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 책방심다
동네빵집보다 먼저 자취를 감춘 동네점포가 있다. 굳이 대형서점을 가지 않아도, 책이나 참고서는 동네책방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과 달리 동네서점이 주는 정겨움과 따스함이 있었다. 이제는 추억인가 했는데, 전남 순천에 있는 책방심다는 현재진행형이다.
전자책을 주로 읽다보니, 서점에 갈 일이 별로 없다. 가더라도 책보다는 문구나 소품 코너에 주로 머문다. 코시국 전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책을 읽기도 했지만, 지금은 베스트셀러가 뭐가 있는지 훑어보기만 한다. 그랬는데 장소 때문일까? 책방심다에서 종이책의 매력에 다시 빠졌다.
책방심다가 있는 건물은 원래 순천역에서 근무하던 철도노동자들이 장기 숙박을 하던 여인숙이었다고 한다. 1978년에 완공된 이 공간은 철도산업의 변천과 시설 노후로 인해 그 수요가 점차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영업을 종료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공간은 도시재생을 통해 다시 생기발랄해졌다.
역전시장 골목에 문을 연 책방심다가 이전을 하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던 중 이곳을 발견했고, 여인숙과 가정집 구조의 기존 공간을 서점으로 재해석했다. 2층 건물에 책방은 1층이다. 미리 알고 오지 않았았더라면,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동네책방에 도시재생이라니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동네서점이라서 가능한 것일까? 책방심다는 있고, 대형서점은 없다. 그건 책마다 걸려 있는 손글씨로 적힌 추천글귀다. 책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담겨 있기도 하고, 책과 함께 기념품을 준다는 메시지가 있기도 하다. 어디 내놔도 창피한 악필에게 정성스럽고 예쁜 손글씨는 언제나 부럽다. 나름 노력도 했지만, 글을 빨리 써야 하는 일을 하다보니 악필은 숙명인듯 싶다.
'여기서 용기가 생겨'는 어린이 작가님들의 머리속에서 피어난 문장들을 엮은 낱말사전이다.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엿볼 수 있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난 초록분홍마을'은 서울에서 전남순천으로 농촌유학 온 한가족의 시골 라이프. 월등 복숭아 향이 그득한 주동마을에서는 어떤 재미난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책을 펼치지 않아도 내용을 짐작하게 만들고, 그와 동시에 읽고 싶은 강한 충동에 책을 펼치게 만든다.
순천 동네책방이니 잡화도 로컬 느낌이 제대로 난다. 순천의 대표 식물 갈대, 통통마디, 칠면조가 아니라 칠면초 모양의 배지가 있다. 머그컵이나 노트 등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지갑을 열게 만든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만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자신을 비켜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 놓으리라는 사실이다." 세상 모든 것들에 까칠한 오베라는 남자, 책을 읽다보면 오베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5권 모두 읽지 않았는데, 오베라는 남자는 내용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영화로 봤으니깐. 나름 책을 많이 읽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 이어 박경리 작가의 토지까지 2~3년 동안 대하소설에 집중하는 바람에 놓친 작품이 너무 많다. 토지를 다 읽으면, 책방심다에서 소개한 책들을 읽어봐야겠다. (토지 20권 중 5권을 읽고 있는 중^^)
영화 브로커에서 "태어나 줘서 고마워"라는 대사가 있다고 한다. 동화책 태어난 아이 추천 글귀에도 같은 말이 있다.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태어납니다. 누군가에게 당신은 태어나줘서 고마운 사람이란 걸 잊지 말아요."
책방심다의 차별점은 추천글귀도 있지만, 다른 서점에는 없는 책을 볼 수 있다는 거다. 순천시는 2021년 KRI 한국기록원으로부터 단일 기초 자치단체 거주 시민 최다 동시 출판 분야의 최고 기록을 공식으로 인증을 받았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을 넘어 책을 만든다니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순천시는 올해의 창작자라는 프로그램을 신설했는데, 작가로 선정이 되면 소정의 상금과 함께 일년 동안 협력 서점을 통해 지속적인 홍보 활동을 지원해 준다고 한다.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동네서점(혹은 독립서점)이 꼭 있어야 하는데, 순천에는 책방심다가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디를 가야할지 일정을 짠다. 전통시장과 지역빵집은 꼭 가려고 노력하는데, 여기에 동네책방도 추가를 해야겠다. 앞으로도 종이책보다는 전자책(만회책 제외)을 더 선호하겠지만, 동네책방이 주는 매력을 놓치고 싶지 않다. 굳이 책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책향기를 맡으면서 책방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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