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아래 첫 동네인 해방촌(▶[까칠양파의 서울 나들이 ep25] 해방촌 - 넌 나에게 아픔만 줬어~)은 봤는데, 남산을 안 보고 간다면 눈물나게 서운하겠지. 해방촌 나들이로 인해 아이폰 밧데리가 15% 남은 거처럼 나의 체력도 어느새 방전모드도 돌입했다. 그런데 악도 아니고 깡도 아니면서 내 발길은 남산으로 향했다. 남산 정상이라는 큰 목표보다는 '요 앞까지만', '택시 올때까지만', '저기 코너까지만' 등등 작은 목표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남산길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소니 nex-3n으로 촬영).
저 멀리 108 하늘 계단이 보이고, 해방촌을 함께 해줬던 무서운 02 마을버스를 보고 있는데, 가운데 보이는 조형물 같은 이정표 하나. 사진에는 후암초등학교만 보이지만, 옆으로 남산도서관 800m가 있었다. 까짓거 해방촌 등산(?)도 했는데, 남산도서관은 껌이지 라는 심정으로 발길은 우리은행 옆 골목으로 향했다.
'남산도 가까이 보이고, 남산도서관쯤이야 뭐 가뿐히 가주겠어.' 나의 직진본능은 여기서도 제대로 활약했다. 곧 방전될 아이폰으로 지도검색을 할 수도 없고, 남산을 여기서 가는 건 첨이지만, 가다보면 아는 길이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직진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휴대폰 밧데리 아웃과 함께 내 체력도 아웃됐다. 그 아웃의 신호는 바로, 개 분비물이었다. 처음 가는 길이다 보니, 먼 앞만 보고 걸어야 했다. 아는 길이라면 바로 앞에 떨어진 쓰레기와 개가 싼 분비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먼 앞만 보고 걷던 내 발이 갑자기 허공에 잠시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아래를 보니 사방이 개 분비물 천국이었다. 허공에 멈춰버린 내 발은 내려올 생각을 못하고, 먼 앞만 보고 걷던 나는 땅만 보면서 발에게 괜찮으니 제발 내려와주렴 이렇게 하소연을 해야했다. 이 작은 사건으로 급 근육통이 왔고, 다리의 감각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남산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져갔고, 800미터라는 남산도서관은 도대체 보이지도 않고, 돌아가서 그냥 버스타고 집에나 갈까 했지만, 이눔의 발은 그저 직진밖에 모르나보다. 하는 수 없이, 남산도서관이라는 목표를 지워버리고, '저 앞까지만', '요 코너만 돌면', '조그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그렇게 작은 목표들을 계속 만들면서 걸었다. 큰 꿈이 아닌 작은 꿈들 때문이었는지, 어느새 바라고 바랬던 남산도서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너무 큰 꿈보다는 작은 꿈들이 하나하나 쌓여가다 보면 어느새 원하던 큰 꿈에 다다르지 않을려나.
또 계단이다. 이 계단만 오르면 남산도서관이 나오는데, 아 진짜 또 계단이다. 원래는 계단으로 가야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부끄럽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제가 왠만해서는 계단으로 다니거든요. 제발 이번 한번만 눈감아 주세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바라본 후암초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후라서 학교는 조용했다. 요즘 아이들도 졸업식에 짜장면을 먹을까나. 힘들어도 이눔의 호기심은 지치지 않는구나.
건너편에 남산도서관이 보인다. 예전에 한두번 정도 갔었는데, 오랫만에 도서관 체험이나 할까 했다. 그러나 나의 직진본능은 남산도서관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 4.5km만 가면 되는 서울 타워는 어때? 역시나 나의 직진본능은 그저 평탄한 길을 원했다. 그리하여 서울타워 방향이 아닌 퇴계로 방향으로 향했다.
남산도서관 앞에 있는 정약용 선생 동상을 지나.
계속 걸었다. 다행히 인도가 있어 옆에 오는 차들이 무섭지 않았다.
저 멀리 힐튼호텔이 보인다. 저쪽으로 내려가서 남대문 시장 구경이나 할까? 허나 가당치 않은 법. 주인 허락도 받지 않고, 그 이눔의 발은 직진밖에 모른다.
퇴계로 방향으로 계속 직진을 하다보니, 터널이 나왔다. 터널이 아닌 다른 길이 없을까 했는데, 바로 옆에 또 계단이 나왔다. 이젠 더 이상 말하기도 싫구나. 아무리 터널이 싫어도 오늘은 계단이 더 싫다.
들어가기 전에 머플러를 마스크 삼아 입과 코를 가리고 들어 갔지만, 생각보다 짧았고 오는 차도 별로 없어서 금방 나왔다.
이 담벼락 위로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있지만, 계단으로 가야했기에 그저 또 직진이다. 여기는 꽃 피는 춘삼월에 다시 와야겠다.
캐논 400D와 함께 출사를 다녔던 곳 중 하나인 남산 시범아파트를 가볍게 스쳐 지나가 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참 많이 있다. 그 중 하나인 곳. 왠지 계단으로 가면 직진 같아 빨리 올라갈거 같고, 옆에 보이는 평탄한 길로 가면 도착 시간은 더 걸리겠지. 그럼 나의 선택은 당연히 평탄한 길이 아니라 케이블카다.
케이블카 노래를 부르니, 바로 케이블카가 나타났다. "저기요. 저도 태워주고 가요."
돌아온 고민의 시간. 걸어서 남산은 도저히 무리고, 여기까지 왔으니 남산은 봐야겠고. 확 올라가버릴까?
꼬르륵~~ '배꼽 시계가 알려드립니다. 주인님은 3시간이 넘도록 물 한잔 마시지 않았고, 아직 점심 전이랍니다. 그러니 어서 배부터 채우시지요'
"오냐~~"
배를 채우고 나오니 벌써 해가 지기 시작했다. 어라~ 쌍 케이블카다. 쌍 케이블카를 보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은 없나. 암튼 남산 야경이 나를 부르고 있지만, 직진본능이던 내 다리가 이제는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 너 오늘 무지 수고했으니(벌써 7km가 넘는 거리를 걸었기에), 서울 나들이는 여기서 접자.' 괜한 다리 핑계일뿐, 솔직히 혼자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 남산에 오는 사람을 없을거 같기에 말이다. 사랑 내음 풀풀 풍기는 커플들을 볼 자신도 없고, 처량하게 남산 야경을 담을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나홀로 여행이 좋다고 하지만, 어려울 때도 있다.
다음 번에는 혼자가 아닌 둘 또는 여러명이서 함께 남산에 가기로 하고, 예전에 담았던 남산 야경 사진(캐논 400D & 삼각대)으로 남산길 직진본능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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