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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 지폐 뒷면에 나오는 그림을 "계상정거도"라고 한다. 이 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지폐 앞면에 있는 퇴계 이황이 아니라, 진경산수화의 완성자 겸재 정선이다. 강서구에 겸재정선 미술관과 근처에 있는 허준박물관이 함께 있다고 해서, 봄꽃 나들이와 할겸 카메라만 챙겨서 무작정 떠났다.

 

6631버스를 타고 겸재정선미술관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아무것도 없다. 분명 겸재정선 미술관 정류장이라고 했으니, 이 근처가 맞을텐데, 아무리 둘러봐도 미술관은 커녕 철조망을 기댄채 활짝 핀 벚꽃만 반겨준다. 

 

"그래 너라도 있어 참 다행이다."

 

출발하기 전에 위치를 파악하고 왔는데, 순간 길치가 되어 버렸다. "뭐 벚꽃길 따라 걷다보면 미술관이 나오겠지."싶어 그냥 걸었더니, 

 

소박한 벚꽃길이 개나리와 함께 조화를 이루니 보기 좋다고 생각하면 걸었는데, 요 녀석들이 미술관까지 에스코트를 해줬다. 위치 파악도 했으니, 저 길 끝까지 걸어볼까 했지만, 귀찮아서 그냥 겸재정선 미술관으로 우회전을 했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 오른편에 겸재 정선의 그림을 미리 만날 수 있는 구조물이 있었다. 

 

구조물을 보다 보니, 어느새 겸재정선 미술관에 도착. 그런데 왜 여기에 미술관이 있을까? 궁금하다면,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겸재정선미술관은 관람료가 있다. 그래서 입구 근처에 이렇게 무인 티켓발매기가 있어 요금을 내야 한다.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과 설, 추석 명절 전후일 그리고 어린이날,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은 무료관람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해서, 한가한 날 내 돈내고 들어갔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할인 받는 방법은 허준박물관에서 공개합니다!!

 

팜플렛과 티켓을 들고 미술관 안으로 고고씽. 

 

로비에서 만난 겸재정선의 작품.  

 

겸재정선 미술관 1층에는 양천현아실이 있다. 양천현은 오늘날의 강서구 일대로, 겸재정선미술관이 위치해 있는 궁산 아래 정선이 만 5년 동안 근무하였던 양천현아가 있던 곳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완성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

 

여기서 잠깐, 겸재 정선이 그는 누구인가? 출생과 초년시절(~30대 중엽까지)

『정선은 서울 북악산 아래 유란동(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정선은 뛰어난 재능도 타고 났지만, 이웃에 살던 큰 문인학자 김창흡 등의 영향으로 서하에 매진하게 되었다. 정선이 생애의 대부분을 살게 되는 북악산, 인왕산 일대는 서울 문인문화의 중심지이면서도 풍광이 뛰어난 정선은 일찍부터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되었다.』

 

옛 양천현아의 모습이다.


『양천현아는 현재 남아 있지 않는다. 그러나 정선이 현령으로 근무하던 당시에 그가 그린 "양천현아" 등의 그림을 통해서 그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양천현아는 동헌인 종해헌을 중심으로 내아, 길청, 향청, 사령청, 장청, 읍창 등이 둘러져 있다. 현아의 입구인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서면 종해헌이 나타나고, 낮은 담으로 둘러싸인 내아의 모습도 보인다. 현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양천향교와 객사인 파릉관이 위치해 있다.』

 

양천현아(왼쪽) - 저녁 무렵 관원들이 퇴청한 후의 적막한 양천현아의 전체 모습을 그렸다.
종해청조(오른쪽) - 현아의 뒷산인 궁산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면 그렸는데, 종해헌과 부속 관아의 모습이 보인다.

 

소악루(왼쪽) - 궁산 동쪽 기숡에 있는 소악루를 그렸는데, 그 뒷편으로 높이 솟은 양천현아의 홍살문과 객사가 보인다.
양천현아(오른쪽) - 조선후기 화원화가인 김희성이 그린 양천현아 그림으로 정선의 화풍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정선의 양천현아보다 좀 더 멀리서 바라본 시점으로 그렸다.

 

양천현아와 정선이 그린 양천의 모습을 본 후, 본격적인 겸재정선의 그림을 만나러 2층 겸재정선 기념실로 향했다.

 

그런데 겸재정선 미술관이라고 하지만, 정선의 작품 중 대부분은 진품이 아니었다. 검색을 해보니, 겸재 정선의 산수도, 청하성읍도, 피금정도, 귀거래도, 청풍계도, 단발령망금강산도, 양주송추도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는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개인소장,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작품을 볼때마다 진품인지 아닌지 구별하면서 봤는데, 매번 복사본이란 말에 나중에는 확인을 하지 않고 보니, 꼭 봐야할 진품은 놓치고 말았다. 겸재정선 미술관답게 진품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 내가 오산이었을까? 그런데 누구누구의 미술관이라면 당연히 진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겸재정선 기념실에 들어오자마자,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영상이 하나 나온다.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도"를 사계절로 표현한 영상이다. "봄"

 

『 금강내산도는 일만이천봉을 한 폭에 집약한 짜임새 있는 구도를 보여 준다. 금강산을 내외로 구분하여 내금강의 전체 모습을 표현하고, 오른쪽 아래 장안사로부터 시작하여 왼쪽 아래 표훈사, 그 위의 정양사로 이어진 토산 줄기 위로 하얀 화강암 봉우리들이 무수히 늘어선 금강산의 장관을 잘 표현하였다. 역시나 진품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있다.』

 

여름
가을

"겨울" 진품은 볼 수 없었지만, 진품보다 더 멋진 금강내산도인거 같다.

