31본산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1939년 화재로 주요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1941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 브리태니커, 봉은사 더보기)』
봉은사 입구에서 진여문으로 가기 전에 오른쪽에 있는 "허응당 보우대사 상"
『보우(普雨: 1515~1565)는 조선 명종 때의 승려이다. 호는 허응당(虛應堂) · 나암(懶庵)이다.
보우는 1530년 금강산 마하연암에 들어가 수도하다가, 명종의 모후로 불심(佛心)이 깊은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신임을 얻어 1548년에 봉은사 주지가 되었다 그 후 선종과 교종을 부활시키고,문정왕후가 섭정할 때에 보우는 봉은사(奉恩寺)를 선종(禪宗)의 본산(本山)으로 삼았으며 봉선사(奉先寺)를 교종(敎宗)의 본산으로 삼았다.이와 더불어, 승과를 부활시키고 도첩제를 다시 실시하게 하는 등, 숭유억불 정책으로 탄압받던 불교의 부흥에 노력하였다. 후에 도대선사(都大禪師)에 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불교 부흥은 문정왕후의 죽음으로 일시적인 부흥에 그치고 종막을 고하였다. 또한 보우도, 문정왕후가 죽자, 유림의 기세에 밀려 승직을 삭탈당하고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제주 목사가 참하였다.(출처 - 위키백과)』
진여문(眞如門). 사찰에 들어서는 첫 번째 문을 일주문이라고 하나, 봉은사는 진여문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진여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뜻하며,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절대의 진리를 이른다고 한다. 즉 진여문에 들어선다는 것은 곧 진리를 찾아간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벌써 올해 수능 기도가 시작됐다니, 빠르다. 진여문에는 사천왕이 있는데, 앞이 유리로 되어 있었다. 사진을 찍었는데, 본의 아니게 셀카가 되어 버려 과감히 삭제했다.
(출처 - 봉은사)
봉은사 안내도다. 천년고찰답게 엄청난 규모다.
진여문에 들어와서 오른편에 있는 부도전이다. 봉은사 큰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와 행적을 소개한 탑비 그리고 봉은사 역사가 새겨진 사적비와 공덕비라고 한다.
법왕루다. 이 곳은 법의 왕, 즉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하며 대웅전과 마주하여 누각으로 세워져 있다. 혹시나 해서 봤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검색을 해보니, 어처구니는 궁전 건물과 궁궐과 관련된 건물에 한정해서 설치를 했다고 한다. 궁궐과 비슷해서 있을거라고 생각한 내가 어처구니가 없구나.
법왕루를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갔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3층 석답이 있는데, 부처님 사리 1과가 모셔져 있다.
한 화면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한 대웅전이다. 이 곳은 1982년 새롭게 중창되었으며 법당 안에는 2층 닫집을 짓고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로는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부처님 등 삼존불(보물 제1819호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을 모셨으며 후불탱화는 삼여래회상도가 안치되어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내부 모습은 담지 않기에, 조용히 들어가서 인사만 드리고 나왔다.
한 화면에 다 담을 수 있었던 대웅전의 옆 모습.
『봉은사는 1939년 4월 화재로 판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 1941년 봉은사 주지 일초 태욱스님이 중창을 하면서 당시 심검당 자리에 현재의 선불당을 세웠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나 전·후·좌·우 네 곳에 작은 합각을 두어 양 측면과 함께 6개의 합각이 보이는 특이한 구조의 건축물이다. 선불당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선불당에서 있던 그림인데, 뭔지 모르지만 엄청난 용맹함이 느껴진다. 저 문은 아무나 열지 못할 거 같다.
『지장전은 주불로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이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을 이어 고통과 어려움에 처해 있는 중생들을 구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약초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워 ‘원력의 보살’이라고도 하고, 지옥중생들이 모두 구제될 때까지 지옥에서 함께 고통을 받으며 중생을 구하겠다는 서원을 세워 ‘악세중생의 부처님’이라고도 부른다. 지장전은 2002년 6월 불의의 화재로 전소되어 본래 12평이었던 전각을 40평으로 중창하여 2003년 12월에 점안식을 가졌다.』
대웅전과 지장전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영산전이 나온다.
봉은사에서 가장 전경이 좋은 곳이며, 온후한 기도처로 알려진 영산전이다.
