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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오죽헌

후세에 아들은 오천원권에 엄마는 오만원권 화폐 속 인물이 될지 그들을 알지 못했을 거다. 그녀를 위대한 어머니라고 하지만, 엄마라는 타이틀보다는 화가라는 타이틀을 더 원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신사임당은 16세기가 아니라 21세기에 태어났어야 했다. 어머니가 아닌 위대한 화가를 만나기 위해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오죽헌을 찾았다.

 

오죽헌 입구!

아들은 1972년에, 엄마는 2009년에 오천원과 오만원 화폐의 주인공이 됐다. 오만원권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화폐 인물 탄생지는 아들 한명이었을 거다. 2009년 이전에는 죄다 이씨에 남자들뿐, 화폐 속 인물에 있어 불만이 많았다는 거, 안 비밀이다. 

 

사임당의 어머니인 용인 이씨는 서울 사람(신명화)과 결혼을 했지만, 친정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강릉에 내려와 줄곧 오죽헌에 살았다. 자연스럽게 사임당은 외가에서 태어났고, 이이 역시 사임당이 홀로 된 친정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한동안 오죽헌에서 지냈는데 그때 태어났다.

참, 신사임당에서 신은 성이고, 사임당이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임당은 당호인데 시임당, 임사재라고도 했다. 본명이 신인선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하긴,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도 본명이 뭐였는지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

 

자경문은 오죽헌의 안팎을 가르는 문!
율곡 이이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문성사!
오죽헌
몽룡실과 신사임당 영정
서당 아니고 좋은 말씀이라 생각 중~

오죽헌이라 쓰여진 방은 이이가 여섯 살 때까지 공부하던 방이고, 몽룡실은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이이를 낳은 방이다. 용이 문머리에 서려 있는 꿈을 꾸고 아들을 낳아서 몽룡실이라 부른다고 한다. 

 

오죽헌 뒤에는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는데, 율곡매라고 한다. 이 나무는 오죽헌을 건립하고 별당 후원에 심었는데, 신사임당과 이이가 직접 가꾸었다고 한다. 율곡매는 꽃 색깔이 연분홍인 홍매 종류라는데, 검색을 하니 지금도 꽃이 핀다. 

 

사랑채
율곡제 출품작!

사랑채인데, 기둥에 적힌 10폭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필적을 판각한 것이다. 내용은 명나라 진계유의 암서유사(세상을 피해 한가한 곳에 살며, 담박하게 무엇을 구하지 않고 일상을 사는 일)에 나오는 시구이다. 

 

안채
주방 안과 밖!

오죽헌은 우리나라 주택 건물 가운데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라고 한다. 온돌방과 대청마루, 툇마루로 이루어진 정면 세칸 측면 두 칸의 일자형 기와집으로 공포(처마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맞추어 댄 나무쪽)가 새부리 모양을 한 익공약식으로 꾸며져 있다. 

 

운한문은 막돌담장으로 둘러싸인 어제각을 드나드는 출입문!
어제각!
학문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어떤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격몽요결!
이이가 어릴 때 쓰던 벼루!

어제각은 율곡 이이의 저서 격몽요결과 어린 시절 사용하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해 지었다. 정조 임금은 오죽헌에 격몽요결과 벼루가 보관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궁궐로 가져 오라고 해서 친히 보았다. 그리고 벼루 뒷면에 율곡의 위대함을 찬양한 글을 지어 새기게 하고, 책에는 머리글을 지어 붙여 잘 보관하라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임금을 명을 받은 강원도감찰사가 이를 보관하기 위해 지은 집이 어제각이다.

 

율곡기념관!
1920년대 그린 오죽헌!
초충도병풍

사임당은 일곱 살 때 안견의 그림을 따라 그릴 정도로 그림에 소질이 뛰어났다. 풀벌레를 그린 그림을 말리기 위해 내어놓았더니 닭들이 쪼았다는 이야기나 빌린 옷을 입고 잔치에 왔다가 옷에 얼룩이 묻어 난처해진 여성을 위해 치마에 포도 그림을 그려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꽈리와 잠자리(왼쪽)는 아래쪽에서 선염으로 화면을 가르고 가운데 부분에 이끼점을 찍어 땅바닥을 표현했다. 이끼점 위로 빨간 열매를 매단 꽈리와 꽃이 활짝 핀 쑥부쟁이를 그렸으며, 벌과 나비, 고추잠자리 등의 날벌레와 땅바닥에 내려앉은 여치를 그렸다.

수박과 석죽화(오른쪽)는 선염으로 화면을 가르고 중앙에 넝쿨을 뻗으며 익어가는 수박을 그렸다. 무게를 견디리 못한 듯 수박 아래쪽에는 바랭이가 짓눌려 있으며, 수박 위로 팽이이꽃(석죽화)이 부챗살 퍼지듯 피어있다. 

여기서 선염이란, 색칠을 할때 한쪽은 진하게 칠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점점 엷고 흐리게 칠해 농담의 변화가 보이도록 칠하는 기법이라고 다음사전이 알려줌.

 

물새와 물소
습작묵매도

습작묵매도는 신사임당이 그림을 배울 때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매화 그림이다. 서호지라는 제목이 씌어 있어 책표지 그림으로 추정된다. 나무줄기, 꽃잎, 꽃봉오리, 꽃잎의 옆모습 등이 독특하게 표현됐다.

 

전서와 초서

초서병풍은 사임당이 친필로 쓴 당시 오언절구이다. 점획이 간정하고 자형이 명료하며 짜임이 단아해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차분한 풍격을 보여준다.

 

셋째 아들 이이의 '율곡친필 암석각자'
율곡전서

그가 다섯 살때, 사임당이 병을 얻어 집안사람들이 몹시 걱정을 했다. 이이는 아무도 몰래 외조부의 사당에 들어가 기도했다. 그리고 열한 살 때, 아버지가 병환으로 위독하자 자신의 팔뚝을 찔러 피를 내어드리고, 사당에 들어가 대신 죽게 해 달라며 울면서 기도를 했다. 그의 지극한 효심을 엿볼 수 있는 일화라고 한다. 

 

국화도(왼쪽)는 사임당의 넷째 아들이자 이이의 동생 이우가 그린 그림이다. 묵매도는 사암당의 맏딸이자 이이의 누나 이매창이 그린 그림으로 조선 중기 묵매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사임당은 무남독녀로 태어나 부모의 깊은 사랑을 받으며 학문을 배웠고, 출가 뒤에도 부모와 함께 친정에서 살았기에 조선시대 여성들이 겪는 시가에서의 정신적 고통이나 육체적 분주함이 없었다. 남편은 유교 사회의 전형적인 남성 우위의 허세를 부리는 남자가 아니라, 아내의 그림을 친구들에게 자랑할 정도로 그녀의 재능을 인정했다. 

우리 속담에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가 있는데, 이는 여자가 어떤 남자를 만나 어떤 집에 시집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사임당은 친정에 자주 올 수 있으며, 그녀의 재능까지 인정해주는 남편을 쉽게 만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가 외동딸을 어찌 아무 남자에게 시집을 보낼 수 있었을까? 진심으로 딸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남자를 찾고 또 찾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정반대로 남편의 질투와 극심한 고부갈등으로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27세에 요절한 강릉 출신 시인이 있다. 이름은 초희, 호는 난설헌 그녀의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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