 

겸재정선기념실은 정선의 생애와 활동을 연대별로 구분해 설명과 함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겸재 정선이 그는 누구인가? 화가로 이름을 떨치다 (30대 중엽 ~ 40대 중엽)

『정선이 회화로써 명성을 떨치게 된 결정적 계기는 37세때 이병연 등과 금강산을 유람하고  "해악전신첩"을 그린 때부터이다. 금강산의 절경들을 표현한 이 화첩에는 당대 문예계를 이끌던 김창흡, 이병연 등의 제화기문이 곁들여졌다. 당시의 "해악전신첩"은 지금 전하고 있지 않지만, 바로 전해인 1711년 36세때 그린 "신묘년풍악도첩"이 남아 있어 이 시기 정선의 화풍을 보여준다.』

 

내연삼용추

여기서 잠깐, 겸재 정선이 그는 누구인가? 진경산수화풍의 확립 (40대 중엽 ~ 60세)

『정선은 40대 후반 하양현감, 50대 후반 청하현감을 지내면서 서울, 경기, 금강산 지역 이외에 경상동, 충청도 지역까지 널리 여행하면서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화폭에 옮겼다.』

 

양천현아도

여기서 잠깐, 겸재 정선이 그는 누구인가? 원숙기 (60~70세)

『회갑을 넘긴 노년기 정선의 작품은 더욱 무르익은 경지를 보여준다. 60대 후반에는 서울 한강변에 위치한 양천현령으로 재임하면서 부드럽고 서정적인 강변의 경치를 많이 그리게 된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이제 종래의 험준하고 힘찬 산악미에 부드럽고 서정적인 아름다움까지 겸비하게 되었다.』

 

정선은 평생 여러차례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였고, 100여폭에 이르는 금강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겸재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금강산이라고 한다. 금강산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서쪽 내금강과 동쪽 외금강 그리고 해금강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이렇게나 많은 작품을 남겼다니, 금강산에 대한 정선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파노라마로 담았기에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계상정거도 - 퇴계 이황이 도산서당에서 주자서절요서라는 책을 짓는 모습을 겸재 정선이 그린 풍경화.

 

여기서 잠깐, 겸재 정선이 그는 누구인가? 노대가의 만년 (70 ~ 84세)

『70대 이후 만년기의 정선은 붓을 들면 자유스러운 필묵법을 마음대로 구사해도 법도에 벗어나지 않는 자유자재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작품에는 언뜻 보면 미완성인 것같은 파격적 구도와 생략적 묘사가 종종 등장한다. 정선은 81세 때에 종2품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로 승차하는 등 명예로운 만년을 보내다가 1759년 84세의 나이로 천수를 다하고 양주 해등촌면 계성리(현 동봉구 쌍문동)에 안장되었다.』

 

정선의 진경산수화 중 금강산과 함께 가장 많이 그려진 곳이 서울과 한강이다. 진품이 없어서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옛 한강의 모습이 펼쳐져 있고, 모니터에는 정선이 그린 한강이 나온다.

 

보고 싶은 곳을 터치하면,

 

윗쪽에 정선이 그린 그림과 현재 모습이 같이 나온다.

 

온 팔도를 다 다닌 정선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전라도와 제주도 지역을 그린 작품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복습차원에서 다시 보기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 철없는 어른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혼자 왔기에 여기는 가볍게 패스.

 

3층에 카페테리아가 있다고 했는데, 직원이 없다. 나뭇잎 동동 냉수 한사발 마시고 싶었는데...

 

소악루(왼쪽), 개화사(오른쪽)

 

이수정(왼쪽), 소요정(오른쪽). 이 중 한 곳은 곧 찾아갈 예정이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갈 필요없이 3층에서 바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자~ 그럼 이제는 어디로 봄꽃 나들이를 떠나볼까나?

 

뒤를 돌아보니, 바로 다음 코스가 보였다. 궁산그린공원, 너다.

샤갈, 피카소, 앤디워홀 등 외국 유명 미술전이 있다고 하면, 그냥 무작정 갔다. 내 눈으로 직접 그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화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음 좋겠다. 진경산수화라는 멋진 화풍을 남긴 겸재 정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 가는방법
* 지하철 : 9호선 양천향교역 1, 2번 출구 - 도보로 7분
5호선 발산역 3번 출구 - 강서06 마을버스 환승
* 버스 : 6631, 66712, 672, 9602, 강서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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