전경이 좋은 곳이라 그 모습을 담고 싶었으나, 미세먼지가 밉다. 도심 속 사찰답게, 온통 높은 빌딩들만 보였다.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을 모시는 전각 북극보전이다. 일반적으로 칠성각이라고 하는데, 봉은사에서만 북극보전이라고 한단다. 칠성신은 옛날부터 민간에서 재물과 재능을 주고 아이들의 수명을 늘려주며, 비는 내려 풍년이 들게 하는 신으로 믿어 왔다.
북극보전 벽에는 벽화가 있는데, 봉은사 칠성도라고 한다.
『이 그림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고 재앙을 소멸시켜 주는 신으로 신앙되던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비롯한 여러 별들을 함께 그린 칠성도다. 그림의 중앙에는 결가부좌한 치성광여래(북극성)와 일광보살, 월광보살을 중심으로 칠성여래, 칠원성군, 태상노군, 삼태육성, 28수 등이 있다.
치성광여래는 흰 소가 끄는 마차 위 연화대좌에 앉아 있는데, 이는 태양이 흰 소가 끄는 마차를 타고 우주를 1회 돌면 1년이 된다고 믿는 힌두교에서 유래하였다. 치성광여래 아래 해와 달을 신격화한 일광보살과 월공보살이 각각 붉은 해와 흰 달이 그려진 보관을 쓰고 본존을 향해 합장하고 있다.ㅜ치성광여래의 좌우로는 별이 그려진 관을 쓴 28수와 칠성여래, 붉은 관복을 입은 칠원성군, 정수리가 뾰족한 모습의 태상노군와 삼태육성 등이 각각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그냥 봤다가, 안내문을 꼼꼼히 읽은 후 다시 천천히 살펴봤지만, 나에게는 어려운 그림이다.
서울에서 만나기 어려운 길이다. 미끄러울 수 있기에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홍매화 한그루가 있는 곳, 영각이다.
미륵대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님이라고 한다. 높이 23미터의 미륵대불은 전통적인 미륵하생 신앙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조성되었다. 저 뒤로 보이는 건물은 유명한 경기고다.
미륵대불 앞에 위치한 미륵전은 법왕루를 신축하면서 옛 법왕루를 그 모습 그대로 옮긴 전각이다.
봉은사는 곳곳에 멋진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도심 속 사찰도 되고, 도심 속 쉼터의 역할도 할 거 같다. 불교를 믿지 않아도, 도심 속 고즈넉한 사찰에 와서 잠시 쉬었다 가면 참 좋겠다. 현재는 앙상한 나무들이 많지만, 4월에 다시 찾으면 멋진 봄 꽃들이 반겨줄거 같다.
봉은사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인 판전이다.
『판전은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며 1855년 남호 영기 스님과 추사 김정희 선생이 뜻을 모아 판각한 화엄경 소초 81권을 안치하기 위하여 지어진 전각이다. 후에 다시 유마경, 한산시, 초발심자경문, 불족인 등을 더 판각하여 현재 3,438점의 판본을 보관하고 있다.』
판전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마지막 글씨로 유명한데, 별세하기 사흘 전에 썼다고 전해진다. 현판의 글씨는 어리숙하면서도 굳센 필세를 드러낸다고 한다.
종루에는 범종과 법고, 운판, 목어의 사물이 봉안되어 있다. 범종은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고 법고는 가축이나 짐승을 제도하며, 운판은 공중을 떠도는 영혼, 특히 새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목어는 물고기들의 영혼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봉은사 입구에서 봤던 코끼리가 동자승과 함께 종루에도 있었다. 찾아보니, 불교에서 코끼리는 위용과 덕 그리고 자비를 상징하는 더없이 귀중한 존재라고 한다. 아하~ 그렇구나!!
1974년에 조성된 종각은 종루가 세워지면서 사용되지 않고 보존만 하고 있다고 한다.
시원한 약수물로 목을 축이고 난 후, 파노라마 촬영에 돌입했다.
완연한 봄에 다시 찾으면 다양한 색상으로 변해있겠지.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봉은사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은 빌딩 숲이다.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완연한 봄이 되면 다시 오고 싶다. 더불어 내년에 봄을 알리는 홍매화를 찾아 소리소문 없이 또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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